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민아의 일상과 신비]

오래 기다렸던 만큼, 간절히 기대했던 만큼, 프란치스코 교종의 회칙 “찬미를 받으소서(Laudato Si’)” 에 대한 반응이 지구촌 곳곳마다 뜨겁습니다. 이곳 미국도 예외는 아닌데요, 아마도 생태 위기가 초래된 데는 누구보다도 강대국의 과오와 책임이 크다는 것을 회칙이 직설적으로 지적했기 때문인지, 교계 언론뿐 아니라 다양한 매체들이 진지한 분석기사를 쏟아 내고 있습니다. 교종이 힘주어 말했던 각계 각층의 대화가 이미 시작되고 있는 분위기가 은근 부럽기도 합니다.

기사들을 살펴보니, 환경회칙이 가톨릭교회 역사에 거대한 분수령이 될 것이라는 데는 이견의 여지가 없어 보입니다. 제게는 특히 환경문제뿐 아니라 빈곤척결과 인권 옹호를 위해 활동해 왔던 주교들의 목소리에 힘이 실린 것이 반갑더군요. 주교들은 회칙이 환경 문제를 “가난한 이들을 위한 우선적 선택”과 긴밀하게 연결하고 있다는 것,(139항, 158항) 또 “생태적 회심”(ecological conversion)을 신자 개개인의 선택 사항이 아니라 교회의 의무이자 신앙인의 삶의 태도로 권하고 있다는 것을 강조합니다.(217항, 219항) 극심한 가뭄에 시달리고 있는 캘리포니아 스톡턴(Stockton)교구의 스티븐 블레어(Stephen Blaire)주교는 가뭄과 산불과 오염된 공기로 황폐해진 지역에서 가장 고통스런 삶을 살고 있는 이들은 예외 없이 가난하고 힘 없는 이들임을 상기시킵니다. 환경과 빈곤의 문제는 동전의 앞뒷면이라는 말이지요. 라스크루시스(Las Cruces)교구의 오스카 칸투(Oscar Cantu, S.T.D)주교 또한 “가난한 이들은 갈수록 위험해지는 자연환경으로부터 스스로를 보호할 능력을 갖기 힘들다”면서 생태위기는 단순히 과학과 정치에 국한된 문제가 아니라 신앙적, 도덕적 문제라고 말합니다. (기사참고)

▲ 올해 6월 5일 창조보전축제 참가자들이 로켓화덕을 이용해 저녁밥을 준비하고 있다. ⓒ강한 기자

회칙의 내용은 물론이지만 교종이 사용한 언어와 문체에도 많은 이들이 주목하고 있습니다. 이번 회칙은 공식적이고 엄숙한 라틴어가 아니라 대중적이고 친숙한 이탈리아어로 쓰였지요. (기사참고) 아시다시피, 회칙은 바티칸에서 발행하는 문서들 중 최고의 권위를 갖습니다. 하지만 교종은 자신이 교회의 수장이기에 모든 문제에 해답을 갖고 있다고 주장하지 않습니다. 정책에 대한 권고가 구체적이면 구체적일수록 그의 문체는 덜 권위적인 톤으로 바뀌지요. 두려움을 조장하는 위압적인 단어, 혹은 가톨릭 전통에 깊이 천착한 사람들만 이해할 수 있는 전문용어나 개념어를 찾아 볼 수 없습니다. 대신 누구나 거부감을 느끼지 않을 부드럽고 쉬운 단어로 경제학자, 사업가, 공직자, 환경운동가, 발명가, 종교지도자들이 서로의 의견을 나눌 소통의 장을 마련합니다. 부드러운 어조 뒤에는 물론 날카로운 현실 인식과 엄중한 권고가 담겨 있지요. 예수회 신부이며 사회학자인 토머스 리스 (Thomas Reese, S.J)는 회칙의 언어와 문체가 그 지향을 대변하고 있다고 말합니다. 즉, 이 회칙은 지구촌에 살고 있는 모든 이들에게 보내는 교종의 초대이며, 나아가 “모두의 참여와 희생을, 특히 힘 있고 부유한 이들의 희생을 요구하는 평화로운 혁명”이라는 것이지요. (기사참고)

