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헌생활자는 예언자인 예수를 따르는 사람들
무엇을 보고 듣고 말할 것인가

한국여자수도회 장상연합회(여장연)와 한국남자수도회 사도생활단 장상협의회(남장협)는 ‘봉헌생활의 해 심포지엄’을 열고 수도자의 자리와 수도생활의 방향성을 짚어 보는 자리를 마련했다.

지난 6월부터 제주, 광주, 서울, 대구에서 진행된 네 차례의 심포지엄에서는 ‘복음을 사는 수도 생활’, ‘봉헌생활에 대한 프란치스코 교황의 가르침’, ‘수도생활의 현실’, ‘미래지향적 수도생활을 위한 대안’ 등을 주제로 다뤘다. 각 주제별 강의에는 백남일 신부(한국순교복자성직수도회), 국춘심 수녀(성삼의 딸들 수녀회), 김근수 편집장(가톨릭프레스), 조현철 신부(예수회)가 나섰다.

마지막 심포지엄은 대구와 부산지역 수도자 약 85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7월 13일 성 베네딕도회 왜관 수도원에서 열렸다. 이 자리에서는 수도자의 신원 의식을 재확인하고 신자유주의와 자본주의로 인한 사회구조 변화에 맞서 정의, 평화, 창조질서보전을 위한 사도직 개편이 대안으로 제시됐다.

▲ 남장협과 여장연은 봉헌생활의 해를 맞아 심포지엄을 열고, 이 시대 수도자들의 자리 찾기와 사도직의 비전 모색에 나섰다. ⓒ정현진 기자

수도생활의 미래는 수도생활의 원천과 현실 사이의 대화로부터

“근본적으로 수도자들의 존재 이유는 세상에서 그리스도를 드러내는 것 외에는 없습니다.... 예수는 누구인가, 예수는 어떤 사람이었나, 예수는 무엇을 했으며, 무엇을 하려고 했는가, 수도생활의 현실 진단과 미래 모색은 항상 여기서 출발해야 합니다.”

미래지향적 수도생활의 대안을 제시한 조현철 신부는 그 방법을 ‘정의, 평화, 창조보전의 길’에서 찾았다.

조 신부는 먼저 수도자들의 정체성을 규정하면서, 예수를 자기 시대에 하느님 뜻을 알아듣고 그 뜻을 세상에 선포하는 사람, 바로 예언자라 부르고, “수도회의 카리스마에 따라 방식은 다르지만, 수도생활의 궁극적 지향점은 세상에서 하느님 나라를 구현하는 것이며, 그리스도를 세상에 드러내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하느님 나라의 선포와 실현을 위한 예수의 노력은 모든 인간의 존엄과 평등의 회복을 위한 것, 즉 정의와 평화, 창조보전(JPIC)에 대한 헌신”이었다면서, 이 시대의 징표와 하느님 나라 구현의 자리를 정의와 평화의 구현, 창조질서 보전에서 찾았다.

조 신부는 오늘의 사회 현실을 신자유주의라는 새로운 독재, 자본이라는 새로운 우상이 자리잡았고, 효율이라는 폭력적 강조와 맞물린 시대이며, 이런 맥락에서 수도회 역시 성소 감소와 노령화, 역할과 위상의 축소라는 현실을 겪고 있다고 진단하면서, 수도회의 현실 도전, 쇄신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그는 “수도생활의 위기는 곧 쇄신을 위한 소중한 기회일 수 있다”면서, “수도회 안팎의 신자유주의 영향에 적극 대처하는 것은 오늘날 수도자들이 직면한 가장 중요한 도전의 하나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조현철 신부는 이러한 도전을 위해서 가난을 지향하는 사도직 재검토와 정리, 십자가 영성의 강화, 친교 중심의 수도생활 등을 과제로 제시했다.

