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봉균, "가끔은 미쳐도 좋다", 바오로딸, 2015

세례를 받은 지 얼마되지 않았을 때다. 사제 두 명, 평신도 몇 명과 함께 둥그렇게 앉아 술과 고기를 먹으며 사회문제, 정치 등 다양한 주제로 이야기를 했다. 그런데 주로 말을 하는 쪽은 신부들이었고, 신자들은 말 그대로 그들의 말을 경청했다. 마치 사제들이 세상의 모든 질문에 답을 가지고 있기라도 하듯이 한 마디도 놓치지 않으려고 열심히 듣는 모양새를 보면서 속이 꼬였다. 대체 사제가 뭐 그리 대단하단 말인가! 나보다 뭘 그렇게 잘났다고!

▲ 나봉균, "가끔은 미쳐도 좋다", 바오로딸, 2015
사제도 회사원, 환경미화원처럼 직업의 하나가 아닌가? 어떤 사람은 공무원이 되길 결심한 것처럼, 이들은 신학교에 가길 결심한 것뿐 아닌가. 다른 직업과 다르게 특별할 게 뭐란 말인가.

그런데 이런 생각을 알아채기라도 한 것처럼 프란치스코 교황은 신학생과 예비수도자를 위한 미사에서 사제는 직업이 아니라고 딱 잘라 말했다.

“여러분의 직업은 사제, 수도자입니까? 아닙니다. 그것은 직업이 아닙니다. 직업 이상의 그 어떤 것입니다.”

직업 이상의 그 어떤 것. 직업을 넘어 하느님과 항상 연결돼 있어야 한다는 의미였다. 늘 마음속에 하느님을 간직하고, 연결 돼 있는 사람. 그런 사람이 사제일까? 그런 의미에서 사제는 특별하고 나보다 나은 사람인 것일까? 혼란스러웠다. 그리고 여전히 가르치고 가르침 받는 것처럼 한 방향으로 흐르는 사제와 평신도의 모습을 보는 것은 불편했다.

사제의 삶에 대해 별로 아는 것이 없다. 가끔 만나는 신부님들을 보면 늘 바빠 보인다. 잘 몰랐을 땐 신부는 열심히 기도하고, 미사 집전하면서 여유로운 일상을 누릴 줄 알았는데, 역할을 2-3개씩 맡고 있었다. 저렇게 바쁜데 어떻게 새벽에 일어나 기도를 하는지 신기하다.

그래서 책 “가끔은 미쳐도 좋다”를 통해 봉달이 신부의 삶을 엿보는 것은 흥미로웠다. 화가 나도 참고, 상냥하고, 절제하고, 조용하다는 것이 신부에 대한 막연한 이미지였는데, 봉달이 신부를 보면서 이런 환상이 홀딱 깨졌다. 하지만 신부도 나와 다르지 않은 평범한 사람이라 것을 알게 되자 묘한 안도감이 든다.

“가끔은 미쳐도 좋다”는 봉달이 신부의 솔직함으로 무장돼 있다. 그는 운전을 하다 화가 나면 “불경스러운 말”이 나오기도 하고, 드라마 폐인이며, 치매에 걸려 자신의 내부에 있는 “구린내 나는 것들이 튀어나”올까봐 두려워한다. 나와 너무도 닮은 인간의 모습이다.

봉달이 신부는 늘 예수님을 찾는다. 늘 자신이 예수와 닮은 삶을 살고 있는지 돌아보며, 하느님과 자신의 관계를 마음에 두고 있다. 나와 다른 신부의 특별한 모습이다.

일상 속에서 항상 하느님의 사랑을 실천하고, 사람들을 이해하고 배려하려는 그의 모습을 그려보면서 신부가 “직업 이상의 어떤 것”이라는 말에 공감이 갔다. 어쩌면 신앙은 사랑, 배려, 나눔의 다른 표현인지도 모른다.

봉달이 신부의 코를 고는 소리가 엄청나 동창신부들이 녹음해서 들려 주는 우정을 발휘하는 일이나 사복을 입은 주교가 길에서 예수 믿고 구원받으라는 말과 함께 전단지를 받은 일, 본당사목과 사회사목을 하며 겪은 일 등 깨알 같은 에피소드도 이 책을 읽는 즐거움을 더한다. 참, 이 책의 저자인 봉달이 신부는 대전교구 사회사목국장 나봉균 신부다. 그가 왜 봉달이인지는 책을 보면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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