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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로 이루는 평화, 유토피아가 아닙니다”

이탈리아 소도시 로피아노가 뿌리인 여성 음악 그룹 ‘젠 베르데’의 단원으로 거의 40년을 지낸 한국인이 있다.

2013년을 끝으로 현역 단원에서 은퇴한 민순신 씨(마리아 레지나, 62)다. 로피아노로 떠난 것이 스무 살이던 1973년, 민순신 씨는 40년 가까운 시간 동안 젠 베르데의 한 사람으로 세계 곳곳을 다니며 음악과 춤으로 ‘사랑’과 ‘평화’의 정신을 나누고자 했다. 이제 젠 베르데의 ‘무대’에서는 은퇴했지만, 독신이지만 공동체 생활을 하는 ‘포콜라리나’로서의 삶은 계속될 것이라고 했다. (민 씨는 자신처럼 결혼하지 않고 공동체 생활을 하며 포콜라레 운동의 핵심 역할을 하는 여성 ‘포콜라리나’와 남성 ‘포콜라리노’는 한국에서 모두 합쳐 60여 명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 민순신 씨. ⓒ강한 기자
40여 년 동안 젠 베르데에서 배운 것이 무엇인지 듣고자 포콜라레 한국 본부(여성)가 있는 서울 신당동에서 민 씨를 만났다. 그는 오랜 외국 생활로 한국어가 조금 서투르다면서 기자와 나누고 싶은 이야기를 미리 적어 왔지만, 1시간 30분 가까이 진행된 인터뷰 동안 직접 노래 한 소절이나 노랫말을 들려주고, 때로는 박수를 쳐 가며 경험담을 쏟아 냈다. 이 자리에는 문화, 미디어 콘텐츠 기획자로서 ‘기혼 포콜라리나’인 남은우 씨(클라라)가 함께해 인터뷰에 도움을 줬다.

민순신 씨는 10대 소녀였던 1960년대 중반에 포콜라레(마리아 사업회)를 만나 매료됐고, 그 영향으로 천주교 세례도 받게 됐다.

세례를 준비하며 포콜라레 창설자 키아라 루빅에게 편지를 보냈고 이탈리아어로 쓴 답장이 왔다. 한국에 포콜라레 운동을 소개한 심영택 신부의 도움으로 읽은 편지에서 키아라 루빅은 민 씨에게 ‘작은 마리아가 됐으면 좋겠다’는 뜻으로 ‘마리아 레지나’라는 세례명을 줬고, ‘사랑은 모든 것을 이긴다’는 것을 꼭 기억하라는 말이 적혀 있었다.

젠 베르데는 포콜라레 창설자 키아라 루빅에게서 비롯됐다. 얼마 전 미디어 종사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민순신 씨는 젠 베르데가 전달하고 싶은 메시지는 보편적 형제애는 정말로 이뤄질 수 있다는 것이라고 소개했었다. 젠 베르데가 어느 나라 공연을 가든 그 나라의 언어로 공연을 준비하는 것은 서로가 다르다는 게 일치의 걸림돌이 아니고, 평화는 유토피아가 아닌 현실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무대에서 보여 주기 위한 것이었다. 그는 자기 기억에 23개국 언어로 노래를 불렀다고 말했다.

민순신 씨의 소개에 따르면 젠 베르데는 현재 14개 나라에서 온 20명의 여성이 참여하는 국제 음악 그룹이다. 그런 모임에서 노래를 공연하는 나라의 언어로 번역해 부른다는 것은 보통 일이 아니다. 노랫말 번역에서부터 엄청난 관심과 정성이 들어간다. 원어민이 녹음한 것을 듣고 수없이 연습하며, 그들에게 연습한 노래를 들려주고 검증을 받는다. 민 씨는 음률을 중요하게 여기는 한국의 시나 이탈리아어 노래를 외국어로 바꾸는 일의 어려움을 예로 들었다.

   
▲ 공연을 하고 있는 민순신 씨.(사진 제공 = 민순신)

젠 베르데는 1989년 서울에서 열린 세계성체대회와 2002년 부산 아시안게임 당시 공연과 전국 투어로 한국에서도 많이 알려졌다.

한국에서 공연할 때는 “봄의 교향악이 울려퍼지는 청라언덕 위에 백합 필 적에”로 시작하는 박태준 작곡의 가곡 ‘동무 생각’을 한국어로 불렀던 게 가슴 벅찬 기억으로 남아 있다. 수많은 관객이 노래를 따라 불렀고, 어떤 이들은 눈물을 흘렸고, 누군가는 “‘동무 생각’이 그렇게 아름다운지 몰랐다”고 말했다.

