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의 데레사 성녀의 신비 체험과 자서전

2015년은 아빌라의 성녀로 알려진 예수의 데레사(Teresa de Jesus, 1515-1582)의 탄생 500주년이 되는 해다. 데레사는 행동파이자 열정가인 동시에 현실을 직시하는 이상과 현실의 아름다운 조화를 드러낸 상징적인 인물로, ‘수도적 관상 생활과 사도적 활동의 조화와 일치’라는 그만의 독특한 영성 사상을 보여 주었고 ‘맨발의 가르멜수도회’ 창립에서 볼 수 있듯이 개혁 정신이 있었다.

가르멜 수도원 개혁가, 신비가, 교회학자로 알려진 데레사는 근대 유럽에서 왕권 중심의 국가들이 성장하고 그와 함께 진행된 종교개혁과 교회분리, 신대륙의 발견으로 새로운 세계관이 형성되는 혼란기에 수도회 개혁을 통해서 그리스도교회의 영적 쇄신을 시작하였고,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영적 스승으로서 흠모의 대상이 되는 것은 ‘여성’이라는 한계에도 불구하고 십자가의 성 요한 과 함께 그리스도교 신비 사상의 깊이를 재확인한 성인일 뿐만 아니라, 교회박사 학위를 받은 첫 번째 여성이라는 것에서 확인할 수 있다.

1515년 3월 28일 스페인 아빌라에서 9남3녀 중 여섯째로 태어난 데레사는 할아버지가 유대교에서 개종한 가톨릭 가정의 교육을 받으며 성장했다. 일곱 살 때 순교자들의 이야기를 전해 듣고서 자신도 순교를 위해 아랍인들에게로 가겠다고 가출을 감행할 만큼 용감했으며, 기사소설과 성인전을 즐겨 읽었다. 결국 20세가 되던 어느 새벽, 집을 나가서 아빌라 성 밖의 강생 가르멜수도원에 입회하였다. 하지만 그는 기도생활보다 수도원을 방문하는 사람들에게 인기가 있는 활발하고 아름다운 수녀였던 것으로 스스로를 평가한다.

40세에 이르러 하느님 은혜로 신비 체험을 맛보게 된 데레사는 영혼의 변화를 경험하고 하느님과의 일치에 온 마음을 쏟게 되었다. 회심 뒤에 데레사가 결심한 것은 격변기의 세상을 위해서 교회가 이루어야 하는 영적 쇄신의 길을 찾는 것이었고, 이는 가르멜회의 초창기 정신으로 복귀하는 것으로 귀결되었다. 마침내 그는 불가능을 뚫고 1562년 4명의 수녀들과 함께 가르멜의 초기 규칙대로 엄격한 수도생활을 하고자 ‘맨발의 가르멜수도회’를 창립하였다. 그리고 용감하고 건방진 그 수녀의 일탈은 이단심판소의 제소 대상이 되었다.

오늘날 그의 개혁운동은 독일의 성녀인 빙엔의 힐데가르트의 영향에서 시작되었을 것으로 보이는 중세 유럽 평신도 신비가들인 베긴회의 영성적 혈맥이 스페인에까지 전해져 봉쇄 수도원의 형태로 마무리된 것으로 평가할 수 있다. 그가 수도생활을 하던 강생수녀원 역시 베긴들이 살던 집을 개조한 것으로 전해진다. 그것을 보면, 십자군 전쟁과 흑사병을 거치는 중세유럽의 정신사에서 베긴들의 활동은 루터 이전에 이미 유럽 전역에서 시작된 여성 평신도들의 자발적인 개혁운동으로서, 알프스 산 아래에서 13세기에 이미 발데제(골짜기)라는 명칭의 개신교회가 시작되었던 것과 함께 새롭게 기억해야 할 역사의 한 부분이라고 할 수 있겠다.

