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와 세상-한상봉]

프란치스코 교종은 지난 6월 18일 교황회칙 “찬미를 받으소서”(Laudato Si’)를 발표해, 전 지구적 차원의 정의를 바로세우기 위한 패러다임의 전환과 생태적 회심을 요청했다. 이 회칙은 통상 ‘환경회칙’이라고 불리는데, 지난 7월 21일 바티칸에서 열린 ‘현대 노예제와 기후변화’ 워크숍에서, 이 회칙은 ‘환경회칙’이라기보다 ‘사회회칙’이라고 했다. “기후변화와 극심한 가난은 인간 행위 때문에 생기는 문제”라는 것이다. 가난의 문제를 충분히 다루지 않으면서 환경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뜻일 텐데, 생태계 파괴와 환경훼손에 따른 일차적 피해자가 가난한 사람들이라는 데 주목한 말이다. 즉, 환경문제에도 계급이 있다는 선언이다. 프란치스코 교종이 스스로 “복음서의 핵심에는 늘 가난한 이들이 있었다”고 말했듯이, 그가 ‘가난’과 ‘가난한 이들’에 대해 얼마나 천착하고 있는지 잘 알 수 있는 대목이다.

▲ '현대 노예제와 기후변화' 워크숍이 열리는 모습.(사진 출처 = <바티칸 라디오>)

비자본주의적 일탈은 가능한가

교종의 이러한 사목 노선에 비추어 볼 때 가장 주목할 만한 사람 가운데 한 분이 바로 <가톨릭뉴스 지금여기>의 주보인 도러시 데이다. 도러시 데이는 가난한 사람들에 대한 깊은 연민을 가톨릭교회 교부들의 가르침에서 찾아냈고, 교회보다 더 거룩한 정으로 살았다. 전 세계에 퍼져 있는 가톨릭 노동자 그룹의 ‘환대의 집’은 가련한 영혼의 ‘집’이 되어 주었다. 그녀는 ‘한 손에 신문, 한 손에 성서’를 들고 세상과 인간 앞에 하느님의 동역자로 서 있고자 했다. 그것은 교종이 말했듯이 ‘경제독재’와 ‘물신주의’에서 이탈하는 길이다. 자본주의의 바다 위에 섬을 만드는 일이다.

도러시 데이에게 비(非)자본제적 방식의 삶이 가능하다는 영감을 주었던 것은 한 권의 책이었다. 로즈 호손 래스롭의 전기를 담은 “슬픔이 다리를 놓았다”이다. 래스롭은 가톨릭으로 개종한 뒤 뉴욕의 빈민가에 방 세 개짜리 아파트를 세내어 암으로 죽어가는 이웃 사람들에게 집을 개방한 사람이었다. 회복이 불가능한 환자들을 따뜻하게 환대했고, 이 운동은 몇몇 도시에서 계속되고 있으며, 가난하게 죽어가는 사람들을 위한 호스피스를 제공하고 있다.

빈털털이였지만 용기를 얻은 도러시 데이가 급진적인 가톨릭 신문인 <가톨릭일꾼> 신문을 내면서 시작한 운동이 ‘환대의 집’이다. 도러시 데이는 희생자의 무덤 위에 세워지는 붉은 혁명이 아니라, “낡은 껍질 속에서 새로운 사회를 건설”하는 녹색 평화 혁명을 알렸다. 부엌을 편집실로 사용하고, 동생과 함께 신문을 만들어 거리에 직접 나가서 팔았다. 1933년 창간호에는 교회 역시 상인들의 수중에 떨어졌다는 피터 모린의 글을 실었다. “그리스도는 환금상들을 성전에서 내쫓으셨다./그러나 오늘날 아무도,/고리대금업자를 성전에서 쫓을 엄두를 내지 못한다./고리대금업자들이 성전을 저당 잡았기 때문이다.” 개혁의 대상은 세상뿐 아니라 교회도 마찬가지다.

우상은 교회 밖에서도 교회 안에서도 지배적인 질서가 되었다. 마치 콘스탄티누스 황제가 평생 입교하지 않았고, 임종시 대세를 받았던 인물인데도 제국과 교회를 지배했듯이 말이다. 복음은 힘을 잃고 힘이 복음이 되었다. 이런 상황에서 레스롭과 도러시 데이 같은 이들은 새로운 혁명의 밑불을 ‘연민’이라 했다. 슬픔에 대한 공감능력만이 세상을 구원할 수 있다고 믿었다.

▲ 사진 출처 = en.wikipedia.org

성문 밖에서 꿈꾸는 세상

연민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것은 사실상 사회적 비주류의 시선이다. 예수 역시 비주류였고, 세상의 질서에 합류하지 못한 채 성문 밖 산꼭대기에서 죽음을 맞이했던 ‘불행한 메시아’다. 이런 아웃사이더의 시선에 젖으면 예루살렘(기성질서과 교회) 성문 안의 삶이란 안온하지만 남루하게 보일 뿐이다. 이 시선에 영혼이 밑 닿은 이들은 가슴이 저리다.

