맥스 브룩스, “좀비 서바이벌 가이드”(2011) 장성주 옮김, “세계대전Z”(2008) 박산호 옮김, 황금가지

내가 사는 도시에 첫 번째 메르스 환자가 사망했다는 기사가 떴던 오후, 평소처럼 사무실 뒤편 공원으로 점심 산책을 나섰다. 산책로에 올라섰을 때 나는 내 눈을 의심했다. 늘 그 시간에는 공원에 사람들이 많았는데, 그날은 정말 한 사람도 보이지 않았다. 적막한 공원에는 간간이 새소리가 들려 왔고, 불어오는 바람에 나뭇잎이 흔들렸다. 그리고 햇살은 그 어느 때보다 아름다웠다. 대자연의 무심한 잔인함. 그런 조용한 공포가 느껴지는 오후였다. 혼자 산책로를 걸으며 나는 마치 좀비 영화의 한가운데 들어와 있는 기분이었다. 지금 내 눈 앞에 보이는 저 지척의 능선 넘어 비틀거리는 워커(Walker; 미국 폭스TV의 드라마 ‘워킹데드’에서 좀비를 이르는 표현)들이 등장한다 해도 하나도 이상할 것 같지 않았다. 그런 생각이 들자, 이어 ‘아! 정말 한국은 영화적 상상력을 현실에서 경험하게 만드는 판타스틱한 나라’라는 생각이 들었다.

맥스 브룩스(Max Brooks)가 쓴 좀비에 관한 두 책, “좀비 서바이벌 가이드”와 “세계대전Z”도 그런 책이다. 실재 하지 않는(?) 좀비를, 실제적인 상황에서 시종일관 진지하게 다루며, 진짜 실재가 무엇인지를 말한다. “좀비 서바이벌 가이드”는 일종의 실용서로 “살아 있는 시체들 속에서 살아남기 완벽 공략”이라는 부제에서 예상할 수 있듯, 주된 내용은 제목 그대로 ‘서바이벌’ 즉 좀비의 공격에서 살아남기 위한 다양한 방어와 피난 요령, 무기 선택에서의 주의점, 지형지물의 활용법 등이다. 점잖고 진지한 사람들이라면 쉽게 무시해버릴 책일지 모르지만, 그 분량이 한국어판만 보더라도 대략 350쪽이 넘으니 이 정도면 그냥 농담이 아니라 작정하고 쓴 책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물론 실용서이니 만큼 상세한 삽화도 포함되어 있다). 참고로 이 책은 2003년 미국에서만 100만 부 넘게 팔렸으며, 현재도 전 세계의 여러 언어로 번역되어 많은 사람들에게 꼭 필요한(?) 생존지침서가 돼 주고 있다.

▲ 맥스 브룩스, 박산호 엮음, “세계대전Z", 황금가지, 2011
“세계대전Z”는 훨씬 더 진지한 책이다. 이 책에는 어떠한 웃음기도 없다. 쉽게 예상할 수 있듯 대문자 Z는 좀비(Zombi)의 영어 알파벳 첫 자다. 인류와 좀비가 벌인 범지구적 전쟁에서 인류가 힘겨운 승리를 거둔 지 10년 뒤, 유엔 조사관인 화자가 전쟁의 시작과 전개과정을 썼다. 그리고 좀비전쟁이 살아남은 사람들의 삶에 남긴 깊은 상흔들을 인터뷰 형식으로 기록하고 있다. 이 기록은 장장 530쪽이 넘는데, 장담하건대 모든 인터뷰 하나하나가 그 어느 논픽션보다 사실적이고 무게감이 느껴진다.(이 책의 판권은 할리우드에 팔려 브레드 피트가 주연을 맡은 “월드워Z”라는 동명의 영화로 만들어지기도 했다. 그런데 난 제작사가 왜 이 책의 판권을 샀는지 잘 모르겠다. 영화와 책의 내용은 전혀 다르다. 브레드 피트의 “월드워Z”는 맥스 브룩스의 “세계대전Z”와 전혀 다른 작품이다)

맥스 브룩스의 이 두 ‘고전’ 외에도 책과 영화에서 좀비물의 역사는 꽤나 길다. 1968년 거장 조지 로메로 감독의 “살아 있는 시체들의 밤(Night of Living Dead)”에서 시작해 “레지던트 이블” 같은 프랜차이즈 좀비 비디오물까지, 그리고 최근에는 심어지 “웜바디” 같은 좀비 로코물(로맨틱 코미디)까지 나오고 있다. 물론 그 중에는 조지 로메로의 뒤를 이을 만한 폭스TV의 “워킹 데드”라던가, 대니 보일 감독의 “28주 후” 같은 명작들도 많다. 우리는 왜 이렇게 좀비에 열광하는가? 그건 무엇보다 좀비가 지금 우리가 사는 세상을 가장 날카롭게 읽어 내는 메타포(비유)가 되어 주기 때문이다. 특히 자본주의가 전 지구화된 이후 펼쳐지는 세계의 세기말적 비극과 비참의 풍경들을 좀비물 만큼 음울하고 사실적으로 드러내는 장르는 찾아보기 힘들다(내가 잘 아는 어느 문학평론가는 “워킹데드”의 '워커walker'를 '워커worker'로 조금은 장난스럽게 읽어 내기도 한다. 그런 의미에서 좀비는 신자유주의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수많은 노동자들, 혹은 잉여들을 자조적으로 표상하기도 한다).

