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교리 렌즈에 비친 세상 - 박용욱]

1. 외과의가 의사 선생님이 되기까지

최근 한풀 꺾이는 조짐이 보인다고 하지만 여전히 의사라는 직업은 선망의 대상이다. 해마다 대입시험의 최상위 학생들을 의과대학이 독점하다시피하고, 선호하는 배우자 직업으로 의사의 인기는 여전하다. 고소득 전문직종의 대명사격인 의사 중에서도 인기과와 비인기과가 또 갈리는데, 속칭 ‘피안성’으로 불리는 피부과, 안과, 성형외과가 인기를 끌다가 ‘정재영’, 곧 정신과, 재활의학과, 영상의학과 등이 그 자리를 이어받고 있다. 의사 수급의 문제와 맞물려 의사의 진로선택도 유행을 타는 셈이다. 그런데 유행의 파도가 그렇게 넘실대도 부동의 인기를 자랑하는 과가 있으니 바로 정형외과다. 정형외과 전문의로서 수술 실력을 인정받으면 돈 걱정은 안 할 수 있단다. 전통의 내과마저 흔들리는 판에 정형외과 의사는 의대생 사이에서 큰 인기를 누린다.

그런데 서양의학의 긴 역사 가운데 외과 의사(Surgeon)가 처음부터 의사 대접을 받은 것은 아니었다. 아직도 영국에는 내과 의사(Physician)만을 닥터라고 부르고, 외과의사, 즉 서전은 미스터라고 부르는 사람들이 있다. 전통적으로 내과의사는 서양의학의 체계를 집대성한 갈레노스(129-199?)의 후예로서 책을 읽고 연구하는 귀족들로 간주되는데 반해, 서전들은 내과의의 지시에 따라 손에 피를 묻히는 잡부로 취급받던 관습이 있었기 때문이다. 의사의 지시에 따라 환자의 몸에 칼을 대고 피와 고름을 받아 내는 이들 서전은 이발사들이 주로 겸했는데, 성능 좋은 칼과 가위를 숙련된 솜씨로 다루는 데는 이발사만한 사람들이 없었기 때문이다.

▲ 흑사병, 아르놀트 뵈클린.(1898)
이처럼 의사 나리들의 뒷일을 도맡던 서전들이 일약 닥터의 반열에 오르게 된 데에는 역사적 배경이 있다. 1347년 시칠리아의 메시나에 한 상선이 입항하면서 시작된 흑사병의 대유행이 그것이다. 이 상선에서 내린 선원들은 일찍이 유럽인들이 보지 못한 전염병에 걸려 있었고, 얼마 지나지 않아 모두 숨을 거둔다. 항구에서 퍼지기 시작한 죽음의 그림자는 삽시간에 유럽 전역을 뒤덮는데, 불과 5년의 첫 유행 동안 흑사병은 적어도 유럽 인구의 1/3을 죽음으로 몰아넣는 맹위를 떨친다. 하지만 정체모를 전염병 앞에서 당시의 내과의들은 그저 무력할 뿐. ‘귀하신 분’들을 보살피는 ‘귀한 의사 선생님’들은 여전히 도서관에서 책을 읽거나, 그들을 고용한 귀족들과 함께 한적한 고성으로 피신할 따름이었다. 백성들은 저잣거리에서, 집에서 쓰러져 갔지만 그들의 상처를 닦아 내고 힘없는 손을 잡아 주며 찬 수건을 머리에 얹어 주기에는 왕족과 귀족, 그리고 의사 선생님들은 너무 멀리 있었다. 누가 저 신음하는 환자의 곁을 지키며, 가족조차 거두기 힘든 시신은 누가 거두어 줄 것인가.

여기에 응답한 것이 서전들이었다. 피와 살과 뼈를 다루는 데 능숙했던 그들, 환자의 가장 더러운 상처까지도 직접 만지던 서전들은 환자와 그 가족 곁을 지키는 거의 유일한 ‘선생님’들이었다. 저 높으신 분들이 전염병 앞에서 지극히 무력하고 나약한 인간임을 스스로 폭로하는 동안, 피와 고름의 진창 속에서 백성의 손을 잡아 준 이들이 서전들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사람들은 이들의 수고와 헌신을 잊지 않았다. 그 뒤로 선생님 소리를 들을 수 없었던 서전들이 차츰 ‘외과의’의 위상을 누리게 된 것은 말할 필요가 없다.

2. 수백 년 뒤 대한민국에서는....

작년의 세월호에 이어서 올해 메르스는 대한민국의 민낯을 또 다시 드러내고 있다. 은폐와 조작으로 어물쩍 넘어가려는 이들의 속셈과 달리 메르스는 오늘 이 시각에도 안타까운 사망 소식을 전한다. 최첨단의 의료기기와 호텔 뺨치는 호화시설을 자랑하던 의료 자본은 메르스를 초기 진압하는 데 실패하고, 그 여파로 가뜩이나 움츠려 있던 서민들은 의혹과 두려움 속에서 전전긍긍한다. 수백 년 전 위기 상황에서 환자의 곁을 지키던 서전들처럼, 오늘 대한민국에서 누가 이웃이 되어 주고 있는가? 메르스로 빚어진 이 공황의 시기에 교회는 성수통을 닫고 행사를 취소하는 것 외에 무엇을 하고 있는가?

다행히 광주에서 기쁜 소식이 들려 온다. 격리된 농민들을 대신해서 밭으로 논으로 달려간 광주대교구 교우들의 소식은 가뭄 끝의 장마 소식처럼 청량하다. 의료자본이 거느린 최첨단 대형 병원을 뒤로 하고 메르스 싸움의 최일선에서 분투하는 공공의료기관의 의료진들을 격려하고자 음료수를 들고 대구의료원을 찾아간 베트남, 필리핀 가톨릭 공동체의 소식도 우리 가슴을 따뜻하게 한다.

일찍이 흑사병이 창궐하던 유럽의 교회는 ‘죽음을 기억하라’(Memento Mori)라는 훈계만 거듭하다 백성의 외면을 받게 된다. 메르스 소식이 온 나라를 휘젓는 가운데, 교회의 자리와 역할이 무엇인지를 광주와 대구의 신앙인들이 알려 주고 있는 듯하다. 우리 그리스도인은 저 높은 곳으로 피신하는 나으리들인가, 아니면 고군분투하는 이들 곁을 지키는 좋은 이웃들인가.
 

박용욱 신부 (미카엘)
대구대교구 사제.  포항 효자, 이동 성당 주임을 거쳐 현재 대구가톨릭대학교 의과대학과 간호대학에서 윤리를 가르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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