그런 좋은 기억 때문일까. 어느 나라에 다시 가보고 싶은지 물으면 젠 베르데 단원 중 많은 수가 ‘한국’을 꼽는다고 했다. 그만큼 한국에서 많은 사랑을 받았고, 관객들이 받아들이는 깊이가 깊다고 느껴져서 좋았다는 것이다.

젠 베르데 단원들은 이탈리아어나 한국어가 상대적으로 ‘음악적’인 반면, 중국어나 네덜란드어, 독일어에 좀 더 어려움을 많이 토로했다고 민 씨는 말했다. 폴란드에서 열린 세계청년대회에서 폴란드어로 노래를 불렀던 것도 잊을 수 없는 일이었다.

“폴란드어는 정말 힘들어요. 왜냐하면 ‘츠’ 같은 발음이 많이 들어 있어요. 그러다 보니 노래가 딱딱해질 수 있거든요. 그런데 폴란드 사람들이 그 노래를 부르면 얼마나 부드럽게 나오는지 몰라요. 틀림없이 방법이 있다는 얘기죠. 한국인인 제가 폴란드말로 노래를 하기 위한 노력과 땀은 말도 못해요.”

그런 어려움에도 관객들의 언어로 노래하기 위해 젠 베르데가 노력하는 것은, 그렇게 하면 그 나라 사람들과 ‘다리’가 놓여 무슨 메시지든지 전달할 수 있기 때문이다. 민순신 씨는 폴란드어로 노래를 연습하면서 폴란드 사람에 대한 사랑이 커지고, 폴란드의 ‘얼’을 배운다고 표현했다. 그의 표현대로라면 ‘한 나라의 언어에는 얼이 들어 있으며, 그렇기 때문에 그 나라 말로 노래하면 그 언어를 듣는 사람들의 마음에 노래가 직접 들어간다’고 한다.

눈물을 흘리며 ‘왜 한국인이 폴란드말로 노래를 하는가. 어떻게 그렇게 할 수 있는가’ 묻는 폴란드 사람들에게 민순신 씨는 “하고 싶어서 하는 것이고, 그것이 여러분에 대한 사랑”이라고 답했다 한다.

오랜만에 돌아온 한국의 변화에 대한 인상을 묻는 질문에 민순신 씨는 최근에 읽은 글이라며 ‘현대 한국인은 모두 상실의 시대를 살고 있다’는 말을 인용했다. 신을 잃고, 자연을 잃고, 자기 자신을 잃어버린 삶.

또 그가 최근 만난 한국은 바로 옆 사람에게 관심이 없고 소통이 안 되는 시대다. 모두가 휴대폰만 들여다보고, 서로 눈을 바라보지 않는 사회, 간혹 눈을 마주쳐도 쑥스럽고 할 말이 없는 관계. 민 씨는 “미디어 시대라고 하지만 오늘날처럼 소통이 어려운 시대는 없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어디인지 모르는 곳으로 바쁘게 흘러가고 있는 고국을 바라보며 특히 젊은이들에 대한 걱정도 많이 된다. 그는 그런 젊은이들을 보며, 무대 위에서 거울을 바라보며 부르던 노래 ‘Who am I(나는 누구인가)?’를 떠올렸다며, 그 노랫말을 간추려 소개했다.

“거울에 비친 너는 누구인가? 나는 부모가 원하는 나야. 내가 원하는 내가 아니야. 부모는 몰라. 내가 무슨 꿈을 꾸고 있는지. 부모는 내가 변호사가, 의사가 되기를 원해. 나는 그게 싫어. 그리고 미래가 두려워. 너는 젊으니 많은 것을 할 수 있겠다고 하지만 사회에 나가면 자리가 없어. 너는 이것이 부족하고, 학벌은 이렇고, 집은 어떻고, 못 생겨서 안 된다고 해. 나는 별이 되고 싶은데 반짝이는 별이 있을 하늘이 없어. 어떤 때 나는 사람이 아니라 핸드폰이야. 나는 명품이야. 나는 정말 누구인가. 너는 누구인가. 너는 어디에 있나.”

민 씨는 특히 젊은이들에게 아주 잠깐이라도 멈춰 서서 ‘나는 누구인가? 정말 이렇게 살아도 되는 것인가? 사회가 이러니 나도 그렇게 살아야 하는가?’ 물어볼 수 있는 여유를 가져 보기를 권하고 싶어 했다. 또한 민 씨는 “사람이 있어야 돈이 있고, 명예가 있고, 보잘 것 없는 핸드폰도 있다”고 덧붙였다. 그는 “사랑하라. 그리고 하고 싶은 모든 것을 하라”는 성 아우구스티노의 메시지가 키아라 루빅이 젠 베르데에 준 지침이라고 소개하면서, ‘사람’과 ‘사랑’을 삶의 첫 번째 자리에 놓는 사회가 되길 바란다고 했다.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www.catholic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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