[박명기 신부] 8월 2일(연중 제18주일) 요한 6,24-35; 탈출 16,2-4.12-15

믿는 이들은 때때로 하느님께서 인간의 역사 안에 강력하게 개입하시기를 바랍니다. 눈으로 볼 수 있는 하느님의 표징이 명확하다면 믿고 따르는 길도 명백할 것 같아서입니다. 역사의 흐름을 역류시켜 버릴 것 같은 불의와 부정을 보노라면 하느님께서 이 고통과 악을 허락하시는 이유가 무엇인지 혼란스럽기까지 합니다. 장황하게 역사를 끌어들이지 않고 내 자신의 삶만 보더라도 좀 더 확고하고 명확한 부르심과 표징이 있으면 훨씬 쉽고 단호하며 결연하게 이 믿음의 길을 걸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러나 하느님은 삶의 매 순간 우리 스스로 선과 정의를 선택하여 당신의 일을 하기를 기다리십니다.

지옥도 같은 한국에서 무엇을 해야 하나

한국의 근현대사를 돌이켜 보면 하느님의 정의는 요원하고 험난한 목적지입니다. 일제식민의 잔재를 청산하지 못한 역사적 과오로 반공이데올로기를 앞세운 남북분단은 고착되었고, 독재와 군부 쿠데타를 통해 이어진 군사정권에 의해 민주공화국이란 헌법 1조는 이름만 남아 있을 뿐입니다. 1980-90년대를 거치면서 민주화의 염원으로 온 국민이 싸워 이룩한 헌법재판소는 정권의 도구로 전락한 지 오래됐습니다. 국가의 권력과 정부는 정권 유지에만 급급하여 민주와 정의, 국민 생명의 존엄과 국가의 공공성에는 관심이 없어 보입니다.

3권 분립이라는 민주주의 국가 권력의 균형은 교과서에나 나오는 내용이고, 사법부와 입법부는 정부의 시녀 노릇으로 자신의 역할을 수행하고 있습니다. 게다가 경제 활성화를 핑계로 자행되는 정책으로 온 국민은 신자유주의라는 거대한 수렁에 빠져 죽어 가는 것도 모른 채 허우적대고 있습니다. 썩어 없어질 양식을 얻기 위해 목숨을 거느라 영원한 생명을 누리게 하는 눈에 보이지 않는 양식은 아무도 찾지 않는 버려진 음식이 되고 말았습니다. 오직 재물에 대한 탐욕과 극한의 이기주의가 온 나라를 가득 채워 악취를 풍기고 있습니다. 생명, 정의, 민주, 존엄성, 공동선과 공공성, 노동의 신성함, 재화의 분배, 가난한 이들에 대한 우선적 선택 등의 단어들은 권력을 유지하기 위한 선전물로 전락하고 말았습니다. 지난 몇 년간 발생한 암담한 참사와 국책사업으로 망가진 국토를 보면 국가는 더 이상 국민의 생명과 존엄을 지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믿을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시대와 역사 안에서 정부 권력이 지향하는 것이 국민의 안위와 행복이 아니라는 것을 확연하게 알 수 있는 부분입니다.

 사진 출처 = pixabay.com

하느님이 기적을 보여 주면 좋겠습니다

이런 참혹한 현실과 끊이지 않는 고통의 울음이 나라를 가득 채우는 불의한 시대를 살아가고 있기에 하느님의 개입은 더욱 간절하고 절실하기만 합니다. 이런 악한 시대에 하느님의 다스리심과 의로우심이 만천하에 드러나는 표징을 보여 주신다면 온 국민과 정치인들이 한마음으로 회심하여 이 땅에 하느님의 나라가 임하였음을 드러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막연한 기대를 가져 봅니다. 식민의 시대에도, 분단의 고착에도, 독재의 횡포에도, 사라진 공동선에도, 급기야 진실과 정의의 침몰에도 하느님은 우리가 어찌 하는지 지켜보기만 하십니다. 한번쯤은 부족하고 보잘 것 없는 당신의 피조물들을 위해 한 말씀만 해 주시면 모든 것이 다 창조질서를 되찾을 텐데 참고 계신 하느님이십니다. 여기에서 신앙인들은 안타깝고 애절한 마음으로 예수님께 물어야 합니다.

“하느님의 일을 하려면 위해 저희가 무엇을 해야 합니까?”(요한6,28)

믿고 행동하라

“너희는 썩어 없어질 양식을 얻으려고 힘쓰지 말고, 길이 남아 영원한 생명을 누리게 하는 양식을 얻으려고 힘써라. 하느님의 일은 그분께서 보내신 이를 너희가 믿는 것이다.”(요한6,27.29) 예수님의 대답은 간단명료합니다. 영원한 생명의 양식을 얻기 위해 하느님 아버지께서 인정한 사람의 아들인 예수님을 믿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아무리 빵을 많이 먹어도, 병들었던 이가 고쳐지고, 하늘에 지은 죄를 용서 받아도, 죽었던 이가 살아나는 기적이 일어나도 그 표징이 요구하는 믿음을 가지지 못한다면 기적은 이미 한낱 탐욕에 불과한 것이 되고 맙니다.

엄청난 표징과 확실한 하느님의 개입을 보더라도 믿음을 가질 수 없다면 기적은 아무런 의미와 가치를 지닐 수 없다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성경 안에서 믿는다는 표현은 삶과 생명이 연관된 단어입니다. 자신의 삶 전체가 그분의 삶으로 살아지고 동일화 되는 것이 믿는 것입니다. 예수를 믿는다는 것은 그의 방식대로 살아가는 것! 그의 사명을 내가 이어받는 것! 그의 삶을 내가 살아내는 것! 그의 지위와 능력과 가치가 나에게서 드러나게 함으로써 내가 그가 되는 것!입니다.

믿는 이들의 행동으로 하느님의 나라가 이 땅에 왔다는 것을 보여 주는 것이며, 우리를 통해 하느님의 의로우심이 지금 여기에서 이루어지고 있음을 보여 주는 것입니다. 세상은 쉽게 변하지 않습니다. 세상을 쉽게 변화시킬 수도 없습니다. 하지만 믿는 이들이 변화를 위한 자리를 연대하며 지키고 있을 때 세상은 변화되어 갈 것입니다.

예수님은 썩어 없어질 것을 양식을 얻기 위해 애쓰지 말고 영원한 생명을 누리게 하는 양식을 얻기 위해 애쓰라고 우리에게 당부 하십니다. 나아가 생명의 빵은 당신 자신이라고 천명하십니다. 그 빵을 늘 받기 위해 우리는 예수님께 다시 물어야 합니다.

“제가 무엇을 해야 합니까?”

이제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겠습니까?

 

 
 

 박명기 신부(다미아노)
 의정부교구 청소년 사목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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