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한열의 떼제 일기]

독일에서는 이제 최대 교파가 가톨릭도 개신교도 아닌 무교파(konfessionslos)다. 옛 동독, 특히 500년 전 마르틴 루터의 개혁 근거지였던 튀링겐과 작센안할트는 유럽에서 세례받은 사람의 비율이 가장 낮은 지역이 되었다. 학교에서 종교 수업을 할 수 없을 정도로 신자가 적다. 전통적인 가톨릭 지역이었던 남독일이나 뮌스터 교구 등에도 지난 20년 동안의 변화가 눈에 띈다. 주일 미사가 여러 대 있던 본당이 주일미사를 한 대로 줄였고, 그럼에도 성당을 채우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 신학교는 점점 더 비어 간다. 그렇다고 해도 독일 교회의 미래가 어둡다고 성급하게 판단할 일은 아니다.

교회에 관한 한 독일은 특별한 나라다. 프랑스처럼 국가와 교회가 완전히 분리되지 않았고, 공립학교에서조차 초등학교부터 직업학교까지 여전히 종교 교육이 행해진다. 독일에서는 신앙이 단순히 사적인 영역에 축소되지 않았다.

가톨릭, 개신교 양교회가 격년제로 번갈아 개최하는 대규모 평신도 행사인 가톨릭의 날 (Katholikentag) 이나 교회의 날 (Kirchentag)은 5일 동안 열리는데 참가자가 수만에서 수십 만 명에 이르고 그 가운데 많은 수가 젊은이들이다. 또 거기서는 총리와 국회의장, 야당 당수까지 성경공부를 인도하는 모습을 흔히 볼 수 있다.

▲ "교회는 열려있습니다" 라며 연주회를 알리는 독일의 한 교회 입구. ⓒ신한열

독일 연방의회의 추억

교회와 신자들의 정치 참여를 독일 정치인들이 당연하고 바람직한 것으로 여기는 것을 나는 직접 보았다. 3만 명이 참가하는 떼제의 유럽 청년모임이 몇 해 전에 베를린에서 열렸을 때다. 나는 몇 달 전부터 현지에서 여러 가지 준비를 했다. 20여 개 주제의 워크숍 가운데 하나를 역사적인 독일연방의회 안에서 할 수 있는지를 문의했다. 의회의 호의와 협조는 기대 이상이었고, 두 번에 걸쳐 500명씩 참석하는 워크숍이 의회에서 진행되었다.

연말연시 휴가철이었지만 세 명의 국회 부의장을 포함해 여러 의원이 나와서 유럽 여러 나라에서 온 청년들의 물음에 진지하게 응답하는 것이 인상적이었다. 재미있는 사실은 참가 의원들이 모두 녹색당과 사민당, 좌파 정당 소속이었고 다수당인 기민당(CDU) 소속은 한 명도 없었다는 것. 흔히 기민당이라 번역되는 기독교민주연합은 제2차 세계대전 뒤에 그리스도교 신앙을 기반으로 콘라트 아데나워를 비롯한 가톨릭과 개신교 정치인들이 연합하여 만든 정당이다. 젊은 정치인들은 1세대나 2세대와 달리 그리스도교 색채가 많이 얇아져서 정당 이름에서 그리스도교를 뜻하는 C(Christlich) 를 유지해야 하는가 논쟁이 생겨날 정도가 되었다.

어쨌든, 정치를 비롯한 공적인 장에서 교회가 여전히 자신의 목소리를 낼 수 있다는 것은 여전히 평가할 만하다. 이것은 정치나 시민 사회에서 교회의 가시적 영향력이 미미한 프랑스와 확연히 대비된다. 프랑스의 경우, 1905년의 정교분리 이후 100년이 흐르면서 교회의 사회적 입지가 계속 줄어들었다. 오랜 세월 가톨릭이 절대 다수이면서도, 교회가 약자를 편들지 못하고 그들의 권리를 충분히 대변해 주지 못했던 결과인지도 모른다.

학기 중에 공립학교에서 떼제로

한 주 만에 떼제로 돌아오니 독일 고등학생들이 떼제의 언덕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 학기말 시험을 마치고 방학하기 전에 여러 학교에서 교사들이 학생들을 데리고 떼제에 온다. 대부분이 공립고등학교다. 인솔자는 종교 교사만이 아니라 수학과 영어, 프랑스어, 역사, 음악 교사 등 다양하다. 학생들은 모두 자발적으로 오고 (떼제는 여러 선택지 가운데 하나이거나 다수 학생은 학교에서 수업을 계속한다) 한 주간 동안 떼제에 머무는 것은 성적과는 아무 관계가 없다. 방학 때가 아니면 대부분의 독일 그룹은 학교에서 조직해서 오는 경우다. 내가 떼제에서 독일 사람들을 맞이하는 책임을 맡고 있을 때 이런 학교 그룹을 많이 만났다. 교회에 나가지 않는 학생들이 더 많고, 세례를 받지 않았거나 이슬람 가정의 학생들도 더러 있었다. 그런데 이 10대들은 신선했고 기도에 대해서, 하느님의 존재에 대해서, 다른 종교와 그리스도의 유일성에 대해서 좋은 질문을 던졌다.

