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가와 정부, 노동법이라도 지켜라

부산시청 앞 전광판 위에서 두 노동자가 고공농성을 벌인 지 6월 15일로 61일째다.

송복남 조합원(부산일반노조 부산합동양조(생탁) 총무부장)과 심정보 조합원(공공운수노조 택시지부 부산지회). 각자 사업장에서 노동자의 권리를 요구하며 싸우던 이들은 부산시청과 노동청 앞에서 농성하며 연대하다가 “이대로는 안 되겠다”며 4월 16일 새벽 함께 전광판에 올랐다.

막걸리를 만드는 노동자와 택시를 운전하는 노동자, 전혀 다른 업종의 두 노동자가 한 목소리로 외치는 것은 “우리는 노예가 아니라 노동자다”, “근로기준법을 지키고, 노동3권을 보장하라”는 것이다. 또 하나의 공통된 문제는 ‘교섭창구단일화법’에 의한 소수노조 차별이다.

복수노조 허용 뒤에 생긴 ‘교섭창구단일화법’은 과반 이상 노조원이 가입된 1노조가 교섭권을 갖는다. 생탁 사측과 택시사업자들도 이 부분을 십분 활용했다. 생탁 사측은 노조가 설립되자, 8명을 제외한 노동자들이 별도로 노조를 만들도록 해 교섭단체로 삼았고, 택시사업자의 경우 이미 설립된 노조가 사측의 입장을 대변하고 있다. 두 노동자가 속한 일반노조가 교섭 한 번 하지 못하고 고공에 오른 이유다.

현재 부산교구 노동사목위원회는 대책위에 실무자를 파견하는 등 연대를 이어가고 있으며, 교회가 할 수 있는 방법을 모색 중이다. 노동사목위원장 이동화 신부는 <가톨릭뉴스 지금여기>에 “할 수 있는 만큼 최대한 연대한다는 입장이며, 현재로서는 실무자를 파견하고 있다”면서, “일단은 사태의 추이를 보면서 앞으로 무엇을 할 것인지 논의할 것”이라고 밝혔다.

고공농성 현장 지역의 본당 사제들도 이들과 함께 하고 있다. 연산성당 정우학 신부와 수도자들, 거제동 성당 최혁 신부 등은 매일 저녁 일정이 끝난 뒤, 현장을 방문해 묵주기도를 봉헌한다.

최혁 신부는 <가톨릭뉴스 지금여기>에, “성당 관할 지역 안에서 힘들고 억울한 이들이 있기 때문에 두고 볼 수 없었고, 다만 기도라도 하는 것일 뿐”이라고 말했다. 최 신부는 “생명을 걸고 목소리를 들어 달라고 올라가 있는 사람들을 위해서 무엇이라도 함께 하자는 것”이라면서, “두 형제가 무사히 내려올 것과 그들의 지향이 이뤄지기를 바라는 마음, 그리고 한국 사회의 모든 어려운 노동자들을 위해 성 요셉 성인에게 간구한다”고 말했다.

최 신부는 시청 앞에는 생탁과 택시 노동자들 뿐만 아니라, 억울한 일을 겪은 많은 이들이 있다면서, “관심을 기울이지 않으면 세상이 별일 없이 돌아가는 것 같지만, 조금만 들여다보면 서러운 사람들이 많다, 그들을 위해서도 함께 기도 한다”고 말했다. 그는 기회가 될 때마다 성당 교사들이나 청년들과 함께 오려고 노력한다면서, “최소한 두 노동자가 내려올 때까지는 함께 기도하고 싶다”고 밝혔다.

▲ "인간답게 사는 길에, 노동자는 하나다." ⓒ정현진 기자

생탁, 전 직원 120명 중 41명이 사장...

사장 월급과 배당금은 전 매출 206억 원 중 34퍼센트, 직원 월급은 6퍼센트

“입사한 뒤, 8개월 만에 하루를 쉬었어요. 성수기에는 새벽 4시 출근에 밤 12시 퇴근, 야근 수당은 꿈도 못꿨죠. 노조가 생겨 싸우기 전에는 노동자들 한 끼 비용이 450원이었어요.”

1970년 부산지역 43개 양조장이 모여 합자회사를 만든 것이 생탁을 생산하는 부산합동양조다. 생탁은 부산의 대표 막걸리로 전국 매출 2위, 부산경남지역 시장점유율 90퍼센트를 차지하고, 사측이 밝힌 지난 3년간 평균 매출액은 206억 원이다.

연산공장과 장림공장에서 일하는 노동자는 80여 명, 경영에 참여하거나 배당금을 받는 사장은 41명이다. 전체 매출액 가운데 사장의 월급이나 배당금은 34퍼센트에 해당하는 70억 원이다. 반면, 나머지 80명의 노동자가 받는 급여는 약 6퍼센트로 12억여 원이다.