조 신부는 우선 수도회 인원 축소와 노령화라는 현실로 인해 사도직 재검토와 정리가 불가피할 것이라면서, 사도직 재검토를 위해서는 무엇보다 JPIC가 사도직의 적절성과 필요성을 평가하는 핵심 기준이 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특정 사도직이 JPIC와 관련이 없거나 적다고 판단되면 해당 사도직의 정리를 신중하고도 과감히 고려해야 한다면서, 그 가운데 하나를 ‘본당 사도직’, 병원, 학교, 사회복지기관 등 대규모 기관 파견 등으로 꼽았다.

또 ‘신자유주의 영향의 증대’라는 사회적 현실 속에서 적절하고 필요한 사도직은 ‘현존의 사도직’이라면서, 신자유주의 영향으로 삶이 파괴된 사람들을 찾아가 함께 하는 것으로 JPIC의 회복에 기여해야 하며, 이는 또한 신자유주의의 부정적인 영향이 수도회에 미치는 것을 막는 적극적이고 효과적인 대응책이 될 것이라고 봤다. 나아가 효과적인 현존의 사도직을 위해서는 현장의 갈등과 분쟁 상황에 대처할 수 있는 맞춤형 또는 전문형 사도직을 고려해야 한다면서, “현존의 사도직은 영성적 삶을 보완할 것이며, 경계해야 할 것은 안으로 향하는 영적 세속성일 것”이라고 강조했다.

“수치와 효율성의 유혹에 넘어가지 마십시오. 자신의 힘을 믿으려는 유혹에는 더욱 더 넘어가지 마십시오.”(프란치스코 교황 교서, '봉헌생활의 날을 맞아 모든 봉헌생활자에게')

또 조현철 신부는 성소가 줄어드는 상황에서 현실적인 유혹에 빠지게 될 것을 경계할 것을 당부하는 한편, 노령화에 대한 노년기 사도직 개발의 필요성도 역설했다. 수도회 내적으로는 형제애를 통한 친교의 수도회를 추구하고 이를 위해 공동 숙의 방식을 선택하며, ‘섬기는 권력’이 제대로 실현될 수 있도록 힘써야 한다고 당부했다. 

조현철 신부는 수도자가 세상을 깨우기 위한 여러 갈래의 길이 있지만 그 목표는 하나임을 확인하면서, 누룩이 되어 세상을 부풀리고 하느님 나라를 선포하기 위해서는 결국 JPIC의 실현을 위해 헌신하는 것 외의 길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복음적 권고의 서원, 보다 철저히 따르기 위하여...

백남일 신부는 제2차 바티칸공의회 문헌 교회헌장과 ‘완전한 사랑’을 빌어 수도생활의 본연과 쇄신의 원리가 ‘복음’에 있음을 다시 확인하며, “수도생활의 성소는 예수 그리스도와 그 복음을 따라 살기 위한 하나의 방식이며, 그리스도를 따르는 생활은 오직 수도자들이나 특권적인 일정 집단에 해당하는 것으로 축소되어서는 안 되는 것”이라고 전제한다.

이어 백 신부는 그리스도와 그의 복음을 따른다는 것에 대해 “수도생활의 본질적인 핵심은 그리스도 인격과의 관계이며, 수도자에게 최상의 규범이자 규칙은 각 수도회 창립자나 회헌이 아닌 그리스도 자체”라고 강조했다. 이와 관련한 수도생활의 기원과 창립자, 성경, 수도 생활의 관계에 대한 근본적 의문에 대해서는, 수도생활의 기원 역시 교회 안에 있음을 상기하면서, “수도생활은 그리스도인 생활의 구체적 양식의 하나이며, 교회 안에서 탄생한 그리스도를 따르는 새로운 형태”라고 말했다.

백남일 신부는 수도생활이 교회로부터 비롯됐다는 것을 이해한다면, 복음, 회헌, 규칙서, 설립자들 간의 긴밀한 관계 역시 이해할 수 있다면서, “성령은 수도회 설립자들을 통해 복음을 특별한 방식으로 깨닫고 해석하도록 인도하며, 회원들의 삶을 통해 구체적으로 실천하도록 돕는다”고 설명했다.

