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5킬로미터, 실향민들의 섬

인천교구 민족화해위원회(민화위)가 6월 23일 강화 교동공소에서 신자 12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광복 70주년 평화통일염원 미사’를 열었다.

미사 중에는 강론을 대신해 교구 민화위원인 김영애 씨(데레사)가 교동도의 역사와 의미를 설명하며, 이곳이 ‘평화의 섬’이 돼야 한다고 말했다. 자연과 인간이 평화롭게 공존하는 곳이며, 북한과 아주 가까우면서도 정전협정에 따라 남북한 민간 선박 모두가 이용할 수 있는 한강하구 중립지역에 속하기 때문이다.

▲ 6월 23일 강화 교동공소에서 열린 '광복 70년 평화통일염원 미사' 도중 김영애 씨가 교동도에 대해 소개하고 있다. ⓒ강한 기자

교동도는 강화도 서북쪽에 있는 섬으로 바다를 사이에 두고 북한 황해도 연백군과 5킬로미터 거리에 있다. 2014년 강화도와 교동도를 잇는 연륙교가 개통돼 대중교통으로도 접근이 편리해졌다.

강화도에서 태어난 김영애 씨는 부모님이 황해도 연백군에서 피난을 온 실향민이었다. 그는 현재 교동도에서 살면서, ‘새 우리누리 평화운동’의 대표를 맡고 있다. 새 우리누리 평화운동은 남북 교류, 협력을 위해 2007년에 만들어진 민간단체로 30여 명이 참여하고 있다.

김 씨는 한국전쟁 중 폭격을 피해 교동도로 건너온 피난민이 3만 명에 이르렀다면서, 이들이 모두 작은 섬에서 살 수 없으니 강화도로 이주한 경우가 많았다고 설명했다.

교동도는 47제곱킬로미터 넓이에 3000여 명이 사는 작은 섬이다. 김영애 씨는 연백군에서 온 피난민들이 교동도에 농사 기술도 옮겨 왔고, 그 결과 이 섬의 4분의 3은 논이라고 소개했다. 일주일 또는 열흘이면 황해도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을 줄 알았던 피난민들은 고향을 5킬로미터 앞에 두고 60여 년을 보내다 하나둘 세상을 떠났다. 김 씨는 교동도로 피난와 지금까지 살아 있는 실향민이 몇 명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날 미사는 교구 민화위원장을 맡고 있는 전대희 신부와 전 위원장 오용호 신부, 메리놀 외방 선교회 소속으로 교동공소에 머물고 있는 방인이 신부 등이 공동집전했다.

이날 미사에서 인천교구 민화위는 북한선교의 하나로 ‘실향민의 섬’ 교동을 평화의 섬으로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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