▲ 떼제의 젊은이 모임. ⓒ신한열

그런 인연으로 나는 매년 독일을 방문할 때면 고등학교도 한두 군데씩 찾아가곤 했다. 학생들이 떼제에 다녀온 다음에 학교 분위기가 훨씬 더 좋아졌다는 교장 선생님도 여럿 만났다. 인문계 고등학교 학제가 13학년에서 12학년으로 줄면서 한 주간 동안 떼제에 오는 것이 더 어려워졌지만 실제로는 수가 줄지 않았고 오히려 더 늘었다. 선배들이 후배들에게 떼제의 경험을 들려주고 뜻 있는 교사들이 여전히 떼제행을 조직하기 때문이다. 젊은이들에게는 성직자들의 권유보다 또래의 얘기가 더 힘을 발휘하는 법이다. 이번에 만난 교사 몇 분은 이곳의 체험이 학생들의 삶에 얼마나 중요한지 나에게 거듭 말해 주었다.

교회를 떠나는 젊은이, 길을 찾는 젊은이

어떤 성당에 비둘기 떼 수십 마리가 살면서 오물 때문에 신자들이 골치를 앓았다. 비둘기를 쫓아내려는 어떤 시도도 성공하지 못하자, 누군가 비결이 있다며 주임 사제에게 말했다. “비둘기에게 세례와 견진을 주세요. 그러면 다 사라집니다!” 독일 교회의 유머다.

사실 많은 젊은이들이 14-16살 때 견진을 받고 나서 차츰 교회에서 멀어진다.(개신교는 더 이른 12-14살) 그래서 프라이부르크 대교구의 일부 지역에서는 토론 끝에 견진 연령을 18살로 높였다. 좀 더 책임 있는 나이에 본인이 결정하고 선택해서 견진을 받게 하자는 의도였다. 그러자 견진 신청자가 대상자의 5분의 1도 되지 않았다고 한다. 그렇게 젊은이들을 놓치기보다는 좀 더 어린 나이에 부모나 조부모의 의사에 따라 혹은 선물에 대한 욕심에서라도(견진 때는 흔히 많은 선물을 받는다!) 더 많은 사람이 견진을 받도록 하는 것이 좋은지, 논쟁은 계속되고 있다.

떼제에서 우리는 15-16살을 위한 별도의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20여 년 전에 내가 이 프로그램을 시작했을 때는 방학 때도 매주 40-50명씩이던 이 연령층이 지금은 주간에 따라 200-300명에서 1000명 이상까지 온다.

학교 그룹을 비롯하여 독일 사람이 제일 많다. 처음에는 너무 어린 사람들이 떼제에 와서 전체 분위기를 해치지는 않을까 하는 형제들의 우려도 있었다. 하지만 그것은 기우였다. 자신과 하느님에 대해서 질문을 던지기 시작하는 이 시기에 신앙을 지식으로서만이 아니라 체험으로 배우는 것은 더없이 소중하다.

물론 이 10대들을 포함해서 떼제를 찾아오는 젊은이들이 집으로 돌아가면 어떻게 신앙생활을 계속할 것인가 하는 질문은 남는다. 교회 단체에 속하거나 정기적으로 나가는 이들은 학교나 사회에서 소수가 되었고 또래들에게 이해를 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교회는 대다수의 젊은이들에게 매력을 주지 못하고 있다. 그렇지만 젊은이들의 내면 깊은 곳의 목마름이 사라진 것은 분명 아니다. 교회는 길을 찾는 소수의 젊은이들을 어떻게 맞이하고 동반할 것인가?

교회와 그리스도인들이 소수가 되는 것이 꼭 부정적인 것만은 아닐 것이다. 그동안 독일의 사제들은 교회에 딸린 많은 기관을 관리하는 관리자, 경영자의 역할을 강요받아 왔다. 거기에다 사제 수의 감소로 세례와 미사, 결혼과 장례 등 성사 위주의 직무만으로도 버거운 지경에 이르렀다. 그래서 신자들의 영성 생활을 돌보는 사목을 위한 시간이 부족하다는 지적이 많았다. 평신도들의 역할을 비롯해서 달라진 환경에서는 새로운 선교 방식과 사목이 가능할 것이다. 이제껏 존재해 왔던 교회의 방식이 사라지고 있는 것은 분명하지만 새로운 모습이 아직 분명히 보이지는 않는다. 교회가 물질적으로 더 가난해질수록 조금 불편할지리도 복음의 본질에 더 충실해질 수 있지 않을까 ?

독일 교회를 보면, 관습이나 전통으로 신앙생활을 하던 시절은 지났고 이제는 신자들이 진정으로 하느님을 찾으며 세상 안에서 그리스도를 따라 살기로 결단하고 소수임을 알면서도 교회 공동체에 속하기로 선택하는 시기가 시작되었다는 느낌을 받는다. 그렇다면 그것은 교회의 위기가 아니라 오히려 기회가 아닐까?
 

 
 
신한열 수사
떼제 공동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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