“수도생활의 특수성은 복음적 권고의 서원, 복음적 철저성으로 다른 그리스도인보더 더 우월하다는 것에서 비롯되지 않습니다. 다만, 수도자들이 자신의 생활로써 그리스도의 인격과 가르침을 표현하고자 하는 열정이나 지향하는 삶의 ‘중심성’에서 비롯됩니다.”

백 신부는 이어 정결, 청빈, 순명이라는 세 복음적 권고에 대해서도 그리스도의 역사적인 생애에서 드러난 인격과 유리된 것으로 이해한다면 복음적 가치를 상실할 뿐만 아니라 비인격적이고 불명확한 금욕 생활의 수단이 될 뿐이라고 경계하면서, “이는 무엇보다 가난하고 정결하고 순명하는 그리스도의 생활에 동화되는 삶을 지향하게 함으로써 예수님의 생활과 행동양식에 대한 살아 있는 기념이 되도록 도와주는 수단”이라고 강조했다.

이런 맥락에서 ‘정결’은 하느님과 구원 계획에 대한 완전한 자기 개방과 이에 대한 자유로운 수용이며, 단순히 금욕적인 정화 행위나 직무 수행을 위한 기능적 가치로 축소되어서는 안 된다고 이른다. 또 청빈/가난은 아버지 하느님에 대한 전적인 의탁이자, 근본적으로 가난한 존재인 인간의 본질을 인식하도록 하며, 복음에 따라 하느님 나라를 향해 가는 삶의 방향성임을 확인하면서, 수도자의 가난은 그리스도께 대한 사랑의 관계 안에서 이뤄져야 하며 또한 그리스도의 모든 형제들에게 도달해야 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예수의 모습에서 보는 ‘순명’은 전적인 자기 비움 안에서 형제들의 구원을 위해 당신 생명을 내어 주는 것이다. 즉 수도자들에게 순명은 이런 예수의 순명에 온전히 참여하는 것이며, 이러한 순명을 통해 수도자는 예수의 생각과 행동, 사랑한 방식에 참여하라는 초대를 결정적으로 수용하게 된다고 말한다.

 ⓒ정현진 기자

수도생활자, 주님의 아름다움과 선함에 완전히 매료된 사람들

백남일 신부는 수도생활은 그리스도와의 인격적 만남을 통해서 이뤄지는 것이며, 이러한 인격적 체험은 수도생활의 모든 면에서 특별한 가치를 지닌다면서, “수도생활은 하느님의 무한하고 인격적 사랑을 통해 그분으로부터 사랑받고 있다는 확신에서 생겨나는 것”임을 재확인한다.

백 신부는, “‘축성된 이들’은 그리스도를 따르며 형제적 친교의 아름다움을 보여 주고, 소외된 이들의 얼굴에서 하느님의 참된 얼굴을 찾으며, 자신 안에서 십자가에 못박힌 분의 사랑을 반영하는 이들”이라며, “수도자들에게 그리스도에게 동화되는 삶이란 결국 그리스도화의 여정”이라고 역설했다.

수도생활, 하느님 백성의 공동체 안에서 ‘누룩’ 되기

국춘심 수녀는 교황 프란치스코의 가르침 중 예언자, 탈출, 가난, 공동체적 친교, 정결과 순종 등의 단어로 수도생활의 의미와 방향을 살피면서, 수도생활의 핵심을 “예언적 증거자, 친교의 전문가, 자비의 전문가”라고 짚었다.

“수도자는 예언자입니다. 교회 안에서 수도자들은 특별히 예수께서 지상에서 어떻게 사셨는지를 증언하고 하느님 나라가 완성될 때의 모습은 어떠할지를 선포하는 예언자가 되라고 부름받았습니다. 수도자가 예언을 포기해서는 결코 안됩니다”(교황 대담집, “나의 문은 항상 열려있습니다” 가운데)

먼저 교황은 수도자들을 “삶의 여러 상황에서 하느님의 표지로 더 정의롭고 형제적인 사회의 성장을 위한 누룩이 되며 작은 이들과 가난한 이들에게 참여하는 예언자”라며, 예언자로서 해야 할 과제를 강력하게 부여하고, 세상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가를 자신의 삶으로 말하는 ‘증거’, ‘증거자’가 되어야 한다고 요청한다.

