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정운, "오월의 사회과학", 오월의 봄, 2012

“1980년대 어두웠던 시절 우리의 민주화 투쟁은 민주주의 이념의 힘이라기보다는 5․18의 처절한 경험 그리고 각종 고문사건 등 인간의 존엄성과 생명의 가치가 깨어지던 모습에 대한 분노를 통해 이끌려갔다.”(114-115쪽)

벌써 35년의 세월이 흘렀다. 일제 강점기에 해당하는 먼 듯 멀지만 않은 시간이다. 어린 시절 오월 광주는 철저한 금기였다. 시간이 조금 더 지나 그 금기가 전해지는데, 정말로 그랬을까 반신반의했다. 1987년 봄날 아현동 성당에서 광주항쟁 비디오와 사진 전시회를 봄으로써 그런 반신반의는 경악으로 돌변했다. 1993년 학술고적답사 때 비장한 마음으로 망월동을 찾았다. 그리고 그 사이 전두환과 노태우가 구속됐다. 1997년 다시 망월동을 찾았다. 민주열사들은 구묘역에 그대로 묻혀 있고 5․18때 스러져간 이들은 잘 단장된 신묘역으로 옮겨졌다. ‘사태’는 ‘항쟁’으로 바뀌었다가 ‘민주화운동’으로 자리잡았다.

오월 광주는 하나의 근거였다. 1980, 90년대의 운동은 광주에서 시작되었다 해도 지나치지 않다. 또한 광주는 ‘골고타 언덕’이자 ‘부활’이었고 성지가 되었다. 광주는 하나의 강력한 담론으로서, 한국사회의 변화를 꿈꾸는 많은 사람들은 광주를 다양한 방식으로 전유했다. 수많은 이야기 속에서 오월 광주를 다 아는 듯하지만 여전히 미궁에 빠져 있는 대목이 많다. 이 책은 당시의 증언과 수많은 자료를 통해 광주를 둘러싼 담론은 물론이거니와 그 실존을 추적해간다.

‘경상도 군인들이 전라도 사람들 씨를 말리러 왔다’는 지역감정 섞인 발언은 그 진위 여부를 떠나 부마항쟁과 비교해 광주에서는 훨씬 폭압적이었음을 드러낸다. 공수부대의 폭력은 보는 사람들에게 두려움을 자아내는 전시적 폭력이었다. “518의 공수부대는 문명이 이성으로 만들어낸 야만이었다.”(91쪽) 분명 학살이었다. 과잉진압이라는 말은 학살의 덕지덕지한 분칠에 지나지 않는다.

▲ 최정운, "오월의 사회과학", 오월의 봄, 2012
저자는 여기서 공수부대에 저항하는 광주시민의 태도에 주목한다. 광주시민의 처절한 저항은 “낙동강 전투를 계승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고향을 우리 손으로 지킨다’와 민주주의는 투쟁의 강력한 명분이었으며, 광주시민들은 공수부대에 맞서 자기 손으로 고장을 지키기 위해 싸우는 가운데 ‘우리나라’의 모습을 보았다. 그들은 애국가를 부르고 태극기를 흔들었다.

시민들의 저항에는 광주 지역의 공동체 성격이 주 요인으로 작용했음을 지적한다. 광주는 ‘한 다리 건너면 다 아는 처지’로 누군가 자신의 이웃이 공격 받았을 때 지나칠 수 없다는 것이다. 이렇게 자기 고향과 인간의 존엄을 지키는 과정에서 오월 광주라는 절대공동체가 탄생한다. 절대공동체는 “성스러운 초자연적 체험”(190쪽)이었으며, “자연스럽게 삶과 죽음을 개인을 넘어 공동체 단위로 정의했다. ‘살아남기 위해 싸운다’, ‘우리 고장은 우리 손으로 지킨다’라는 말들은 분명히 개인의 목숨과 공동체의 삶이 일치되었음을 보여준다.”(175쪽)

오월 광주의 절대공동체와 그곳에서 도출된 국가는 앞서 이야기했듯 대한민국의 상징을 이어받았지만 현세의 대한민국과는 너무나 공통점이 없는, “짧은 시간에서만 존재할 수 있었던 국가”(201쪽)였다. 광주에서는 사유재산 관념은 완전히 용해되어버렸는데, 이 상태는 모든 사람들이 자신의 재산을 모두를 위해 나눔으로써 이루어진 것이다. 그러면서도 시민들은 상행위를 존중했고 서로의 재산을 보호해주었다는 것이다.

“시민들은 절대공동체에서 다시 태어났고 이 순간 투쟁은 신명나는 자기창조였다. 모든 시민들은 자기의 목숨, 공동체의 삶을 위해 싸우는 젊은이들을 위해 모든 것을 내놓았고 젊은이들은 거룩한 절대공동체의 이름으로 전쟁을 위해 모든 것을 요구했다. 생명이 공동체로 정의되자 그들은 국가권력을 요구했다. 무장은 당연한 귀결이었다.”(197쪽)

1980년대를 이끌었던 변혁이론의 관점에서는 5․18의 민중을 낭만적인 시각에서 그들의 혁명적 의식은 이미 충만되어 있었다는 것이다. 저자는 이런 류의 5․18에 대한 사회과학 담론은 서양의 실증주의 사회과학 담론을 그대로 적용한 것이라 비판한다. 이러한 담론은 5․18을 특정한 사건으로 보지 않고 여러 사건 중의 하나 또는 ‘구조적 조건’의 발현으로 보아 사건으로서의 518을 매몰시켰다는 것이다. “운동권과 사회과학자들이 모두 5․18을 말하며 집착했던 ‘구조적 조건’은 518 ‘민중’의 육신의 부활을 비는 의식의 주문이었는지 모른다.”(79쪽)

사실 그렇다. 어떠한 사안을 설명하기 위해 만들어낸 이론틀이 구체적 사안에서 도출되기보다 그 구체적 사안을 이론틀에 껴 맞출 위험성이 항상 내재되어 있기 마련이다. 저자는 기존의 이론틀을 넘어 당시의 정황과 목소리를 면밀히 살피면서 오월 광주의 실존인 ‘절대공동체’를 복원해낸다.

아직도 북한개입설이나 시민들의 폭동 같은 5․18에 대한 모략 등이 넘쳐나고 거기서 헤어 나오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다. 또 어처구니없는 ‘님을 위한 행진곡’ 사태 등도 그렇고 오월 광주가 온전히 우리 역사의 주춧돌로 자리잡기에는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할 듯하다. 거기에는 더 부단한 노력이 따를 텐데, 이 저서는 그런 노력의 중요한 성과라 할 수 있다. 저자의 "오월의 사회과학"은 오월 광주에 대한 이론적 끼워맞추기를 넘어서며 자칫 박제화할 수 있는 오월 광주를 지금여기로 생생하게 불러낸다. 오월이 다 지나간다. 오월은 어쩌면 특정 사건의 한때가 아니라 피맺힌 이 땅의 모든 때를 부르는 다른 이름인지 모른다.

김지환 (파블로)
마포에서 나서 한강과 와우산 자락의 기운을 받으며 살아왔다. 역사를 공부했고 그중에서도 라틴 아메리카 역사를 한참 재미있게 공부했던 시절이 있었다. 지금도 이 지역 이야기는 가슴을 뜨겁게 한다. 현재 출판사 편집자로 일하고 있다. 여전히, 좋은 책이 세상을 바꾼다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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