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디에서 보낸 4년] 푸른누리 이야기-1

 

짜잔-- 푸른누리에 동참한 우리 친구들...

2005년 2월 말이 되자 중학교 동창들은 고등학교로 진학했다. 공부 안 하고 놀던 애들은 실업계로 갔고 공부 좀 한다는 애들은 인문계로 진학했다. 어중간했던 친구들은 여기저기 갈라져서 진학했다. 그리고 난 집에 앉아 입학날짜를 기다리고 있었다. 입학은 조금 늦은 3월 1일에 하기로 되어 있었다.

입학식은 특이했다. 가족단위로 입장하는데 재학생들이 길게 서 있는 가운데를 지나가며 박수와 환호를 받았다. 늘 부동자세로 서서 누군지도 모르는 사람으로부터 “입학을 진심으로 환영한다.”는 것과는 사뭇 달랐다. 양희규 교장 선생님은 학부모님께 드리고 싶은 말씀이 있다며 이렇게 말하셨다.

“여기 학교에 아이를 보냈다고 해서 어느 날 갑자기 아이가 바뀌거나 공부를 할 것이라고 기대하시면 곤란합니다. 답답하더라도 아이들은 이곳에서 놀고먹고 자면서 스스로 생각하고 움직이는 날이 올 것입니다. 그러니 조급한 마음을 버리고 아이를 기다리고 믿어주십시오.”

지나치게 빠른 걸 원하던 사회에서 조금만 천천히 기다려주기를 원했을 때 교장 선생님은 내게 필요한 것을 주셨다. 그랬기에 4년이 지난 지금도 교장 선생님의 말씀이 기억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입학하고 선배들과 안면을 튼 지 이틀 만에 우리는 ‘푸른누리’라는 곳을 가게 됐다. 선배들은 ‘푸른누리’에 가면 재밌을 거라면서 오만 이야기를 다 해줬다. 덩치가 지나치게 컸던(당시 115kg) 나에게 형들은 가면 살이 엄청 빠질 거라며 이참에 몸을 건강하게 만들어 오란다. 살을 빼고 싶었는데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모르고 있던 나 역시 내심 잘 됐구나 하는 생각에 ‘푸른누리’로 가는 봉고차에 재빨리 올라탔다.

내심 잘 됐다고 생각은 했지만 창 밖에 수많은 차들이 지나가고 나무들을 지나는 동안 뭔가 답답한 마음이 생겨났다. 입학하자마자 도대체 뭘 하겠다고 우리를 산중으로 데리고 가는 건지, 이놈의 차는 탈 때마다 왜 그렇게 토할 것 같은 건지, 돌아가도 됐을 법한 첩첩산중을 일부로 가보겠다고 덤벼든 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러나 더 이상 피할 길은 없었다. 나는 예비학교 때 잠시 봤던 애들과 봉고차에 실려 이미 ‘푸른누리’로 향하고 있었으니까.

도착하자마자 ‘푸른 누리’에 대한 간단한 소개를 들었다. ‘푸른누리’는 경북 상주 화북면 산골에 있는 생태 공동체다. 여러 사람이 모여 자기가 일군 밭에서 난 것을 먹고 지내며 자급자족하는 삶을 살자는 게 이 공동체의 목표이자 이상향이다. 어떠한 육식도 하지 않으며 심지어 유제품이나 견과류 역시 허용되지 않는다. 오로지 우리가 키운 야채와 곡식으로 하루에 두 끼만 먹는다. 땔감을 구해서 불을 지핀다. 전기 제품도 허용하지 않는다. 오줌은 모아서 밭에 뿌려도 될 때까지 기다렸다 밭에 뿌리고 똥은 재를 퍼놓은 삽에다 싸서 모은 뒤에 거름으로 쓴다. 아침저녁으로 명상을 한 시간씩 하며 자기 자신을 돌아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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