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공석 신부] 7월 5일(한국 성직자들의 수호자 성 김대건 안드레아 사제 순교자 대축일) 마태 10, 17-22

오늘은 한국인 첫 사제 김대건 신부님을 기억하는 날입니다. 그분은 열여섯의 어린 나이로 고국을 떠나 외국을 전전하며 어렵게 공부하였습니다. 신부로 서품되고, 귀국하여 불과 8개월 동안 활동하다가 체포되어, 3개월의 옥고를 치른 뒤 한강변 새남터에서 참수당하여 순교하였습니다. 1846년 9월 16일의 일입니다. 당시 그분은 겨우 스물여섯 살의 젊은 청년이었습니다.

그분이 집을 떠난 지 6년, 신부가 아직 되지 않은 스물두 살의 신학생일 때, 조선에 입국하기 위하여 중국의 요동 땅에 머문 일이 있었습니다. 그때 조선에서 온 신자들로부터 자기 부모에 대한 소식을 들었습니다. 그는 파리외방전교회 본부로 보낸 보고서에 그 소식을 다음과 같이 언급하고 있습니다. “저의 부모는 많은 고난을 당하여 아버지는 참수로 순교하였고, 어머니는 의탁할 곳이 없는 비참한 몸으로 교우들 가운데 떠돌아다니신다고 합니다.” 사실 그의 부친 김제준은 아들을 떠나보내고 3년 뒤, 아들을 해외로 보낸 죄가 발각되어 체포되어 참수형으로 순교하였습니다. 그때부터 그의 모친 우르술라는 의지할 곳 없는 몸이 되어 이집 저집을 떠돌며 살아야 했습니다.

▲ 성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의 흉상.(사진 출처 = commons.wikimedia.org)
그 뒤 그분이 신부가 되어 입국하였다가 체포되어 서울 포도청의 옥에 있을 때, 죽음을 기다리면서 당시 조선 교구의 교구장 페레올 주교에게 작별 인사 편지를 쓴 것이 있습니다. 그 편지 마지막에 자기 모친을 부탁하는 내용이 이렇게 적혀 있습니다.

“저의 어머니 우르술라를 주교님께 부탁드립니다. 어머니는 1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아들을 보지 못하다가 며칠 동안 한 차례 아들을 볼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곧 다시 아들과 헤어져 살아야 했습니다. 슬퍼하실 어머니를 부디 위로하여 주십시오. 주교님의 발아래 엎드려 마지막 인사를 드립니다.”

그리스도 신앙은 그 시초부터 순교자들을 많이 배출하였습니다. 오늘 우리가 들은 복음에는 초기 신앙인들이 겪었던 박해와 순교가 반영되어 있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모두 유대인이었고, 그들은 예수님이 돌아가신 뒤에도 유대교 회당 집회에 참석하였습니다. 그들은 십자가에서 돌아가신 예수님이 부활하여 살아 계시다고 집회에서 발언하였다가 매 맞고 쫓겨났습니다. 그들은 그런 과정을 거치면서 유대교와 결별하고, 독자적 공동체를 만들어 독립하였습니다.

복음서들 여기저기에서 그들이 유대교와 결별하면서 겪어야 했던 고통의 흔적들을 볼 수 있습니다. 오늘 우리가 들은 복음도 그 중의 하나입니다. 신앙인들이 ‘의회에 넘겨지고’, ‘회당에서 채찍질 당하며’, ‘다른 민족들에게 증언할 것’이라고 말합니다. 바오로 사도는 고린토 사람들에게 보낸 편지에 “유대인들로부터 40대에서 하나가 모자라는 매를 다섯 차례나 맞았다”(2고린 11,24)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런 박해는 처음부터 적대감을 지녔던 사람들로부터 오지 않았습니다. 오늘 복음은 말합니다. ‘형제가 형제를 넘겨 죽게 하고 아버지가 자식을 그렇게 하며, 자식들도 부모를 거슬러 일어나 죽게 할 것이다.’ 가족의 혈연이 찢어지고 친지들의 따뜻함이 미움으로 바뀌는 아픔을 체험한 그리스도 신앙인들이었습니다. 한국의 순교자들도 같은 아픔을 겪었습니다. 그들은 신앙인이 되었다는 이유 하나로 가문에서 파문당하고, 가족들로부터 외면당하였습니다. 신앙인 한 사람이 발각되면, 그 가문 전체가 고초를 겪어야 했습니다. 신앙인 한 사람이 체포되면, 나머지 가족들은 모두 노비로 끌려가기도 하였습니다.

