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교회의 민화위원장 이기헌 주교

“우리는 천안함 사건과 북핵 문제로 발목이 잡혀 있는데, 어느 한 쪽이 용서하고 받아들여 줄 수밖에 없어요.”

이기헌 주교는 천안함 침몰 사건 뒤 남북교역과 투자 등을 금지한 5.24조치에 대해 “그 배경은 잘 알고 있지만 이것이 해결되지 않는 한 북한에 대한 인도적 지원, 민간 교류는 할 수 없다”고 말했다. 그는 한국 정치지도자의 결단을 요청했다. 이 주교는 “민족의 미래를 생각하며 정치적 결단을 내리지 않으면 남북한은 늘 평행선으로 갈 것”이라면서 “그런 결단을 내리는 것은 우리(남한)가 더 쉽지 않겠는가” 하고 물었다.

▲ 의정부 교구장 이기헌 주교. ⓒ강한 기자
이 주교는 북한과 바로 맞닿은 경기 북부 지역을 관할하는 천주교 의정부교구장이며, 주교회의 민족화해위원회(민화위) 위원장도 함께 맡고 있다. 평양 출신으로 북한의 종교 탄압을 피해 남쪽으로 내려오면서 두 누나와 헤어진 이산가족이기도 한 이기헌 주교는 만 67살로, 분단 70년의 세월을 함께했다고 자신을 소개했다.

그는 북한에 두고 온 자식들 생각에 괴로워하는 부모님을 보며 자랐고, 자연스레 수많은 피난민, 이산가족과 어울렸으며, 신학교에 갈 때는 ‘평양교구 소속’으로서 교육 받았다. 이기헌 주교는 분단 70주년을 맞아 “마음이 많이 아프고, 왜 이렇게 오랫동안 통일이 안 되고 분단의 시대를 보냈는가 스스로 반성하게 된다”고 말했다. 그는 “남한에서도 남북관계를 둘러싼 정치적, 이념적 갈등이 너무 많다”면서 “이제 분단을 끝내고 평화의 시대를 마련하는 데 우리가 힘을 합쳐야겠다고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5.24조치로 남북 교류와 지원이 얼어붙었지만, 천주교의 식량, 의료, 영유아 관련 등 북한 돕기는 가톨릭 국제원조조직인 국제 카리타스를 통해 꾸준히 이어지고 있다는 것이 이기헌 주교의 설명이다. “다행히 가톨릭이 전세계적인 교회이기 때문에 국제기구를 통해 할 수 있는 일”이라고 그는 말했다.

이기헌 주교는 한국 천주교가 ‘북한 교회’를 돕는 데도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말했다. 주교회의는 지난 3월 정기총회에서 평양에 있는 장충성당의 유지, 보수를 지원하기로 결정한 바 있다. 이에 대해 이 주교는 “88올림픽 무렵에 세워진 장충성당이 낡아서, 북한의 신자들이 (나를) 만날 때마다 성당 보수 문제를 거론하고 있다”고 말했다.

북한 교회에 대한 ‘사목적 지원’도 중요한데, 여기서 빠지지 않는 게 북한에 천주교 사제가 상주하는 일이다. 이 주교는 “북한에 상주할 사제가 한국 국적이면 더 좋지만 그건 매우 어려움이 많을 수 있다”고 말했다.

북한 사람을 가톨릭 사제로 양성하는 일도 북한 교회가 원하고 시도했던 일이지만 아직 실현되지 않았다. 이에 대해 이기헌 주교는 천주교 사제가 되기 위한 교육 기간이 길고, 기도와 공부의 수준도 높기 때문일 것이라고 짐작했다. 굳건한 신앙을 가진 사람이 사제가 돼야 하는데, 그런 젊은이를 북한에서 선발하는 것이 쉽지 않을뿐더러 선발되더라도 외국에서 신학생으로서 긴 시간 교육을 받는 것은 또 다른 도전이 될 것이다.

분단이 길어지고 남북한의 신경전이 일상이 되면서 국민들 사이에 널리 퍼진 ‘통일 무용론’, 더 나아가 ‘무관심’에 대해 이 주교는 걱정이 많았다. 그는 프란치스코 교황이 그리스도인이 맞서 싸워야 할 난제로 무관심을 꼽았던 것을 소개하면서, “무관심은 너무나 큰 잘못인 것 같다”고 말했다. 특히 통일 시대의 주인공이 될 청소년들이 남북문제에 관심이 없으니 더 문제라고 했다.

민족화해 활동에 일반 신자로서 참여할 수 있는 통로도 여러 가지로 열려 있다. 이 주교는 본당 차원의 민족화해위원회 또는 민족화해 분과가 잘 활동하고 있는 경우도 있다면서, 그 회원들이 모여 기도하고 본당 지역 내 탈북자들을 지원하며, 교구 차원의 민화위 활동에 함께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또 민화위 활동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카리타스를 통한 대북 지원이기 때문에 매달 조금씩이라도 후원하면 그것이 북한 주민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다고 그는 말했다.

한편, 이기헌 주교는 6월 1일부터 천주교가 시작한 ‘민족의 화해와 일치를 위한 기도운동’은 “첫 출발”이라고 표현했다.

“행동 없는 믿음, 행동 없는 기도는 사실 큰 의미는 없지요.”

남한의 신자들이 남북관계가 잘 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또 북한에 관심을 가지며 기도하는 것이지 “무작정 기도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남북한 전체 인구를 뜻하는 묵주기도 8000만 단 봉헌과 매일 밤 9시 평화와 통일을 위해 주모경을 바치는 것은 북한 사람들을 ‘형제애’로 돕는 일의 첫 걸음이라고 그는 설명했다. 특히 밤 9시에 함께 바치는 기도는 신자들의 마음을 모으기 위해 ‘주님의 기도’와 ‘성모송’만으로 이뤄진 짧은 기도다. 이기헌 주교는 밤 9시가 되면 모든 주교와 신부들도 함께 기도하고 강복하고 있다면서, 신자들이 적극 참여해 주기를 바랐다.

▲ 경기도 파주에 있는 ‘참회와 속죄의 성당’. 제대 뒤편의 모자이크화는 남한 작가들이 밑그림을 그리고 북한 작가 7명이 중국에서 작업해 완성됐다.ⓒ강한 기자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www.catholicnews.co.kr>

저작권자 ©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