노동자의 권리가 전혀 보장되지 않은 상황에서 장림공장 노동자 45명은 노조를 결성해 2014년 4월 29일부터 “시간외 근무 수당과 공휴일 휴무 보장, 주 5일 근무, 계약직 정규직 전환, 정년 65세 연장” 등 요구안을 갖고 파업에 돌입했다. 44년 만에 벌인 첫 권리 투쟁이었다.

그러나 43명이 참여했던 파업은 사측의 회유로 대다수가 이탈해 9명이 남아 1년 가까이 투쟁을 하고 있다. 투쟁 374일 차인 지난 5월 7일 조합원 진덕진 씨가 심장마비로 사망해, 조합원은 고공농성 중인 송복남 씨를 포함해 8명이 남았다. 부산합동양조는 장림공장과 연산공장 두 곳 가운데 장림공장에만 노조가 설립됐다.

8명의 노조원은 고공농성 이전부터 부산지방노동청 앞에서 154일째 노숙 농성을 이어 가고 있다.

현재 생탁 공장은 8명을 제외한 노동자들이 모두 복귀해서 일하고 있기 때문에 농성이나 파업의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 생탁 조합원 김종환 조직부장은 “현재 공장은 100퍼센트 가동 중이며, 사측은 아쉬움이 없다”면서, “다 같이 싸웠으면 함께 권리를 찾을 수 있었을 텐데, 안타깝다”고 말했다. 또 “사측은 교섭대표를 계속 바꾸고 불법과 편법을 동원해 교섭을 거부하다가 급기야 다른 노조를 만들어 교섭권을 박탈했다. 그동안 할 수 있는 것은 다 해봤고 마지막으로 선택한 것이 고공농성”이라고 말했다.

“근로기준법을 지켜 달라는 웃지 못할 요구”

생탁 사측은 지난해 7월 복수노조 허용과 교섭창구단일화법을 이용해 새로운 노조를 만들어 기존 조합의 교섭권을 박탈하는 한편, 지난 6월 4일 새노조와 임단협 협상을 마무리했다. 협상안은 기존 노조가 요구하던 임금인상, 징계위원회 노사 동수 구성, 유일 교섭단체 인정, 상여금 신설, 자녀학비 지원, 경조사비와 연차, 휴업수당 지급 등이었다. 다만 일반 노조가 요구한 정년 65세 연장은 2017년까지 55세를 유지하기로 했다. 2017년 1월부터는 100인 미만 사업장에 대한 60세 정년 권고를 따라야 한다. 이번 합의안에 따르면 현재 농성 중인 일반노조원 중 정규직 3명이 2017년 이전에 55세로 정년을 맞게 된다. 

이번에 생탁 사측이 새 노조와 합의한 사항은 대부분 현재 농성 중인 8명의 일반노조 조합원이 지난해 첫 파업부터 요구한 내용이었다. 하지만 이 합의 내용은 8명에게는 적용하지 않았다. 사측이 수당을 지불할 능력이 없어서가 아니라, “민주노조 말살이 목적”이라는 노조원들의 말이 설득력을 갖는 이유다.

현재 사측은 단체교섭 고의 해태, 파업기간 중 불법 대체인력 투입 등으로 기소됐으며, 파업 중 계약직을 해고한 것에 대해서도 부당해고 판정을 받았다. 그러나 사측은 법적 판결조차 받아들이지 않고 있으며, 노조 측에는 손해배상청구를 한 상태다.

중재와 협상을 위해 개입한 일반노조 이국석 지도위원은 <가톨릭뉴스 지금여기>에 “사측은 노조 무력화 전략을 세우고 이를 실행해 왔다. 조합원들이 복직했을 때 발생할 수 있는 차별에 대해서도 안전장치를 마련하고, 노동 3권에 의한 노조활동을 보장해야 할 것”이라면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측은 양 노조간 갈등을 유발하고 그것을 이용하고 있다. 이는 민주노조 말살이 주요 목적인 것”이라고 비판했다.

그는 또 현재 생탁의 매출도 회복돼, 사측이 압박을 받을 이유가 없다면서, “시민들의 연대가 절실하다. 지금 필요한 연대의 방법은 부도덕한 기업의 제품을 사지 않음으로써 시민들의 의견을 전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 생탁 일반노조원은 지난 5월 7일 조합원 진덕진 씨를 잃어 8명이 됐다. ⓒ정현진 기자

“관련 법, 지자체 관리 감독도 작동하지 않아... 왜 있는지 모르겠다”
소수노조의 교섭권을 제한하는 교섭창구일원화법, 폐지해야

근로기준법, 최저임금법을 지켜 달라는 당연한 권리를 위해 싸우는 것은 택시노조도 다르지 않다.

