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현철

마사회, 드디어 용산 화상경마도박장을 다시 개장했다. ‘적법한’ 건물을 주민들 몰래 짓고, 작년 6월 말 기습 개장한 뒤, 근 1년만이다. 현재 우리나라의 모든 화상경마도박장이 문제지만, 용산의 경우는 특별하다. 우선, 이건 마사회 소유의 건물이다. 언제까지나 경마도박장을 운영할 수 있다는 뜻이다. 다음, 규모다. 지상 18층, 지하 7층! 엄청난 규모의 경마도박장, 전국 최대의 도박 중독자 양산지가 될 것은 불을 보듯 뻔하다. 실제로는 도박장인 화상경마장을 ‘사행산업’이라는 이름으로 초중고교가 많은 도심에 이렇게 대규모로 지어놓은 마사회, 공기업이란다. 그 더러운 손으로, 지역 문화에 기여하겠단다. 다시, 행동이 필요한 때가 왔다. 용산 화상경마도박장 추방대책위원회를 중심으로 지역주민들, 성심수녀회 수녀님들, 성심학교 선생님들, 시민단체들이 도박장 개장을 막기 위해 팔을 걷어붙였다. 우리가 이길 수 있을까? 우리는 저들을 물리칠 수 있을까?

피!

내가 일하는 대학에 헌혈차가 한 학기에 한 번 정도 온다. 이때, 가능하면 헌혈을 한다. 피를 빼면서 누워 있노라면, 마음이 편안해진다. 피는 생명이라, 생명에 대해 생각해 보곤 한다. 고립되어 있으면, 생명은 없다. 순환할 때, 생명이 탄생하고, 생명체는 생명을 유지한다. 우리 몸도, 그렇다. 어딘가 막히면, 탈이 난다. 막힌 곳을 뚫어, 통하게 해야 한다. 다른 사람들과 함께 사는, 사회도 마찬가지다. 서로 통해야 한다. 헌혈은 사람들 사이에 일어나는 순환을 상기시켜 준다. 헌혈차에 누워 있으면, 자연스레 드는 생각이다.

▲ 7월 14일, 청운효자동 주민센터에서 ‘용산 화상경마도박장 개장 철회’를 요구하며 성심여중고 학생이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배선영 기자

비워야, 사람!

사람은 역설적인 존재다. 사람은 자신에서 벗어날 때, 자기를 비워 낼 때, 자기를 충만히 할 수 있는 존재다. 이런 면에서 본다면, 예수는 온전히 ‘사람’이었고, 또한 사람의 ‘완성’이었다. 예수는 자신을 쏟아 부었다. 어디에? 다른 이들, 자기를 가장 필요로 하는 사람들, 가장 힘없는 이들에게 쏟아 부었다. 우리는 그런 예수의 몸과 피를 성체, 성혈이라 한다. 성스러운 몸과 피! 왜 성스럽다할까? 뭐가 특별할까? 자기를 온통 내주었기 때문에. 그렇게 해서 자기 몸과 피를 사랑으로 물들였기 때문에. 하느님은 사랑이시고, 하느님만이 성스럽기 때문에. 그렇게 예수는 하느님과 일치했다. 그래서 예수의 몸과 피, 성체와 성혈이다. 사랑으로 물들이면, 진흙투성이 저잣거리에서도 우리는 성스럽다. 그렇지 않다면, 우리의 겉이 아무리 번듯해도, 성스러움과는 거리가 멀다.

시간!

자신을 어떻게 내어 주는가? 자신을 내어 주는, 여러 가지 방식이 있다. 그중에서 가장 소중한 것 하나, 바로 시간이다. 다른 이들에게 자기 시간을 내주는 것, 가장 소중한 일이다. 우리는 누구나 시간 속의 존재다. 누구나 자기에게 주어진 시간 만큼만 생명체로, 인간으로 존재하고 산다. 그리고 소멸한다. 그러니, 시간이 얼마나 소중한가. 시간은 바로 생명이다. 그렇다면, 시간도 생명과 마찬가지로 순환되어야 한다. 나누어야 한다. 그럴 때, 시간은 제 몫을 한다. 시간은 생명이 된다.

모모, 시간 내주기의 달인!

어느 마을에 어린 소녀가 하나 살았다. 모모! 모모는 잘 하는 게 별로 없었다. 하지만 어느 누구 보다도 잘 하는 일 하나가 있었다. 다른 사람들, 심지어 동물에도 귀 기울이는 능력! 모모는 자기 시간을 아낌없이 사람들의 말을 듣는 데 써 버렸다. 그런 모모와 함께 지내면서, 사람들은 평화로워졌다. 그때, 시간은 성스러웠다, 생명이었다. 모모는, 그리고 모모를 통해 사람들은 시간을 함께 나누었고, 그렇게 시간을 생명으로, 사랑으로 만들었다. 그들은 성스러운 시간을 살았다.