회칙에 대한 쓴소리들도 있습니다. 예상했던 바지만 자신이 “전통적인” 가톨릭 신자라고 주장하는 이들은 이번에도 어김 없이, 교종이 가톨릭의 “본질적인 신앙과 도덕”에 집중하지 않고 정치에 관여하고 있다고 비판합니다. 이런 분들은 회칙을 제대로 읽어 보기는 했는지 궁금합니다. 인간을 비롯, 대부분의 생명들을 죽음으로 내모는 환경위기가 “본질적인 신앙과 도덕의 문제”가 아니라면 도대체 뭐가 신앙이고 도덕일까요? (기사참고)

그저 트집처럼 들리는 이런 비판 말고, 새겨들어야 할 비판도 있습니다. 여성신학자들의 의견입니다. 즉위 이후 교종은 파격적인 개혁과 쇄신의 행보를 통해 바티칸과 오래 갈등해 왔던 여성신학자들에게도 희망과 기대를 주었지만, 안타깝게도 여성사제 안수를 비롯 성평등과 관련된 사안에 대해서는 아직 이렇다할 인식의 변화를 보이지 않고 있습니다. 시카고신학교 (Chicago Theological Seminary)의 신학자 수전 브룩스 시슬스웨이트(Susan Brooks Thistlethwaite)는 이번 회칙이 자연과 대지를 여성화하여 표현한 것 (1항, 성 프란치스코의 “태양의 찬가” 인용)에 불편함을 토로합니다. 그리스도교는 그간 인간과 자연의 이분법적 구도를 고수하며 자연을 물질, 혹은 여성으로 표현해 왔습니다. 여성을 남성 보다 열등한 존재로, 지배와 간섭과 통솔이 필요한 존재로 이해하는 성차별적 인식이 자연에 대한 태도에도 그대로 반영되어 있는 것이지요. 시슬스웨이트는 환경회칙이 그간 억압과 착취를 근간으로 해 온 그리스도의 환경 이해를 강하게 비판하고 있다는 점에서 진일보 한 것은 분명한 사실이지만, 여성을 평등한 존재로 인식하지 않는 가부장적 태도를 여전히 견지하고 있다면서, 성평등은 모든 생명체가 함께 살아갈 “공동의 집”(common home)을 실현하는 데 가장 우선적인 과제라고 말합니다. (기사참고)

<내셔널 가톨릭 리포터>(National Catholic Reporter)의 편집자 제이미 맨슨 (Jamie L. Manson)은 회칙이 “모든 이들의 적극적인 실천”을 촉구하고 있으면서도, 일부 가난한 국가에서는 매우 효과적인 실천일 수 있는 수태조절에 대한 언급을 피하고 있다는 점을 아쉬워 합니다. 필리핀을 포함, 대다수가 가톨릭 신자이면서 자원의 공급과 분배가 원활하지 않은 지역들에서는 교종이 제시한 “식량의 재분배와 소비주의 문화 타파”는 사실 현실감이 떨어지는 목표입니다. 이들 지역에서는 인공피임이 인간과 다른 생명체의 삶의 질을 높일 수 있는 실질적인 해결책이 될 수 있지만, 가톨릭 교회의 피임 금지 정책 탓에 많은 여성들이 적절한 가족계획을 도입할 수 없지요. 맨슨은 생태위기에 대처하기 위해 우리 모두가 “대담한 결정”을 내려야 한다면, 바티칸 또한 낡은 입장들을 재고하고 수정하는 대담한 시도가 필요할 것이라 주장합니다.(기사참고)

이러한 비판들은 ‘더디지만 함께’를 표방하는 가톨릭교회의 변화 방식을 감안한다면, 또 아무리 파격적이라 해도 바티칸이라는 권위적인 조직의 대표인 교종의 입지를 고려한다면 다소 과격하고 비현실적으로 들릴 수도 있겠지만 반드시 귀 기울여야 할 의견들임에는 틀림 없습니다. 다양한 입장들이 수용되고 존중될수록, 교종의 사목이 더 풍성해지고 활기를 띠게 될 것입니다. 교종은 상명하달의 방식보다 대화를 통한 근본적 변화를 선호해 왔으니까요.