공공운수노조 택시지부 변재승 부산지회장은 <가톨릭뉴스 지금여기>에 “노조를 만들면 노동권을 보장받을 수 있을 줄 알았다. 하지만 복수노조 허용과 교섭창구일원화법으로 소수노조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것이 현실이며, 오히려 탄압과 차별만이 있을 뿐”이라고 토로했다.

부산지역 택시 노조는 대부분 한국노총 소속이다. 변 지회장은 공공운수노조에 가입한 조합원들은 기존 노조가 노동자들의 권리가 아닌 사측의 이익을 대변했기 때문에 새로운 노조를 만들 수밖에 없었다고 설명했다.

그는 엄연히 존재하는 운수사업법, 근로기준법, 최저임금법을 지키라고 요구하는 것인데도, 사측은 교섭권이 없다는 이유로 거부하고 해당 관청은 이를 관리, 감독할 의지가 없다고 지적하면서, “노조원 과반수를 차지하는 노조가 교섭권을 갖기 때문에 소수노조는 교섭에 참여할 수 없다. 사측이 거부할 수 있는 좋은 빌미다. 교섭창구단일화법은 폐지되야 한다”고 주장했다.

택시 노조가 요구하는 것은 “노조 사무실 제공, 전액관리제(완전월급제) 시행, 미지급 부가세 환수” 세 가지다. 법인택시 관리감독 책임은 지자체에 있기 때문에 줄곧 시청 앞에서 농성을 벌이고 있지만 부산시는 노동청이 해결해야 한다며 책임을 미루고 있다.

이들이 요구하는 전액관리제(완전월급제)는 1997년 생긴 제도지만, 회사 경영과 노동자 관리가 어렵다는 이유로 시행되지 않고 있다. 그러나 이는 택시 노동자들의 생활 안정 문제이자, 이용하는 시민들의 안전과도 연결된다.

현재 법인 택시 노동자들은 노동 시간별로 회사에 사납금을 내고 월급을 받는다. 부산지역 택시 노동자들의 월 급여는 전일 근무일 경우 총액이 약 100만 원에서 110만 원이며, 2교대 근무일 경우 약 90만 원이다. 근무시간은 2교대 10시간 이상, 전일 근무는 15-17시간 가량이다. 또 하루 사납금은 전일 13만원, 2교대 약 9만원이다. 사납금은 노동자가 어쩔 수 없이 일하지 못하는 상황이어도 어김없이 내야 한다.

변재승 지회장은 하루 10시간 이상 일을 하는데도 급여가 100만원이 안 되는 것은 임단협에서 택시 기사들의 하루 노동시간을 4시간 20분으로 정했기 때문이며, 급여는 이 시간에 대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또 시급이 오르면 매년 10만 원 정도 급여가 올라야 하지만, 제자리인 이유는 명시된 노동 시간을 줄이기 때문에 최저임금법도 소용이 없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완전월급제 시행을 요구하는 것은, 노동자들의 생계 문제도 있지만 사납금으로 인해 과속, 난폭운전, 승차거부, 교통사고 발생 등 문제가 많기 때문이라면서, “법인택시는 개인택시보다 교통사고율이 13배 많다. 이는 모두 시민들의 안전 문제”라고 지적했다.

부가세 환수는 택시 회사가 노동자들에게 환급하도록 정부에서 감면해 주는 세금을 착복하는 문제다. 택시회사는 노동조건이 열악한 노동자들을 위한 비용으로 연간 1조원의 세금을 감면받는다. 그 가운데 특히 부가세는 노동자들에게 현금으로 지급되어야 하는데, 월 10만 원인 이 지급금을 그동안 회사가 편법으로 지급하지 않았고 이에 대한 환수를 요구하는 것이다.

변 지회장은 2010년 부가세 현금 환급이 법률로 정해지면서 사측은 최저임금에 포함시켜왔고, 2014년부터 국토부가 월급에 포함시키지 못하도록 했지만, 부산지역은 여전히 유지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노조 측에 따르면 2014년 한해 사측이 착복한 지급금은 약 180억이다.

변재승 지회장은 “법이 왜 있고, 관리 감독해야 할 관청이 무엇을 하는지 모르겠다”면서, “불합리도 어느 정도다. 운수사업법, 근로기준법, 최저임금법...이 가운데 하나라도 지키면 좋겠다. 어떻게 싸우지 않을 수 있겠는가”라며 끝까지 싸우는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 부산시청 고공농성장 앞에는 노숙 농성장이 차려졌다. 지역 시민사회단체 등은 매일 이곳에서 연대를 위한 문화제를 연다. ⓒ정현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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