▲ 1588년 레온의 루이스 수사가 감수한 예수의 데레사의 첫 번째 전집(왼쪽)과 1919년 독일어 초판 예수의 데레사의 자서전은 데레사 베네딕타(에디트 슈타인)의 회심에 결정적 계기가 되었다.(사진 제공 = 최우혁)

데레사의 첫 작품은 이단 심판소의 검사관들에게 자신의 결백을 알리기 위한 진술서에서 시작된다. “자서전(천주 자비의 글)”(1562-1565)은 가르멜 수도회의 초기 개혁 과정을 보고하고 있으며, 개혁의 과정과 그 바탕을 이루는 신비체험을 실타래 엮듯이 쓴 책으로 데레사는 자신의 일상 안에서 경험한 그리스도의 체험을 통해서 인간이 겪는 신비체험의 발생 과정과 성격, 그 특징 등을 낱낱이 해명하고, 신비체험이 다른 이들에게도 일어날 수 있음을 알려 준다. 하느님의 자비와 기도의 방법에 관해 쓴 부분이 내면에서 이루어지는 영적 경험과 성숙에 관한 것이라면, 맨발 가르멜회의 초기 개혁 과정을 다룬 부분은 영적 경험과 동시에 하느님의 자비하신 개입으로 이루어지는 인간의 역사에 관한 증언이다.

이어서 개혁 수도회의 영적 딸들을 위한 가르침과 “주님의 기도”를 주해한 “완덕의 길”(1566-1567), 자신의 신비체험을 일곱 단계의 문을 열고 들어가는 성채에 비유한 “영혼의 성”(1577)에서는 신비체험에 이르는 인간의식의 7단계와 각 단계의 구성, 성격, 진행, 그 결론으로 맛보는 신적 신비의 본질과 의미, 그 영향을 저술하였다. 예수의 데레사의 주요한 세 작품들은 집필 당시의 정황으로 보았을 때 예외적인 글이었고 위험한 작업이었다. 데레사 베네딕타는 이 글들이 여성으로서 자비로운 하느님을 인격적 관계에서 만난 신비적인 내용을 다루고 있으며, 기도의 형태로 설명되는 그 관계의 양상은 인간이 신의 신비에 공감할 수 있다는 것을 근거로 인간의 인식수준에 따라 기도의 양상이 다양할 수 있음을 보여 준다고 평가하였다. 신비신학의 삼부작은 우리에게 낯설지 않게 다가와서 신적 신비의 실체는 무엇이고, 그 의미와 지향은 어떠한지 보여 준다. 따라서 그의 작품들은 현대인에게도 어렵지 않게 다가와서 기도생활의 길잡이가 된다. 이외에도 아가서 주해와 수도원을 세우는 과정을 기록한 창립사와 470통에 이르는 편지가 있다.

▲ 예수의 데레사의 필적(왼쪽), 데레사가 살았던 강생 수녀원의 방과 쓰던 책상.(사진 제공 = 최우혁)

그런데 무엇보다 ‘예수의 데레사’를 떠올리게 하는 단어는 바로 ‘기도’다. 기도의 양식을 네 가지 방법으로 물을 가져와 영혼의 정원을 가꾸는 비유로 설명한 것은 기도를 가르치기 위한 대표적인 예다. 자서전의 11-18장은 바로 이 기도의 단계를 설명한다:

첫째는 비움의 기도로 우물에서 손으로 물을 길어 정원에 주는 것에 비유된다.
둘째는 고요함의 기도로 도르래를 이용해서 우물물을 긷는 것에 비유된다.
셋째는 위로의 기도로 개천에 수로를 만들어서 물을 끌어오는 것에 비유된다.
넷째 단계는 일치의 기도로 비가 와서 아무런 노력 없이 물을 얻는 것에 비유된다.