어느 날 마을 사람들에게 “시간저축은행”의 “회색신사”들이 찾아온다. 이들은 사람들에게 시간이 얼마나 소중한지를 일깨운다. 그리곤, 그렇게 소중한 시간을 다른 사람들에게 마구 쓰지 말고, 자기들에게 저축하라고 한다. 그럴 듯했다. 사람들은 자신들의 시간을 은행에 저축했다. 시간을 마을 사람들과 만나 함께 하는 데 쓰는 대신, 자기의 미래를 위해 은행에 맡겼다. 그러자, 이상하게도 모든 것이 변해 갔다. 사람들은 바빠지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더 이상 모모를 찾아가지 않았다. 서로 얘기하지 않게 되었고, 다투는 일도 많아졌다. 시간은 성스러움을, 사람들은 생명을 잃어버렸다. 아니, 사람들은 시간과 생명, 모두를 잃어버렸다. 시간과 생명을 제대로 쓰는 유일한 길은 함께 나누는 것이다. 다른 이들을 위해서 내주는 것이다. 소중한 것이니, 혼자 써야겠다고 생각하는 순간, 일은 틀어지고 만다.

세상에 정말 소중한 것들, 하나같이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이다. 모두 함께, 나누어 쓰도록 되어 있다. 햇빛과 공기와 물을 보라! 사람들이 모여 함께 사는 사회가 막혀 있으면, 자기 이익을 위해 막으면, 탈이 난다. 자기만 먹으려 하면, 큰 탈이 난다. 서로 주고받을 때, 사회는 평화롭다. 순리다.

저들과 우리, 골리앗과 다윗

화상경마도박장 앞에 두 부류의 대조적인 사람들이 있다. 한쪽은 공기업이라는 마사회. 나눔을 솔선해야 할 공공기관의 사람들이 독식에 여념이 없다. 사람들이 도박중독자가 되어 삶이 망가지든, 지역이 피폐해지든, 자라나는 아이들에게 악영향을 끼치든, 상관없다. 돈만 벌면 된다. 다른 한쪽, 자기 생업도 빠듯하지만, 주말이면, 필요하면 평일에도, 화상경마도박장 앞에 나와 항의하고 도박장을 추방하려 노력하는 사람들. 바로, 우리들이다. 우리들은 자기 시간을, 그러니까 생명을 나누고 있다. 우리는 사랑을 행하고 있다. 사랑은, 진리다.

저들이 아무리 거대해도, 결국 사랑과 진리를 행하는 우리가 이긴다. 하느님이 바로 진리이고, 사랑이기 때문이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내가 하느님 나라에서 새 포도주를 마실 그날까지, 포도나무 열매로 빚은 것을 결코 다시는 마시지 않겠다.”(마르 14,25) 예루살렘의 지배세력, 유대종교세력과 로마정치세력 앞에서 예수께서 하신 말씀이다.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이지만, 우리는 하느님 나라로 가고 있다! 이건, 예수의 확신이었다. 자신이 진리와 사랑에 헌신했기 때문이다. 우리도 예수와 함께 하느님 나라로 가고 있다. 이 땅에 하느님 나라를 실현하는 중이다.

▲ 작년 10월 31일 용산 화상경마장 주민대책위는 평가위원회가 조사 결과 발표에 대해 기자회견을 여는 모습. 이들은 "마사회가 구성한 평가위원회의 결과를 수용할 수 없으며, 마사회가 정식 개장을 주장한다면 끝까지 싸울 것"이라고 밝혔다. ⓒ정현진 기자

밥하러 가는 엄마, 이긴다

“수고하셨어요. 저 먼저 집에 갈게요. 밥하러!” 경마도박장 추방대책위 대표로 헌신하고 계신 분의 입에서 나온, 지극히 평범한 우리 엄마들의 말이다. “밥하러!” 이 말을 듣는 순간, 다시 한번 확신이 들었다. “그래, 우리가 이긴다!” 하루 종일 밖에서 싸우느라 피곤한 저녁시간. 하지만 이제부터는 아이들을 위해, 밥하러 집에 가는 엄마! 언제나 다른 이들을 위해 자기 시간을 내어 준다. 자기 생명을 내어 준다. 엄마들은 생명이 무엇인지 안다. 생명을 살리려 한다. 그래서 엄마들 곁에는 언제나 하느님이 계신다.

그러니, 우리가 이긴다. 밥을 하는데도, 이기는 것이 아니다. 밥을 하기 때문에, 이긴다. 아무리 피곤해도 아이들을 위해 기꺼이 밥하러 가는 엄마들 때문에, 우리가 이긴다. 이웃을 위해 소중한 시간과 생명을 기꺼이 내어 주기 때문에, 우리가 이긴다. 엄마들과 함께 우리 모두, 이 길을 간다. 진리의 길, 사랑의 길, 생명의 길이다. 걸어가야 할 길을 걷는다. 끝내, 우리가 세상의 악을 이긴다.

 

 
 
조현철 신부 (프란치스코)
예수회, 서강대학 신학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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