시인 신동엽은 스무 살 안팎의 한창 나이에 이미 “너 같은 놈은 이 지상에서 삐져나온 진물 투성이의 부스럼 같은 것”(1952년 5월 29일)이라고 일기에 썼다. 이 자기회한이 예술과 종교의 시작이다. 신동엽은 “모든 예술은 사랑이다. 시는 사랑하는 생명의 불붙는 마음”이라고 말했다. ‘거대한 뿌리’를 썼던 시인 김수영은 일기(1952년 5월 28일)에 이렇게 썼다.

“모든 사람의 필요에 응하여 모든 사람이 각자의 소질을 노동으로 100퍼센트 발휘할 수 있는 세상. 자기의 이익이 곧 모든 사람의 이익과 일치하는 체제. 인간다운 생활, 즉 사업과 연애만이 가치를 지니는 그러한 사회. 그럼으로써 사람들이 지폐나 명예 같은 쓸데없는 것에 대해 소유욕을 부추기는 에너지를 허비할 필요 없이 살 수 있는 사회. 사회적 기생충인 부동층이 없고 또한 있을 필요조차 없는 기구. 그러므로 노인, 어린이와 병신을 제외하고, 전 인류의 5할이 넘는 기생충들, 이른바 상인, 은행, 군인, 정객, 지주 등의 노동력이 생산에 투여될 수 있는 조직. 이리하여 인간과 인간 사이에, 그리고 아버지와 아들 사이에서도 발생하는 물질적(상품적) 채무 관념이 자연히 해소될 세상. 이 얼마나 저절로 신명 나는 아름다운 세상이냐.”

그러나 신동엽이나 김수영이 생각한 세상은 비현실적이다. 일상의 바깥에서, 마치 높고 번듯한 교회당 첨탑에서 빛나는 것은 오로지 가엾게 죽어 있는 십자가상의 하느님뿐이었다고 노래한 윤동주의 예수 같은 분이나 꿈꾸었던 세상이다. 이처럼 꿈꾸는 자의 마지막은 아름답지만 비참하다. 신동엽은 “나는 아무 데고 좋았다. 허름하기만 하면....”이라고 일기에 적었다.

머리 누일 곳조차 없다고 탄식했던 갈릴래아의 예수라면 당연히 공감하였겠지만, 아직 예수가 되지 못한 예수의 제자들은 당혹감을 감추기 어려울 것이다. 교황과 추기경, 주교와 사제, 부유한 신자들에게도 복음은 여전히 흉음일 가능성이 높다. 팔레스티나의 거친 모래밭을 맨발로 꼭꼭 밟아 주었던 예수처럼 가장 거룩한 것은 가장 밑바닥에서 시작된다는 것을 알아듣기 어렵다. 내 삶의 조건이 나를 고발하고 있기 때문이다.

어쩔 수 없는 사랑, 연민

황지우는 ‘박쥐’라는 시에서 “현실에 열린 나의 시적 통로는 연민”이라 했다. 그리고 연민이야말로 ‘혁명의 설사제’라고 노래했다. 어쩔 수 없는 우리를 구원의 비참한 통로 곁으로 다가서게 만드는 것은 ‘연민’이다. 그처럼 황지우는 ‘활로를 찾아서’라는 시에서 구원의 첫삽을 뜨고 있는 자의 애달픈 비명을 지른다.

정신없이 퇴적층을 퍼올리는 포크레인이 그러나.
의외로 곱고 새하얀 그 순결한 흙을 퍼올리는 포크레인이
지하 20미터에 있다는 것은.
열정도 신념도 아닌, 연민이라는 것을.
아는 사람으로서 나는.
하지만 세상을 연민으로 바라보는 것을 자제해야 한다는 것을.
아는 사람으로서 나는. 그러나
아아아아아아아 가엾어라.

슬픔을 통하지 않고서 갈 수 없는 나라가 하느님 나라다. 슬퍼하는 이들의 곁을 떠나지 않고 동반하지 않는 구원이란 없다. 신분과 상관없이 내 삶의 패러다임을 바꿀 뜻이 전혀 없는 이에게 연민의 가치를 설파하는 것은 부질없는 짓이다. 이들이 ‘가난’을 몸으로 취한다 해도, 가난마저 ‘도덕적 우월성을 입증하는’ 상품이 되기 쉽다.

지금 우리가 누구를 돕고 있느냐, 하는 문제도 중요하겠지만, 그런 행위의 원천이 어디에 있는지 살피는 것이 더 중요하다. ‘연민이다’라고 깊은 곳에서 응답할 수 있을 때 그는 행복하다, 하느님의 사람이 되었으므로. 황지우가 시에서 말하듯이 연민이란, 의도하지 않아도 이미 내 안에 깊이 침식되어 터져 나오는 탄성 같은 것이다. 신음 같은 것이다.

 

 
 

한상봉 (이시도로)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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