이미 많은 분들이 이야기했지만, 저 또한 환경회칙에서 가장 빛나는 부분은 “통합적 생태론”(integral ecology)의 비전이라 생각합니다. 회칙은 처음부터 끝까지 일관되게 하느님과 인간, 인간과 인간, 인간과 다른 생명체들 사이의 유기적인 관계성에 기반하여 환경문제를 풀어 가고 있지요. 교종은 생명들 사이의 상호관련성을 이해하지 않고는 생태위기에 대응할 수 없을 뿐 아니라, 하느님과의 관계도 올바로 세울 수 없다고 말합니다. 지구는 모든 생명체가 모두 함께 하느님나라를 실현할 책임과 권리를 갖고 사는 “공동의 집”입니다. 가족이 고통으로 신음할 때 가족 구성원 모두의 몸과 마음이 괴롭듯, 이웃과 다른 생명체가 초 단위로 죽어 가는 환경에 살며 내 행복만 추구할 수 없습니다.

이런 의미에서 회칙은 즈음의 한국사회에, 특히 그리스도인들에게 더 없이 준엄하고 매서운 메시지를 던지고 있습니다. 이웃과 다른 생명체의 고통에 기반한 풍요는 그리스도교 신앙에 용납될 수 없으며, 고통에 무감한 신앙생활은 올바른 신앙생활이 아닙니다. 신앙인이라면, 수백 명의 생명을 바다에 수장시키고도 나몰라라 하는 정치인들을 보며 참을 수 없이 분노해야 합니다. 신앙인이라면, 실업과 해고로 일터와 삶터를 잃어버린 이웃들을 보며 밥숟가락 넘기는 것이 미안해져야 합니다. 신앙인이라면, 더 이상 생명을 품을 수 없게 되어 버린 4대강을 보며 숨이 턱턱 막히고 가슴이 답답해져야 합니다.

회칙은 단순한 입장 표명이 아닙니다. 마음으로 새기고 행동으로 옮겨야 할 신앙의 지침이지요. 그러기에 교종은 교회, 학교, 가정, 언론을 통한 교육이 중요하다고 말합니다. 통합적 생태학론이 일상에 젖어 들고 생활 습관이 될때, 폭력과 착취, 신속과 효율성에 집착하고 소비를 조장하는 문화가 불편해지고, 정치, 경제, 사회의 권력자들에게 압력을 행사할 수 있게 됩니다.(206항) 일상을 통해 통합적 생태론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대화가 중요하지요. 회칙에 대해 우선 많은 이야기들이 오고 가야 합니다.

미국의 유수 일간지 <뉴욕타임스>에서는 이런 맥락에서 흥미로운 시도를 하고 있더군요. 회칙이 다양한 공동체에서 어떻게 받아들여지고 있으며, 또 회칙을 실천으로 옮기기 위해 어떤 구체적인 몸짓이 있는지 의견과 사연들을 모으는 웹사이트 공간을 만든 것입니다. 그 공간을 통해 교회들과 교계 단체들뿐 아니라 여러 공동체들이 의견을 교환하고 대화를 지속하며 서로 협력하도록 촉구할 듯합니다. 한국교회에도 이렇게 교구, 본당, 단체들이 서로 오가며 좋은 자극을 주고받고 마음과 손을 모을 수 있는 온라인 대화공간이 마련 되면 좋겠습니다. 구성원들의 격의 없고 터울 없는 의사소통, 공동의 집을 위한 첫걸음이 될 것입니다.

 

 
 

조민아
미국 미네소타의 세인트캐서린 대학에서 신학과 영성을 가르치고 있다. 제도교회와 신앙인의 삶 사이에서 발생하는 작고 큰 움직임, 갈등, 투쟁, 타협, 화해와 그 과정에서 새롭게 탄생하는 언어와 상징에 관심이 많다. “지금”, “여기”에서 할 수 있는 역할이 무엇인가 늘 묻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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