이를 위해서 교황은 “변방, 변두리로 나갈 것”을 요구하는데, 국 수녀는 이에 대해 “자기 밖으로 나가라, 변두리로 나가라”는 요청은 사목적 방법론 만이 아니라 그리스도인의 존재 방식에 요구되는 ‘그리스도 중심성’을 찾으라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또한 변두리로 나간다는 것은 자기 자신을 비우는 것 뿐만 아니라, 부유함과 안락함, 정당한 권리를 포함한 모든 형태의 기득권을 벗는 출발점인 동시에 변두리에 있는 사람들을 만나러 간다는 목적을 갖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가난한 이들을 위한 가난한 교회’를 추구하는 교황은 수도자들에게 실제적 가난과 접촉할 것을 요구하고 수도자의 가난이 다른 사람들과 교회에 미치는 영향을 강조한다. 가난한 이들과의 실제적 연대를 ‘이론적 가난’, ‘가난의 이데올로기’가 아닌 ‘그리스도의 살’, ‘그리스도의 상처’라는 생생한 표상으로 제시하는 교황은, “가난은 겸손한 사람들, 가난한 사람들, 병든 사람들, 삶의 실존적 변두리에 있는 모든 사람과 함께 배우는 것”이라고 역설한다. 이와 더불어 교황은 수도자의 가난에 대해서, “청빈서원을 하고도 부자로 살아가는 축성된 사람들의 위선이 신자들의 영혼에 상처를 입히고 교회를 해친다”고 경고한다.

교황은 공동체적 친교가 가진 표징과 증거로서 효력에 주목하면서, 축성생활의 길을 가장 방해하는 것은 바로 형제애를 거스르는 유혹이며, 형제적 삶을 살아내지 못하면 수도생활을 할 수가 없다“고 단언한다. 또 공동체 내 긴장과 갈등은 사랑의 체험이며, 수용되어야 한다면서, ”공동체 안의 갈등과 긴장은 한편으로 자비의 전문가를 위한 수련의 현장으로 만든다, 공동체 안에서 자비와 순종을 배우려면 고난과 희생 외의 길은 없다“고 가르친다.

국춘심 수녀는 수도자들에 대한 교황의 가르침을 포괄하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그 핵심을 체화하는 것이라면서, “세상을 깨우기 위해서는 수도자들 자신이 깨어나야 한다”고 수도자들의 소명을 다시 한번 확인했다.

김근수 편집장은 한국교회 수도자들의 현실을 살폈다.

김 편집장은 수도회마다 차이가 있지만, 교회개혁과 사회민주화를 지지하는 비율이 성직자나 평신도에 비해 상당히 높고, 교황의 교회 쇄신 노력을 가장 환영하고 있음에도 교구의 힘과 위력에 밀려 수도회의 존재와 역할이 제대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수도자들, 수도회에 갇혀 자신을 위로하는데 머물지 말아야

김 편집장은 수도자들에게 자비와 정의의 체험, 우리가 사는 현실에 대한 정직한 고백, 가난한 사람들에 대한 우선적 선택이라는 예수의 영성에 비추어 살 것을 당부하면서, “수도회에 갇혀 자신을 위로하는데 애쓰지 말 것”을 요청했다.

그는 하늘이 아닌 고난의 현장과 땅의 현실을 바라보고 관심을 가질 것을 요청하면서, “현실과 가난한 사람들을 외면하는 영성은 없으며, 영성이 신학적 도피 수단이나 아편으로 사용돼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이어 “내가 얼마나 더 가난하게 살 것인가”보다는 “내가 가난한 사람들과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는가”에 집중할 것을 당부하면서, “수도자들이 복음의 기쁨을 알고 살아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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