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과 교회] 의정부교구 상지종 신부 인터뷰

▲ 상지종 신부는 예수의 초대에 언제나 "예"하고 나설 준비를 한다. ⓒ한상봉

세월호 참사 1주기를 전후로 많은 이들이 광화문 세월호 천막을 찾았다. 상지종 신부(의정부교구 송산성당)는 매주 월요일 저녁이면 온갖 모임을 마다하고 광화문 천막미사를 위해 달려오는 사제다. 가톨릭 사제들은 한 주일에 한 번 월요일에 쉬는데 이 시간을 고스란히 세월호 가족들을 위해 내놓았다. 의정부교구 성소국장으로 일하다가 본당에 발령받으면서 한동안 시간을 내는데 어려움이 있었지만, 지난 2월부터 다시 본당 신자들과 더불어 광화문을 찾고 있다.

세월호 참사 이후 벌써 한 해가 넘어갔지만 진실은 밝혀지지 않고, 일부 국민들에게서 오히려 "세월호 이제 그만 잊자."는 말이 나오고, 청와대도 딴청을 부린다고 생각하면 상지종 신부는 가슴이 답답하다. 상 신부는 공영방송을 믿지 않는다. 인터넷 신문을 주로 보는데, 세월호 1주기를 맞이해 거리로 나선 시민들을 경찰이 물대포와 최루액으로 진압하는 광경을 지켜보면서 자괴감이 들었다. 상지종 신부는 "세월호 문제가 제대로 해결되려면 생각보다 시간이 많이 걸릴 것 같다."고 말했다. 무엇보다 2015년의 대한민국이 자신의 대학시절과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는 데 놀랐다.

상지종 신부는 사제가 이럴 때에 할 수 있는 일이 천막미사밖에 없다는 것이 안타깝다. 동창신부들은 월요일 동창신부모임에 거의 나오지 못하는 상 신부에게 미안하다고 했다. 그리고 이따금 광화문 천막에 얼굴을 보이곤 한다. 그게 상 신부는 고맙고 다행스럽다. 신자들 중에는 천막에 꼬박 꼬박 모습을 보이는 상 신부에게 고맙다며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본당 신자들도 본당사제에게 상당히 공감하고 있다.

“세월호 이야기를 지겨워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심정적으로 공감하는 사람들이 더 많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심정적으로 공감하거나 매체를 통해서 보는 것과 직접 와서 보는 건 달라요.”라고 운을 뗀 상 신부는 “시간을 내기 어려운 사람도 분명 있겠지만, 낯선 곳을 찾는 두려움과 부담감 때문에 오지 못하는 분들이 더 많다.”고 말했다. "신자들이 한 번 와 보면, 낯설지 않을 텐데."하는 상 신부는 세례자 요한의 제자들에게 예수님이 "와서 보라!"고 초대하신 걸 떠올렸다. 광화문 천막미사에 참석하는 신자들은 고작 스무 명 정도다. 이제는 서로 얼굴을 많이 익혀서 '한 식구' 같다. 고통 받는 이들과 더불어 새롭게 맺은 '새 가족'이다.

▲ 예수가 성문 밖에서 죽었듯이, 그리스도인들은 교회 밖에서도 그분을 만난다.

상지종 신부는 고등학교 때부터 노래도 좋아하고 기타도 잘 쳤다. 80년대에 대학생이던 형이 가져다 준 노래책이 하필이면 김민기의 '금관의 예수'나 '친구', '오 주여 이제는 여기에' 등이 담긴 서울대 노래패 메아리에서 만든 것이었다. "기타를 배우면서 이 노래를 부르곤 했는데, 가사가 먼저 아름답고, 가슴을 뭉클하게 하는 부분이 있었어요. 저는 이런 뼈 있는 노래들을 통해 먼저 사회의식에 눈을 뜬 것 같아요." 최근 어느 신문과 인터뷰에서 김민기가 세월호를 회상시키는 노래로 '친구'를 추천한 적이 있다. 노래를 부르며 일반 대학을 다니다가 신학교에 입학한 상지종 신부는 학창시절을 이렇게 전했다.

"대학시절 내내 시위에 쫓아다녔던 것 같아요. 학회에서 사회과학 공부도 하고, 다른 학교에서 열리는 집회에도 열심히 찾아다녔죠. 언젠가 집회에 참석했다가 최루탄을 왕창 뒤집어 쓴 적이 있어요. 호흡하기도 어렵고 따갑고 쓰려서 고생했어요. 잔뜩 화가 난 채로 집에 가던 길에 마침 제 본당이었던 왕십리 성당 앞을 지나가게 되었습니다. 성당에 들어가서 예수님께 화풀이를 한 셈이죠. 십자가를 향해 불의한 세상에서 '당신은 뭐하시는 분입니까?'라고 울며불며 항의했어요. 집회 현장에서 손 놓고 구경하거나 공부해서 장학금 받는 친구들도 있는데, 나는 힘들게 뭐하는 건가 싶었죠."

그런데 이때에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 같았다. "나는 아직도 십자가에 매달려 있다." 상지종 신부가 사제 성소를 심각하게 생각한 것은 이런 체험 때문이었다. 이후 가톨릭청년운동을 하면서 조성만 열사의 죽음을 접하고 충격을 받았다. 조성만이 사제가 되고 싶어했는데, 상지종 신부도 하느님의 초대에 응해야겠다고 마음 먹었다. "사제서품 받은지 벌써 16년이 지났는데, 예나 지금이나 하느님은 '나와 함께 하자.'고 끊임없이 초대하고 계신다."라고 말하는 상 신부는 "물론 선택은 나의 몫이지만, 하느님이 이끄시는 길이니 하기 싫다고 중간에 그만둘 수 없지 않느냐."고 되물었다.

"지금은 현장에 계신 예수님 손에 행복하게 끌려가고 있다."며 웃는 상지종 신부는 마지막으로 세월호 유가족인 정혜숙 씨의 말을 인용했다. “지금까지 기도는 차고 넘치도록 많이 해주셨잖아요. 이제는 저희와 함께 해주세요.” 상 신부는 이 말을 기도도 좋지만 실천이 필요한 때라고 알아듣는다. 세월호 천막을 찾는 신자들이 더 많이 늘어났으면 좋겠다는 바람도 잊지 않았다. 상 신부는 “내가 정의를 위해 움직이면 이미 정의는 시작이 된 거죠, 아직 완성은 안 되었지만.”이라는 말로 인터뷰를 마무리하면서 또 다시 세월호 천막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이희연 기자
/ 뜻밖의 소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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