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법원 담당자들의 고민

한국 천주교주교회의 가정사목위와 교회법위가 5월 28일 ‘이혼 후 재혼한 이들의 성사생활에 대한 사목적 배려’를 주제로 공동 주최한 세미나의 뒷부분은 ‘이혼 후 사회 재혼자’에 대한 교회법의 쟁점을 소개하고 전문가들의 고민을 나누는 자리였다.

제2 발제자로 나선 김길민 신부(수원교구 1심 법원장)의 발언은 솔직담백했다. 수원교구 광주본당 주임이기도 한 김 신부는 ‘미사에 열심히 참여하고 헌금도 내지만 맨 뒷줄에 앉아 영성체는 하지 않는 신자들’이 있다면서, “볼 때마다 가슴이 아프고 어떻게 도와줄 수 있을까 생각하는데 길이 많지 않을 때가 있다”고 말했다.

김길민 신부가 지적한 대로 가톨릭교회가 정한 바에 따라 자신이 영성체를 할 수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미사에 열심히 참여하는 이들은 매우 적다. 김 신부는 “더 많은 사람들은 재혼하자마자 ‘이제 성당은 못 나가는구나’ 하고 안 나와 버린다”고 말했다.

논평자로 참여한 안세환 신부(광주가톨릭대 신학연구소장)도 “한국 천주교회에서는 ‘사실혼이나 동거생활을 하고 있는 신자들’, ‘사회혼만 거행하고 살고 있는 신자들’, ‘재혼은 하지 않았으나 이혼에 대한 책임이 있는 신자들’에게 영성체를 금지하는 규정에 이의를 제기하거나 이들에게도 영성체를 허용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거의 없다”고 지적했다.

이에 관해 안 신부는 “이러한 상황에 있는 신자들의 신분이 잘 드러나지 않아 정상적인 혼인 상태에 있다고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거나, 또는 냉담하고 있어서 성당에 나오지를 않기 때문에 이 문제에 대한 이의를 제기할 필요조차 없기 때문일 것”이라는 짐작을 내놓았다.

▲ 5월 28일 천주교중앙협의회에서 열린 '이혼 후 재혼한 이들의 성사생활에 대한 사목적 배려' 세미나. ⓒ강한 기자

논평자 정재호 신부(의정부교구 선교사목국 가정사목 담당)도 “이혼과 동시에 신앙생활을 떠나고, 재혼한 후에도 혼인 무효 소송이라는 절차를 잘 알지 못하여 교회 밖에 머물고 있는 신자들을 교육하는 데에 더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면서, 예비신자 교리교육 때부터 혼인교리와 혼인법을 설명하는 시간을 충분히 가질 것을 제안했다.

그런가 하면 다른 신자들의 ‘오해’로 인한 문제도 있다. 별거나 이혼 자체만으로 영성체 금지의 이유가 아닌데도 사제나 수도자마저도 잘못 알고 있는 경우가 있다는 것이다. 김길민 신부는 “이혼을 했다는 말을 듣는 순간 ‘너 나가’ 하는 분들이 간혹 계시는데, 그렇지 않다”면서 “별거 중에 있거나 이혼했어도 재혼하지 않았다면 성사 생활에는 문제가 없으며 도와줘야 된다”고 말했다.

김 신부는 ‘이혼 후 재혼자’에는 다양한 형태가 있다면서, 이들 가운데 ‘이혼 후 사회 재혼자’를 별도 개념으로 설명했다. ‘이혼 후 사회 재혼자’란 “교회가 인정하는 유효한 혼인을 한 후에 사회적으로 이혼을 하고 나서 사회적인 재혼을 하였지만, 아직은 첫 혼인에 대한 (교회의) 무효 선언도 받지 못하고 해소도 되지 않아서 전 혼인의 유대 때문에 가톨릭에서 인정받는 유효한 혼인(재혼)을 하지 못한 사람”으로, “영성체를 하는 것은 일반적으로 불가능”하다.

즉, 이러한 신자들은 천주교 내 법원에서 혼인 무효 소송을 통해 무효 선언을 받거나 혼인이 해소되면 “정상적인 이혼 후 재혼자”가 되어 성체성사에 참여할 수 있다.

김 신부의 발표에 따르면 재혼한 배우자와 중대한 사유로 헤어질 수 없을 때, 대신 성행위를 하지 않고 형제자매처럼 살겠다는 약속을 하고, 성사 참여 허락이 다른 신자들에게 악한 표양이 되지 않는다는 조건 하에서만 영성체할 수 있다는 것이 현재 가톨릭교회의 입장이다.

정재호 신부를 비롯해 세미나 참가자들은 이런 조건을 지키는 것이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지적을 많이 했다. 주교회의 가정사목위원장 조환길 대주교는 토론 시간에 “그런 예가 있습니까”라고 물었다. 이에 참석자 중 한 사람이 ‘동정 부부’로 유명한 순교 복자 유중철, 이순이의 예를 꺼내들었을 만큼, 성사 참여를 위해 재혼한 배우자와 성관계 없이 “남매처럼” 살겠다고 약속하는 신자는 드물다.

잘 알려져 있듯이 한국 천주교에서 이러한 어려움을 해소하는 대표적인 방법은 혼인 무효 소송을 진행하는 것이다. 정재호 신부는 “교구에 따라 다르지만 대략 4개월에서 6개월 정도가 혼인 무효 소송 기간이며, 거의 90퍼센트에 달하는 혼인 무효 선언이 이뤄지고 있고, 소송 비용도 유럽 교회와는 달리 큰 비용이 아니”라고 말했다.

이에 더해 김길민 신부는 “얼마 전에 교황청에서 한국 교회 법원들에게 통계까지 제시하면서 혼인 무효 소송에서 유효 판결이 극소수라는 점을 지적했다”고 설명하기도 했다. 즉, 교황청에서도 걱정할 만큼 한국 천주교의 혼인 무효 소송에서 무효 판결을 받는 비율이 높다는 것이다.

▲ 주교회의 교회법위원장 황철수 주교 ⓒ강한 기자
이혼 후 재혼자에 대한 ‘사목적 배려’에 대한 논의가 ‘사목적 편의’로 흐르고 있다는 비판도 나왔다. 토론 시간에 제주교구 법원 소속 황태종 신부는 “교회법은 징벌 체계가 아니라 영혼을 구원하기 위한 교정과 속죄를 목적으로 하고 있다”면서 “어떤 것이 그들에게 진정한 사목적 배려인가에 대해 더 구체적인 논의가 돼야 한다”고 말했다.

세미나 사회자 이정주 신부(주교회의 교회법위원회 총무)도 “교회 법원에서 일하는 모든 이들이 다 함께 느끼는 고민”일 것이라면서 “혼인을 지키려고 존재하는 교회법원이 실제로는 혼인을 풀어주려고 존재하고 있는 느낌이 드는데, 균형을 지키는 것이 중요할 것 같다”고 말했다.

세미나를 마치면서 주교회의 교회법위원장 황철수 주교는 “한 사회의 사각지대에 놓인 1퍼센트를 어떻게 인식하고 대우하느냐에 그 사회의 수준이 좌우된다”면서 “이 문제로 우리 교회의 사랑과 사목의 수준을 생각해봐도 좋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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