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금여기 창간기념강연 /김종철 선생

 

김종철 녹색평론 발행인. 3월 26일 지금여기 창간기념식에 앞서 강연을 하면서 정치권력과 제도화된 교회의 문제를 짚어내고 언론의 역할을 성찰하는 시간을 가졌다.

제도, 시스템이 문제

국가는 필요악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아나키스트는 아니지만 어떻게 보면 극단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필요악의) 국가를 선한 국가로 만드는 노력은 우리가 해야 합니다. 관료나 군대는 자신을 일반화하지 못합니다. 그럴 수가 없습니다. 공공선을 하도록 우리가 국가에 압력을 가해야 합니다. 위선적으로라도 선을 행할 수 있도록 말입니다.

교회와 언론의 관계가 이렇지 않을까 싶습니다. 필요악이라고까지 할 수 있을까 싶지만요. 제도화될 수밖에 없는 교회도 국가와 마찬가지라는 것입니다.

이반 일리히는 라틴어 격언을 인용해 이렇게 말했습니다. "가장 좋은 것이 부패할 때 가장 나쁜 것이 된다." 제도화될 수 밖에 없는 교회를 말하는 거지요

초대 교회 때 그리스도교 신자들은 집 안에 양초와 담요와 마른빵을 준비해 두었습니다. 지나가는 나그네가 문을 두드리면 양초를 불을 밝혀 그를 맞아들이고 방으로 안내해 담요를 깔아주고 먹을거리인 마른빵으로 식사를 할 수 있도록 해주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각 가정에서 그리스도인의 정신으로 펼치던) 구휼이 4C초에 그리스도교가 로마 국교가 되면서 사라집니다. (가난한 사람을) 구휼하는 것을 제도화된 교회가 맡으면서 (각 가정에서) 양초와 담요와 마른빵이 사라진 것입니다.

주류사회와 교회에 대한 비판 필요

저는 제도를 부정하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제도를) 끊임없이 의식하고 비판해야 합니다. 관료화된, 경직된 시스템으로 화석화시키지 않으려면 말입니다. 제도화된 종교를 내부에서 계속해서 비판해야 합니다. 그래야 그리스도교도 살고 개개인의 (그리스도인도) 삽니다.

강연을 주의깊게 경청하고 있는 참석자들.

이반 일리히는 스페인에서 연구소를 했습니다. 라틴 아메리카로 선교를 하러 떠나는 선교사들에게 스페인어를 교육하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당신들이 선교를 해야 하는 곳은 라틴 아메리카가 아니라 북아메리카다"라고 했습니다.

라틴 아메리카는 소위 (서구의) 지식인들이 오염을 시킨 것이지요. 오히려 가르침을 받을 사람들은 서양에 있습니다. (라틴 아메리카 사람들은) 오랜 전통 안에서, 이 땅에 계속되어 온 민중 사회에서 나온  나름대로의 지혜를 갖추고 있었습니다.

현대의 자본주의 근대문명이란 것은 지혜로운 민중의 삶과의 전쟁입니다. 모더니티의 기원을 사회과학자는 자본주의에 두고 있는데 일리히는 제도화된 그리스도교에 둡니다. 구휼과 친절과 이웃사랑을 제도화하는 데서 근대가 비롯되었다고 보는 것이지요. (이렇게) 관리하고 시스템화하는 것이 (바로) 근대의 본질이라고 말입니다. 그런데 민중 공동체는 시스템 이전에 자발적으로 시작되었습니다.

<가톨릭뉴스 지금여기>와 같은 언론의 사명은 교회에 대해서, 교회 주류 사회에 대해서 비판적인 작업을 하는 데 의의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우정과 공동체의 가치 회복해야

(어쨌든) 제일 문제는 공동체가 없어진 것입니다. 자유로운 삶의 토대인 공동체가 없어졌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비굴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노동운동도 안 되는 것입니다. 농촌, 농민사회를 도시 노동자들이 외면한 데 있습니다. 농촌이 살아있어야 노동자들이 도시에서 자본가들한테 농락당하지 않고 (노사간의) 교섭력도 강해집니다. 그런데 지금 (도시 노동자들은) 돌아갈 데가 없습니다. 그래서 노동운동이 안 되는 겁니다. 지금 진보진영의 사람들은 농업 공동체, 농민 사회에 무관심합니다. 기존 시스템에 대해 '아니오'라고 할 수 있는 토대가 없는 게 문입니다. 그저 목구멍이 포도청이라는 논리라고 할 수 있죠.

여기 오기 전에 전교조 교사를 만났습니다. 교사로서 양심선언을 하신 분입니다. 지금 우리 사회는 비상 상황 아닙니까? 바로 오늘 아침에도 경찰에서 (광우병 소고기 문제를 다룬 mbc) PD 수첩의 PD를 체포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도 우리는 '아니오'라는 것도 즐겁게 해야 합니다. 희생당하고 비참해지고 고립되면 재미가 없습니다.

종교라는 게 사람을 기쁘게 하고 재미있게 해주는 것이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얼마 전에 (뉴스를 통해서) 문규현 신부와 수경 스님이 오체투지를 다시 시작한다는 기사를 보았습니다. 그분들은 그게 재미있으니까 하는 거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그렇게 말합니다. 그런데 재미가 있으려면 친구가 있어야 합니다.

한때 저는 정치를 통해서 인류 사회의 교정이 가능할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70년대, 80년대, 90년대를 거치면서 우리 사회는 유전자 조작, 인간복제라든지 점점 더 가혹해 지고 있습니다. (인간의) 자율성과 자립성이 빈틈 없이 막혀버렸습니다. 한국 교육도, 언론도 수습 불가능 상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반 일리치는 (이런 데서) 희망을 버렸다고 했습니다.

그 이반 일리히의 가까운 친구요 제자인 볼프강 찰스라는 분이 있습니다. 이 사람은 유럽의 그린피스를 통해 실천적인 활동을 합니다. 정책에 실천적으로 반영되는 일을 하는데, 이반 일리치가 "당신 쓸데 없는 일 한다"고 그럽니다. 정치운동으로 사회 개혁은 거의 불가능하다고. 논리적으로는 말이 안 되지만 (저는) 둘 다 옳다고 생각합니다.

우리에게 (희망으로) 남은 한 가지가 있습니다. 구체적으로 서로 얼굴을 마주보고 몸을 부빌 수 있는 벗들이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 말로는 공동체라고 하고 협동조합으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역시) 토대가 있어야 아니오라고 저항할 수 있습니다. (혼자서 외롭게 하는) 무시무시한 결단이 아니라, 명랑하게 발언하기 위해서는 내가 발을 디디고 있는, 우정(friendship)으로 이루어진 그물망(networking)을 형성해야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지금여기를 통해서) 언론협동조합도 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세계적으로 종이신문은 파산상태에 이르러 있습니다. 언론협동조합의 일환으로 지금여기란 매체가 자기 역할을 해주는 매체로 성장하기를 바랍니다.

[강연: 김종철/ 녹색평론 발행인, 정리: 박오늘/ 지금여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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