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명기 신부] 6월 21일(민족의 화해와 일치를 위한 기도의 날) 마태 18,19-22

지난해 아시아 청년대회와 한국 순교자 124위 시복식을 위한 교황의 방한은 열병처럼 한반도를 뜨겁게 달구었습니다. 번영을 누리는 데서 배제된 불운한 이들, 소외된 이들, 일자리를 얻지 못한 이들과 그 외에 많은 믿는 이들이 교황을 통해 하느님의 위로를 받았고, 희망을 발견했습니다. 특히, 명동에서 있었던 평화와 화해를 위한 미사 강론 중에 교황은 ‘의심과 대립과 경쟁의 사고방식을 확고히 거부하고 그 대신에 복음의 가르침과 한 민족의 고귀한 전통 가치에 입각한 문화를 형성해 나가도록’ 요청하셨습니다. 또한 한반도의 평화를 위해 그리스도 십자가의 힘을 믿으라고 당부하셨습니다.

문병란 시인의 ‘직녀에게’란 시에 곡을 붙인 노래가 있습니다. “이별이 너무 길다~ 슬픔이 너무 길다~ 선 채로 기다리기엔 세월이 너무 길다~ .... 이별은 끝나야 한다~ 슬픔은 끝나야 한다~ 우리는 만나야 한다~”라며 통일의 염원을 담고 있습니다. 노랫말처럼 오랜 분단의 시간은 민족의 동질성을 잊게 할 만큼 길고 슬픈 기다림의 세월이었습니다. 게다가 분단 고착을 정치적으로 악용해 온 순수하지 못한 정권에 의해 통일에 대한 국민적 원의는 점점 흐려지고 있습니다.

2010년 천안함 사건을 배경으로 발표된 5.24조치는 1972년 7.4공동성명에서 시작해서 2000년 6.15공동선언에 이르기까지 각고의 노력으로 진전된 남북한 관계를 70년 전 분단의 단절된 상태로 되돌려 놓고 말았습니다. 또한 불편한 국내 정치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부당한 권력에 의해 국면전환용으로 적용된 공안정책은 민족의 통일에 대한 문제마저 극심한 이분법적 가치를 국민에게 각인시켰고, 결국 어떤 이들은 통일의 필요성을 전혀 느끼지 못할 만큼 무관심하게 되어 버렸습니다.

▲ 2014년 8월 18일 명동대성당에서 미사를 집전하는 프란치스코 교황. ⓒ교황방한위원회

부서지지 않을 것 같이 단단히 고착된 이념의 대립은 남과 북만의 문제가 아니라 남한 안에서마저 아슬아슬한 남남갈등을 조장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느끼는 분단의 현실은 통일의 지향과 노력만으로는 앞으로 나아갈 수 없는 거대한 벽에 부딪혀 불가능한 일처럼 다가오기도 합니다.

지난 몇 년 동안 통일에 대한 진정한 의지가 있는 것인지 의심스러울 만큼 정권과 보수 세력은 한통속으로 남북관계를 경색 일변도로 만들어 가고 있습니다. 통일을 지향하는 여론과 세력을 싸잡아 좌경과 용공으로 몰아 극한 이념의 대립으로 몰아가고 있습니다. 이런 현실에서 민족의 통일은 이룰 수 없는 꿈을 꾸는 듯 아득해지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렇다고 민족의 화해와 일치를 위한 우리의 노력을 멈출 수는 없습니다. 고착된 이념과 가치를 바꿀 수 없다면 주님께 의지해 모든 것을 당신의 뜻대로 이끌어 주십사고 간절히 매달려야 합니다. 결국 주님께 매달리는 것 외에는 평화를 이루기 위한 화해와 일치의 방법이 없습니다. 혼탁한 갈등이 조장되는 분단 현실에서 마음을 모아 기도한다는 것은 우리 힘으로 화해와 일치를 만들어 낼 수 있다는 교만을 버리는 것입니다. 죽음을 이긴 부활로 제자들에게 주셨던 평화의 다스리심이 한반도에서도 이루어지기를 청하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이루어 주신다는 것을 잊지 않기 위해 분단의 고통과 슬픔, 이념의 갈등과 허물까지도 우리의 제물로 봉헌해야 합니다.

오늘 복음은 화해와 일치를 위한 우리의 간절한 청원을 드리기 전에 먼저 형제에 대한 용서가 준비되어야 한다고 가르칩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우리에게 잘못한 사람들을 용서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면 평화와 화해를 위한 기도는 정직할 수 없다고 강론 중에 강조하셨습니다. 나아가 용서야말로 화해로 이르게 하는 문임을 믿으라고 우리에게 요청하셨습니다. 복음은 우리가 알고 있는 통념적인 그런 방식으로 화해와 일치를 이룰 수 없다고 가르칩니다.

예수님이 요구하는 방식은 전혀 새로운, 흔쾌히 사용하고 싶지 않은 방법입니다. 주님께 청하기 전에 우리의 용서가 선행되는 방식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신앙의 길은 제물을 드리기 전에 나의 자존심과 이기심을 내려놓고 화해를 이루어야 하는 힘든 여정입니다. 때문에 용서는 시시비비를 가리는 일이 아니라 먼저 화해를 청하는 용기이며 보다 더 많이 사랑하겠다는 결심입니다. 용서가 전제 되어야만 우리의 간절한 기도는 진실성을 가질 수 있습니다. 민족의 화해와 일치를 위한 염원은 용서가 선행된 진실한 기도를 통해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선물이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교황은 한반도의 평화와 화해를 위해 대화하고, 만나고, 차이점들을 넘어서기 위한 새로운 기회들이 샘솟듯 생겨나도록 기도하자고 한민족 모두를 초대하셨습니다. 또한 모든 한국인이 같은 언어로 말하는 형제자매이고 한 가정의 구성원들이며 하나의 민족이라는 인식이 더욱 널리 확산되도록 기도하자고 하셨습니다. 민족의 통일이라는 목적을 향해 화해와 일치의 걸음을 묵묵히 걷자고 다짐을 해 보는 오늘이기를 기도합니다.

(2014년 8월 18일 평화와 화해를 위한 미사 중 프란치스코 교황의 강론을 인용하였음을 밝힙니다.)

 

 
 

 박명기 신부(다미아노)
 의정부교구 청소년 사목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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