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의 민주화-근본적 정체성 회복의 길 3.

 한국은 국민의 자유와 인권을 위해 정치적 민주주의를 갈구하고 정립시키면서 경제·사회·문화적 성장을 계속하여 온 아시아의 유일한 나라이다. 한국의 민주화 과정 안에서 종교의 역할, 특히 암울한 군사독재시기에 가톨릭교회의 역할은 무시할 수는 없다. 특히 유신독재 시대였던 1974년 9월 26일 창설된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이하 사제단)의 역할과 투신은 역사의 높은 평점을 받고 있다. 그래서인지 근래 100년 역사의 흐름 안에서 20세기 한국천주교의 모습을 연상할 때, 우선적으로 떠오르는 것으로 사제단(34.9%), 외국선교사(18.5%), 근대화(13.8%), 민주화운동(11.8%) 순으로 나타나고 있다(가톨릭신문 2003년 6월 8일자).

이처럼 사제단의 존재가 한국역사 안에서 긍정적 가치를 심어주고 있지만, 교회 내부 특히 최고 교도권에서 보여 준 평가는 부정적인 측면이 강하고, 때로는 비공인 운운하면서 해체시키려는 의도도 다분히 노출되고 있다. 강인철(한신대) 교수는 2007년 6월 8일 ‘개혁을 위한 종교인 네트워크’가 서울 장충동 만해NGO센터에서 개최한 ‘6월항쟁 20주년 기념 종교간 공동토론회’에서 이 문제에 대해 구체적으로 지적하고 있다. 1987년 춘계 주교회의(17명의 주교들 참석)에서 사회참여운동(민주화운동)에 대하여 찬반 표결이 6:11로 갈렸는데 반대를 표명하는 수구적인 주교 11명, 찬성 주교는 6명(구체적인 주교 이름은 생략)이었다고 한다. 그런데, 이런 중대한 사안들을 처리하는 과정 안에서 주교들은 민주주의 기본이념과는 무관한, 상식을 외면한 태도로 일관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이런 결정을 하고 나서 주교들이 언제나 내세우는 말은 ‘순명’이다. 주교들은 순명 속에 항상 하느님의 뜻이 역사된다고, 무조건적인 순종을 요구하거나 선언한다: “하느님 명령은 주교를 통해 내려진다. 주교에게 순명하는 이는 틀릴 수 없다.” “주교가 교회다. 주교의 지시를 따르는 것이 신앙인들의 의무다.” 이런 발언이 과연 상식적일 수 있는가? 이런 발언을 따르는 이가 도대체 몇이나 될까? 교회의 공식적인 교의와 연관된 발언이라면 가톨릭신자로서 어느 정도 수긍이 가지만, 비신앙인 입장에서 보면 비민주적이고 독선적이고 상식을 외면한 독선의 극치가 아닐까? 사실 가톨릭교회 안에 많은 고위성직자, 사제들이 때로는 자신의 극히 개인적이고 좁은 식견으로 사제들이나 신자들을 통제하려는 경향이 자주 발견된다. 오늘의 사회는 전문화된 인식과 정보와 가치가 상식 안에 자리하고 있다. 상식을 떠난 언행은 거부될 뿐 아니라, 때로는 무지의 소치로 간주하며 경멸감까지 자아내게 한다.

오늘 제도교회는 과연 모든 이의 공통의식인 상식을 얼마나 인정하고 수렴하고 있는가? 뚜렷이 비교의적이거나 비복음적이 아닌 한, 대다수의 많은 의견을 수렴해야 하는 태도가 당연한 상식이 아닌가? 그러나 일반 사회인들은 물론 평신도 사제들까지도 상식에 어긋난 교권의 지시나 결정에 대하여 건설적인 비판의 소리를 내고 있지만, 교회언론이나 교정권자들(고위성직자 때로는 장상사제들, 장상수도자들)은 호교론적이고 교권안보와 통일을 위해 무조건적 순종을 강조하고 있다. 오늘의 국민들은 합리적이고 효율적이고 이성적인 가치에 순응하지, 비상식적인 가치는 거부한다. 교회도 마찬가지다. 교회법에 의한 교도권적인 지시가 있어도 상식을 어긋나면 거부하는 경향이 점점 짙어지고 있다. 많은 교구장(주교)들이 교구 내 사제들이 순명서약을 제대로 지키지 않는다고 토로하고 있다. 이들이 상식적인 것을 순명하지 않고 있는가?