단비가 오기 전에 아무런 노력을 하지 않았다면, 결코 기도의 단계들이 어떠한지 말 할 수 없었을 것이다. 인간이 할 수 있고 마땅히 해야 하는 일상의 수고들이 있었기에 단비와 같은 하느님의 은혜가 위로를 넘어서는 궁극적인 기쁨인 것을 알려 주는 가르침이라 하겠다. 데레사의 기도가 기준이 없어진 세상에 새로운 삶의 잣대를 마련하는 과정이었다면, 그의 기도에서 얻을 수 있는 노력과 겸손은 봄부터 비가 오지 않는 날들을 견디며, 흑사병처럼 더해진 메르스에 대책 없이 노출된 우리 사회에 어떤 가르침이 될 수 있을까? 건조한 죽음의 문화를 넘어서 새로운 생명을 틔우는 지혜를 데레사의 자서전에서 찾을 수 있을까? 우리의 영혼을 갈아엎고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새롭게 심는다면 그 밤에 성령의 단비가 내리지 않을까? 그 노곤한 밤에 !

“내 영혼아! 아무것도 근심 말고 아무것도 두려워 말아라. 모든 것은 지나가고 하느님만이 변함이 없으시니, 인내함으로 모든 것을 얻을 것이다. 하느님을 얻는 사람은 그 외는 아무것도 필요치 않으며 하느님만으로 충분하다.”

예수의 데레사는 그의 이름에서 드러나듯이 주님을 열정적으로 사랑했으며 절대적인 신뢰를 드렸다. 그의 자서전은 세상이 뒤집어지고, 그 혼란의 한가운데에서 우물을 파기 시작한 한 여성의 일상을 보고하지만, 동시에 목마르지 않는 샘을 곁에 두고 때때로 내리는 단비를 맞으며 사는 시냇가의 나무처럼 영적인 윤기로 가득한 사랑의 날들에 관해 서술하고 있다.

여러 세기 동안 여러 언어로 번역된 그의 자서전과 연관해서 특별히 기억할 사건은 유대인의 정체성을 부정하고 무신론자로서 진리를 찾아 정신적 순례를 하던 젊은 현상학자 데레사 베네딕타(에디트 슈타인)의 회심이다. 진리를 찾는 데 경계 없이 진전하던 데레사 베네딕타는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건을 알게 된 이후 철학적 진리에서 인간의 삶 안에서 실현된 진리를 찾기에 이르렀다. 그리고 1921년 여름, 친구의 집에서 데레사 성녀의 자서전을 밤새워 읽고는 아침이 되자 “이것이 진정한 종교!”라고 고백하였다. 데레사의 자서전은 살아있는 인간의 진리를 찾아 방랑하던 목마른 영혼에게 밤새워 내리는 단비가 되었던 것이다. 한 사람의 일생을 송두리째 바꾼 사건이 데레사 베네딕타에게서만 일어났을 까? 한여름의 어느 밤에! 오늘 21세기에 뭔가 다른 삶을 기획하는 이들에게도 데레사의 자서전은 가장 정확한 나침반이 되어 줄 것이다. 물론 한국어 번역판도 여럿 있다.

예수의 데레사의 작품들은 신비신학의 교과서로서 현대인의 삶과 인식의 전환을 이끄는 영성수련의 지침서가 되고 있으며, 오늘날 그의 신비 경험은 새로운 질적 함의를 가지고 신비신학과 정신현상학, 신비주의와 종교현상학의 대화에서 주요한 주제로 다루어지고 있다. 즉, 신비 현상의 본질에 관한 철학적 성찰과 담론들은 종교적 신비가 인간 존재의 신비에서 비롯되며, 인간의 영혼 안에서 신비적 만남이 진행되고, 나아가 인식론적 차원에서 해명될 수 있으며, 삶이 송두리째 전환될 수 있는 것을 드러내 보여 준다.

▲ 예수의 데레사 자필 서명 “Teresa de Jesus”. (사진 제공 = 최우혁)

 

최우혁 (미리암)
종교학과 신학을 교차하며 공부하였다. 예수의 데레사와 에디트 슈타인을 중심으로 테레지아눔에서 영성신학을 공부하였고, 에디트 슈타인의 마리아론으로 마리아룸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서강대학교 강사로 학생들과 함께 공부하며, 한국여자수도회 장상연합회 소속 가톨릭여성신학회에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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