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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사벳 할머니의 길거리 미사

엘리사벳 할머니가 다리를 절뚝이며 세월호참사 미사가 열리는 광화문 광장으로 들어섰다. 두 젊은 여성이 “할머니~!”하며 다가가 할머니를 얼싸 안았다. 한 남성도 할머니를 보자 손을 붙잡고 반갑게 인사를 했다. 그는 “대한문 미사 때부터 빠짐없이 나오시는 분이라....”라며 할머니와 알게 된 이유를 설명했다.

“교황님도 그랬잖아. 성당에서 미사만 드리고 묵주신공만 할 게 아니라 길거리에 나가서 눈물을 닦아 주라고. 그래서 비천한 죄인이지지만 나라도 한 자리 앉았다 가는 거야. 같이 울어주는 거....”

   
▲ 엘리사벳 할머니. ⓒ배선영 기자
사람들은 그녀를 엘리사벳 할머니라고 불렀다. 할머니는 2년 전부터 대한문에서 열리는 쌍용차 해고자를 위한 미사에 빠짐없이 나왔다. 요즘은 매주 월요일과 수요일 저녁에는 광화문광장에서 열리는 세월호참사 미사, 목요일 저녁에는 순화동 철거민을 위한 미사에서 꼬박꼬박 참여한다.

엘리사벳 할머니의 이름은 박정금, 1942년에 태어났다. 할머니에게 이름을 묻자 자신은 학교를 다녀본 적이 없다며 쑥스러워했다.

일흔 둘, 관절염으로 불편한 다리를 이끌고 대림동에서 지하철을 타고, 역에서 미사가 열리는 곳까지 걷는 것이 힘들지 않냐고 묻자 전혀 힘들지 않다고 대답했다. 하지만 계단을 오를 때 난간을 붙잡고 한발 한발 조심스럽게 딛는 할머니의 모습은 힘겨워 보였다.

엘리사벳 할머니가 처음으로 사회적인 이슈를 위한 미사에 간 것은 1979년 안동교구 가톨릭 농민회 사건이었다.

1978년 경상북도 영양군 청기면 농민들이 영양군과 농협에서 알선한 씨감자를 심었으나 싹이 나지 않아 농사를 망치게 되었고, 이에 가톨릭농민회 청기분회 회원들은 피해 농민들과 대책을 논의한 뒤 피해 상황을 조사해 보상을 요구했다. 이 활동에 앞장섰던 청기분회장 오원춘 씨가 20일 동안 실종된 사건이 발생했다. 오원춘 씨가 자신이 납치돼 감금 테러를 당했다고 안동교구에 밝혔다. 사제들과 가톨릭농민회는 농민운동 탄압 중지, 긴급조치, 유신헌법 철폐 등의 구호를 외쳤고 전국적인 정치 투쟁으로 커졌다.

할머니는 신문에서 이 사건을 접하고, 명동성당에서 열리는 미사에 갔다. 할머니의 입에선 오원춘 씨뿐 아니라 강경대, 박승희 등의 이름이 나왔다. 엘리사벳 할머니는 쌍용차 노동자가 교도소에 있었을 때는 자신의 생일에 낳아 줘서 고맙다며 딸이 준 10만원을 보내기도 했다. 할머니는 이들을 ‘잊지 않았다.’

콩나물로 전하는 할머니의 사랑

길거리 미사를 집전하는 사제들을 할머니는 무척 아낀다. 대한문 미사에서 서영섭 신부(꼰벤뚜알 프란치스코회)가 중학교 2학년 때 어머니를 여의었다는 말을 듣고 마음이 아팠던 할머니는 자신의 손으로 서 신부에게 콩나물국을 끓여 주고 싶었다.

할머니는 딸에게 가는 방법을 물어 한남동에 있는 꼰베뚜알 프란치스코회를 찾았다. 반대쪽에서 버스를 타 한참 헤맨 끝에 겨우 수도원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날이 저물어가고 있었다. 수도원의 문은 닫혔고, 성모상 앞에 콩나물을 두고 갈까 고민하는데 다행히 어떤 사제가 나와 서영섭 신부를 만날 수 있었다.

“신부님에게 이걸 드려야지 내가 콩나물을 (더 이상) 안 기르죠.”

직접 기른 콩나물을 전해주겠다고 2년 동안 마음속에 담아둔 할머니의 “소원이 이뤄졌다.”

지난 해 여름에도 대한문 미사가 끝난 뒤 할머니는 장동훈 신부(인천교구)에게 비닐봉지를 내밀었다. 그 안에는 콩나물과 돈이 들어있었다.

할머니는 사제들이 단식을 하며 쓰러지는 모습, 지역에서 미사를 위해 먼 길을 오는 사제를 보면 “이 신부님들이야말로 예수님”이라고 생각했다.

“내가 개를 한 되 사가지고 신부님들 보신탕을 한번 해드렸으면 싶어갖고.... (근데, 세상이) 조용해야지. 미사를 여기 가고 저기 가고....”

할머니는 자신의 쪽방으로 사제들을 초대해 밥을 대접하고 싶지만 평화롭지 않고 어지러운 사회는 이를 허락하지 않는다.

   
▲ 지난 7월 8일 저녁 광화문 광장에서 세월호참사 미사에 참석한 엘리사벳 할머니. ⓒ배선영 기자

하느님의 사랑 안에 산다는 것

엘리사벳 할머니가 가장 좋아하는 것은 신앙, 하느님 안에서 사는 것이다. 그리고 그녀는 하느님을 만나게 된 것, 하느님의 사랑에 늘 감사하고 하느님의 사랑을 이야기하는 것이 기쁘다.

“내가 이대 나온 사람이나 서울법대 나온 사람도 아닌데, 내 말을 알아듣고 성당에 나와 주니까.... 보잘 것 없는 사람이 말한다고 해도 주님을 받아들여서 세례 받고 그런 거 보면 하느님이 항상 내 곁에 계신다는 거야.”

요한복음 8장 32절 “너희들이 내 말을 마음에 새기고 산다면 진리가 자유롭게 하리라”를 읊은 뒤 할머니는 믿음이 없으면 살기가 고달프고 힘들지만, 하느님 안에 살면 행복하기만 하다고 말했다.

하느님의 섭리에 모든 것을 맡긴 할머니는 자신의 먹고 자고 사는 걱정은 하지 않는다. 단지 하느님의 놀라운 사랑을 느낄 뿐이다.

하지만 엘리사벳 할머니는 늘 가난하고 약한 사람들에게 마음이 쓰인다.

“우리 손자가 고3이야. 근데 신부님더러 우리 손자가 고3이니까 좋은 대학 가게 기도해달라는 소리를 못해. 저들은(세월호참사 유가족) 아들, 딸을 강물에다가..... 그런데 내 손자, 내 욕심만.. (채울 수 없어) 그 소리를 못해.”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기도하는 것이 자신의 최종목표라는 엘리사벳 할머니다.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www.catholic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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