예컨대 이런 것이다. 맥스 브룩스의 이 두 책을 정전(正典)으로 삼아 마찬가지로 정색하며 좀비를 다룬, 대니얼 W. 드레즈너의 “국제정치 이론과 좀비”(유지연 옮김, 어젠다, 2013)의 제5장 ‘자유주의적 세계질서에서 언데드(undead; 좀비) 관리하기’에는 이런 분석이 실려 있다.

“자유주의 패러다임에서는 국제적인 반 좀비 체제 내에서 생기는 두 가지 중요한 허점을 예측할 것이다. 첫째, 일부 국가는 문제가 악화되어 지방정부의 통제를 벗어나는 지경에 이를 때까지 좀비 발생에 대한 정보를 적시에 제공하지 못할지도 모른다. 독재국가는 보건 위기를 인정하지 않으려는 경향이 있다. 이를 인정했다가 사회 지배력을 위협받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비민주적 정권은 재난을 예방하거나 저지하는 데 필수적인 공공재에 투자할 가능성이 적다.” (99쪽)

무서우리만큼 지금의 한국사회에 들어맞는 적확한 분석이 아닌가. 이 놀라운 기시감에 수십 번이라도 밑줄을 긋고 싶은 구절이다.

바야흐로 지금 한국은 메르스 정국이다. 자연발생적 질병 뒤에 ‘정국’(政局)이라는 단어를 쓰기가 망설여지지만, 한국에서 이제 메르스는 의학적 문제를 넘어서 버렸다.(물론 그것을 자초한 건 정부이다. 마치 세월호를 사고에서 ‘사건’으로 만든 것처럼) 사태가 장기화되면서 많은 이들이 메르스가 단순한 방역과 검역의 차원이 아닌 정치 혹은 국가통치의 문제임을 깨닫고 있다. 누군가 지적했듯이 결국 이것은 국가 시스템의 구성과 운영, 국가자원의 동원과 분배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이 재난에 지금 우리의 국가는 어떻게 작동하고 있는가. “세계대전Z”에는 지금처럼 우왕좌왕하는 무능한 정부와 이런 재난을 돈벌이의 수단으로 삼는 영악한 기업가(거짓 좀비 바이러스 백신 ‘팔랭스’의 예 : 89-102쪽), 그리고 최후의 순간에는 마치 자신들이 신이라도 되는 양, 구해야할 사람과 구하지 않아도 될 사람을 선별하는(이른바 ‘레더커 플랜’ : 171-181쪽) 고위 공직자들과 정치가, 전문가집단들이 등장한다.

▲ 맥스 브룩스, 장성주 옮김, “좀비 서바이벌 가이드”, 2011
상대적 차이야 있겠지만 수많은 좀비물에 등장하는 국가와 관료집단들은 대부분 무능하고 어리석으며, 계급적 이익을 대변하느라 제대로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다. 맥스 브룩스는 “좀비 서바이벌 가이드”에서 다음과 같은 말로 좀비 바이러스가 퍼지게 되면 일단 국가에 대한 큰 기대는 버리는 게 좋다고 권고한다. “어떠한 형태의 정부도 결국에는 인간을 모아 놓은 집단에 지나지 않는다. 그들도 겁 많고 근시안적이고 콧대 높고 완고하며, 대개는 우리 자신처럼 무력한 인간인 것이다.”(227쪽) 이 말은 자칫 정치혐오주의를 설파하는 것처럼 들릴 수 있지만, 결국 저자가 강조하고 싶은 것은 ‘서바이벌’이다. “명심하라. 당신은 유일한 정부이자 유일한 경찰이며, 그 일대의 유일한 군대이기도 하다. 안전을 책임져야 할 사람은 바로 당신이다.”(264쪽)

맥스 브룩스의 미국인 특유의 자유주의적이고 개인주의적인, 그러나 엄격한 책임을 묻는 나름 건강한 정치관은 “세계대전Z”에서 드러난다. 다음은 좀비전쟁에서 살아남은 미국 몬태나 주 트로이의 밀러 부인과의 인터뷰 내용이다.