현재 여러 교구가 시대의 징표를 올바로 읽고 수렴하여 복음화·선교화의 효율성을 높이고자 “교구 시노드”를 개최했거나 진행중인 곳이 있다. 어느 교구 시노드 회기 중에 한 대의원이 “우리가 연구하고 토의하고 협의하는 의안들에 대해 결정권(구속력)이 있느냐?”는 질문에 “교구의 제반 문제에 대한 결정권은 교회법상 교구장에게 있기 때문에 의결권은 없고 참고를 할 뿐이다”라고 답변하니 대의원들의 표정이 굳어지면서 협의의 진지성을 거둘 뿐만 아니라 회기에 불참하는 대의원이 여럿이었다고 한다. “비록 의결권은 없어도 기본교의와 신앙에 어긋나지 않는 한 대의원들의 통합된 의안들을 그대로 수렴하겠다”고 교구장이 직접 해명을 한 경우도 있지만, 의결권이 없는 상황에서 어떻게 진지한 협의가 있을 수 있는가?

많은 사람들은 상식을 떠난 지도자들의 의견에 때로는 인사권에서 불이익을 당할까봐 겉으로는 동의하지만, 내면적으로는 불만의 정서를 갖는다. 오늘의 사회 불의, 비리는 모두 건전한 상식을 외면한 데서 나오지 않았던가. 1980-90년대 가톨릭신자의 비약적 증가로 많은 본당이 신설되면서 사제 부족현상으로 여러 교구는 교구신학교를 신설한 바 있다. 모 교구는 ‘신학교 신설 건립’ 의안을 놓고 교구 사제들의 의견을 물었더니 85%의 사제들이 반대했다. 그 이유는 나름대로 설득력이 있는 상식 수준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교구장의 의지대로 신학교 건립은 시작됐고, 이 과정에서 신학교 신설로 기득권 자리를 갖게 된 사제들과 반대하는 (다수)사제들 간에 갈등이 일게 되고, 엄청난 신축헌금에 대한 부담과 부실공사까지 초래되었다. 결국 개교하였고 성소지망 학생들을 받아 사제를 배출하고 있지만 10년이 지나면서부터 학생 부족, 예산 부족으로 난관을 겪고 있고 앞날도 불투명하다고 한다.

주교와 사제의 관계는 종종 부모와 자식 또는 형제적 관계로 표현된다: “주교들은 언제나 특별한 사랑으로 사제들을 감싸주고, 아들처럼 친구처럼 여기며, 그들의 의견을 기꺼이 들고, 그들과 신뢰 관계를 이루어 교구 사목의 모든 활동을 추진하도록 힘써야 한다”(주교들의 사목 임무에 관한 교령 16항). 이것은 주교직이 결코 독단적이고 독선적인 판단의 자리가 아니라는 것이다. 민주주의에서 다수결의 의견은 이미 구속력을 갖는다. 주교 교령도 민주주의의 정신이 그대로 반영되어 있다. ‘사제평의회’, ‘사목협의회’, ‘평신도협의회’의 종합된 의견은 ‘상식’ 안에 자리를 잡는다. 미래의 교회 사목은 이 ‘상식’을 전제해야 한다. 민중과 3년간 공생활을 하신 예수의 삶도 바로 상식을 껴안고 살아가신 것이다.

그렇다고 민주주의에 근거한 상식이 모두 진리이고 신앙의 의무적인 대상이라고 주장할 수는 없다. 상식은 자연과학, 올바른 이성의 판단과 건전한 인간성에 의한 구체적 삶의 현장과 직결되고, 더 나아가서는 보편적인 가치를 수반하고 있다. 사실 19-20세기의 전세계는 근대주의·과학주의·현대주의·자유주의·공산주의… 등 변화의 소용돌이 속에 있었고, 가톨릭교회는 교권의 무력감과 전통적인 교의들이 변질되고 무력해질 위험을 느껴, 반근대주의 명제로 1907년 65개의 단죄교령을 교황 비오 10세에 의해 발표했다. 교황 비오 9세도 1864년 80개의 명제를 단죄했다. 이것은 학문의 자유, 이성의 자유까지도 제재시키는 교권의 횡포이자 폭력이었다. 여기에는 건전한 상식을 철저히 거부하려는 의도와 오직 교황권을 보존하고 기득권을 유지하려는 이유가 큰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제2차 바티칸공의회 이후 이러한 결정에 대한 많은 부분이 취소되고 정리되었지만, 그 이후에도 상식과 동떨어진 교도권 행사가 국가단위 때로는 교구단위로 이뤄지고 있다는 사실은 안타까운 현실이다. 상식이 교회 권위에 의해 유린될수록 교도권의 권위는 하락될 것이고, 상식적인 사람들이 제도교회를 떠난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이러한 측면에서 우리 교회는 왈벗 뷜만의 지적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교회와 신학내부에서는 아직도 상식이 그 권리를 얻어내지 못한 실정이다.” 한국교회가 상식을 멀리하거나 외면할수록 교회 내부의 빈 공간이 넓어지고 허상이 많아질 것이다. 민주주의는 바로 상식을 수렴하는 민중을 위한 정치 이데올로기이다. 교회가 외면할 이유가 없다.

/안승길 2008.0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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