초기 신앙인들은 박해를 받으면서, 십자가에 돌아가신 예수님을 따른다고 생각하였습니다. 잡혀갔을 때에 ‘어떻게 말할까, 무엇을 말할까 걱정하지 마라.’는 말씀이 오늘 복음에 있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입을 빌려 복음은 말합니다. ‘말하는 이는 너희가 아니라 너희 안에서 말씀하시는 아버지의 영이시다.’ 신앙인들은 예수님 안에 하느님의 영이 살아 계셨듯이, 그들 안에도 아버지의 영이 살아 계셔서 말씀하신다고 그들은 믿었습니다.

초기 그리스도 신앙인들은 그렇게 죽음을 각오한 이들이었습니다. 초기에 팔레스타인에서도 그러하였고, 19세기 우리나라에서도 그러하였습니다. 신앙은 하느님의 자비와 용서를 실천하는 삶의 운동입니다. 죽기 위한 길이 아니라, 자비하신 하느님의 생명을 살기 위한 길입니다. 세상은 미워하고, 단죄하고, 벌주면서 그 질서를 유지합니다. 예수님 시대 유대교 기득권층도 율법을 철저히 지키고 성전 제사 의례에 충실하여, 하느님의 벌을 피하고, 많은 축복을 받아야 한다고 가르쳤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믿고 가르친 하느님의 일은 달랐습니다. 하느님은 사람들이 당신의 자비와 용서를 실천하여 당신의 자녀 되어 살 것을 원하십니다. 하느님에 대한 예수님의 그런 가르침은 그 시대 유대교인들에게는 혼란을 일으키는 것이었습니다. 그들이 예수님을 제거한 이유입니다.

그리스도 신앙이 우리나라에 들어온 것은 18세기 말입니다. 그 시대 조선 정부는 유교적 질서를 지향하였습니다. 효와 충이 지상의 가치였습니다. 그리스도 신앙은 하느님 중심의 질서를 가르쳤습니다. 효와 충도 중요하지만, 그것들은 이차적이었습니다. 그런 이념적 이질감에다, 사분오열되어 서로 다투던 그 시대 당파싸움이 가세하여, 조선 조정은 그리스도 신앙을 사악한 종교로 낙인찍었습니다. 그래서 순교한 이들의 수가 2만 명에 육박합니다. 순교는 하지 않아도 순교자의 가족이기 때문에 고통을 겪어야 했던 분들까지 생각하면, 참 많은 생명이 희생당하였습니다.

예수님이 가르친 하느님 나라의 질서는 하느님의 자비와 용서가 만드는 질서입니다. 그 질서는 아무도 희생시키지 않습니다. 사람들의 자발적 희생이 있어서 이웃이 더 자유롭게, 또 더 풍요롭게 살도록 합니다. 예수님은 죽음이 다가오자 혼자 나서셨습니다. “나를 찾고 있다면 이 사람들은 보내 주시오.”(요한 18,8) 겟세마니에서 체포되면서 하신 말씀입니다. 예수님은 스스로 죽어서 다른 사람을 살리는 질서를 창립하셨습니다. 그것이 하느님 나라의 질서입니다. 교회 초기부터 신앙인들은 박해를 당하고 목숨을 잃으면서, 예수님이 여신 하느님 나라의 질서를 살았습니다. 그들에게 순교는 예수님을 따르는 일이었습니다. 그들은 죽음의 경계를 넘어서도 우리와 함께 계시는 하느님을 믿었습니다. 하느님의 자비를 실천하여 그분의 생명을 산 자녀는 하느님과 함께 살아 있습니다. 예수님이 죽고 부활하셨다는 그리스도 신앙이 말하는 바입니다.
 

서공석 신부 (요한 세례자)

부산교구 원로사목자. 1964년 파리에서 사제품을 받았고, 파리 가톨릭대학과 교황청 그레고리오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광주 대건신학대학과 서강대학 교수를 역임하고 부산 메리놀병원과 부산 사직성당에서 봉직했다. 주요 저서로 “새로워져야 합니다”, “예수-하느님-교회”, “신앙언어”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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