“선생님은 정치가들, 사업가들, 장군들, 이른바 ‘핵심세력’을 비난할 수 있지만, 사실 누군가를 비난하려고 찾고 있다면 저를 비난하세요. 제가 미국의 체제이자 핵심세력입니다. 그것이 바로 민주주의 안에서 살아가는 대가입니다.... 미래 세대는 우리에 대해 뭐라고 할지 궁금하군요. 우리 할아버지들은 대공황과 제2차 세계대전을 버티고 미국으로 오셔서 인류 역사상 가장 위대한 중산층을 만드셨죠. 그분들이 완벽하지 않으셨다는 건 하느님도 아시지만 이분들은 아메리칸 드림에 가장 가깝게 다가가셨어요. 그러다 내 부모님 세대가 와서 이 모든 것을 망쳐놨죠.... 우리는 좀비의 저주를 막긴 했지만 애초에 그것이 저주가 되도록 방치해 둔 사람들이 바로 우리입니다. 적어도 우리는 우리가 어질러 놓은 것은 청소를 하고 있는 중이고, 그게 바로 우리가 바랄 수 있는 최고의 묘비명인지도 모르겠어요. ‘Z세대, 자신들이 망친 것은 치워 놓고 간 사람들.’”(518-519쪽)

메르스 정국에서 신문과 방송을 통해 수없이 쏟아진 칼럼과 논평 중에 내가 가장 인상 깊게 읽었던 글은 6월 5일자 ‘한국일보’에 실렸던 우석균 선생의 기고문 “메르스 사태, 국가는 어디에 있나”였다. 메르스 사태를 한국의 빈약한 공공의료 문제로 연결시킨 이 글을 읽고, 내 페친 한 분은 진주의료원을 당당히 폐쇄시킨 홍준표 경남도지사에게 한 글자도 빼놓지 않고 읽히고 싶다고 말하기도 했다. 이 뛰어난 글의 마지막은 이렇게 끝난다. “세월호만의 문제가 아니었다. 메르스 사태에서도 국가는 없다. 이제라도 시민들이 국가를 만들어 내야 한다.”

세월호참사와 메르스 사태를 겪으며 한국사회는 일정한 학습효과를 얻었을 것이다. 경쟁은 선이라는 신자유주의의 가르침은 어쩌면 무척이나 관대하고 점잖은 것이었는지 모른다. 지금은 경쟁을 넘어 생존, 즉 서바이벌의 시대다. 그리고 적어도 한국사회에서 서바이벌은 온전히 개인의 몫임을 기억해야 한다. 한국전쟁 당시 신성모 국방장관이 파죽지세로 밀려오는 북한군을 막지 못하고 후방으로 내빼면서, 모든 군인은 “각자 양식대로 행동하라.”는 명령을 내렸다고 하니, 우리나라 정부의 이 ‘각자도생’(各自圖生) 정신은 꽤나 연원이 깊은 것이기도 하다.

어찌됐든 배웠으면 실천해야 한다. 맥스 브룩스가 좀비 발생 사태에서 살아남기 위한 십계명은 아래와 같다. 자세한 설명은 책을 읽어 보면 좋겠지만, 일단 십계명에 나오는 좀비를 비정하고 무능한 국가, 아니면 사태에 가장 큰 책임이 있다고 생각되는 그 누구의 이름으로 대체해서 읽어 봐도 좋을 것이다. 아무튼 살아남고자 하는 모든 이들의 일독을 권하며, 저자가 강조하는 제1 생존지침은 “뭉쳐라”임을 기억하길 바란다. 그리고 끝으로 메르스로 고통 받는 모든 환자와 그 가족들, 그리고 의료진들에게 하루빨리 치유와 평화의 날이 임하길 기도한다.

1. 좀비들이 일어나기 전에 뭉쳐라.
2. 좀비는 두려움을 모른다. 당신도 두려움을 버려라.
3. 머리를 써라. 좀비의 머리는 잘라 버려라.
4. 칼은 장전이 필요 없는 최고의 무기다.
5. 최선의 방어는 딱 맞는 옷과 짧은 머리다.
6. 위층으로 피한 다음 계단을 부숴라.
7. 차 안에서 죽지 말고 자전거를 타라.
8. 쉬지 말고 움직여라. 몸을 숙이고 소리를 죽여라. 늘 경계하라.
9. 안전지대는 없다. 조금 더 안전한 곳이 있을 뿐이다.
10. 좀비는 사라져도 위협은 남는다.

사족 하나.

“워킹데드”를 비롯한 많은 좀비물에서는 좀비 출현 이후를 “종말” 또는 “심판의 날”이라고 부른다. 그래 나는 문득 지금 우리가 사는 이 세계가 종말 이후가 아닐까하는 섬뜩한 생각이 든다. 용산참사, 쌍용차, 밀양, 세월호를 통해 우린 이미 심판을 받은 게 아닌가 하는. “믿지 않는 자는 이미 심판을 받았다.”(요한 3,18) 성경은 심판은 미래의 일만이 아니라, 과거의 일이 될 수도 있다고 말한다. 정의, 공평, 약자에 대한 연민.... 그런 것들에 대한 믿음을 잃어버린 세대라면 우린 이미 종말 이후를 살고 있는 거다. 좀비물이 공포물로 분류되는 이유는 그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고윤수(토마스) 대전시립박물관 학예연구사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www.catholicnews.co.kr> 

저작권자 ©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