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미아 수녀] 5월 31일(청소년 주일) 마태 28,16-20

오늘은 삼위일체 대축일이면서 한국 교회가 정한 청소년 주일이다.

“성부는 모든 은총 원천이시고 성자는 성부 영광 광채이시며 성령은 무한하신 사랑이시니 두 분이 발하시는 사랑이시네.”

성무일도 삼위일체 대축일에 수록된 찬미가 내용 중 한 부분이다. 이 구절은 “아버지께서는 아드님과 성령과 함께 한 하느님이시며 한 주님이시나 한 위격이 아니라 한 본체”이신 삼위일체의 신비를 잘 표현하고 있다. 또, “하느님은 사랑이십니다.”라고 한 요한 서간 저자의 고백을 우리도 할 수 있게 하며, 성부, 성자, 성령은 사랑 자체로서 우리를 사랑의 길로 안내하고 그 길을 선택하도록 재촉한다.

오월 초, 나는 휴가 때 언니 집에서 이틀을 머물렀다. 기회가 될 때 조카들을 만나고 성장해 가는 모습을 지켜보는 것은 내게 경이로운 기쁨이다. 아장아장 걷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어느새 고1 여학생과 중1 남학생이다.

휴가 간 날, 여자조카가 한밤중에 지쳐서 집에 왔는데 새벽 1시까지 계속 공부를 해야 한다며 금세 방으로 들어갔다. 그 모습은 윤동주 시 ‘해바라기 얼굴’에 나오는 누나와 똑같았다. 나도 야자 세대이지만 안쓰럽기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조카들을 만나고 잠이 들었는데 큰 소리에 깜짝 놀라 깼다. 새벽 2시 30분이었다. 언니가 고등학생 조카에게 화를 내고 있었다. 새벽 1시에는 잠을 자야 다음날 학교에서 멀쩡한 정신으로 공부할 수 있다고 몇 번을 말했냐, 지금까지 공부를 했을 리는 없고 잠을 안자고 뭐 했냐, 그러니 공부에 집중을 못한다는 둥 노발대발이었다. 언니와 조카가 공부 때문에 서로 실랑이 하는 것을 여러 번 보고 들어온 터라 웬만하면 관여하고 싶지 않았다.

최근에 언니는 작은 조카에게서 스마트폰을 압수했고 큰 조카 것은 폴더폰으로 바꿨다고 한다. 어느 해엔가 내가 컴퓨터를 하려는데 마우스가 없어 한참 찾았더니 작은 조카 때문에 숨겨뒀다며 이불 속에서 꺼내 준 적도 있다. 어떤 엄마들은 자판을 감추기도 하는데 본인은 약과라고 했다. TV는 없어진 지 오래다.

그런데 그날은 예사롭지 않았다. 무슨 일이 생길 것만 같았다. 언니가 화를 내다가 뇌출혈로 쓰러지거나 조카가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가 들어오지 않을 것 같았다. 나는 비몽사몽 중에 벌떡 일어나 언니와 조카를 조심스럽게 떼어놓았다. 조카를 재우고 언니의 하소연을 듣고 나서야 누웠는데 마음이 어수선해서인지 심장 뛰는 소리가 들렸다.

다음날 조카들을 따로 만났다. 여자 조카는 엄마와 의견 차이를 극복하려고 하는데 뜻대로 잘 되지 않고 중학교 때 열심히 하지 않아 고등학교 공부가 무척 힘들다고 했다. 엄마 아빠가 우리를 위해 애쓰는 것은 충분히 알지만 지나치게 학교 성적에 집착할 때는 부담스럽고 이제 고등학생이 되었으니 좋아하는 것도 하면서 어느 정도 자신 뜻대로도 살고 싶다고 했다. 조카들과 이야기를 해 보니 부모와 갈등이 있지만 그 마음을 헤아리고 노력하려는 모습이 대견했다. 조카들과 나눈 대화를 언니에게 들려주었다.

언니는 중소도시에서 아이들 양육을 거의 전담하며 형부가 운영하는 가게에 출퇴근하면서 일을 하고 있는데 여자 조카가 고등학교에 입학하자 내신 성적 때문에 예민해져서 조카와 몇 차례 싸웠다고 한다. 언니와 형부는 우리나라 대부분 부모처럼 자식은 ‘내 전부’, ‘내가 살아가는 이유’이기에 뼈가 으스러지게 일해도 아이들 때문에 울고 웃는 보통 사람이다.

지난해 세월호에서 아이들을 건져내지 못한 우리들은 “아이들이 집으로 돌아 온 것만으로 고맙다”고 너나없이 말했다. 그런데 어느새 우리 언니처럼 공부만 하라고 들들 볶고 있다. 공부만이 미래에 근사한 밥을 먹여주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면서도 왜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일까?

▲ 5대 종단 평신도 연합시국기도회에서 한 어린이가 “가만히 있지 않겠습니다”라고 쓰인 피켓을 들고 있는 모습 ⓒ지금여기 자료사진

“아이들이 웃을 때 우리는 행복합니다.”

모 지역 학생회관에 걸린 글귀다. 정말 우리는 아이들이 좋아 하고 행복해 하는 모습을 바라고 있는 것일까. 이 숨막히는 청소년기를 보내는 아이들의 병든 모습은 셀 수 없을 만큼 다양하다. 극단적인 예를 들어보자. 스스로 목숨을 끊어 우리 곁을 떠나고, 스마트폰 앱을 통해 성매매에 유입되는 등 위험한 길을 선택하고, 심지어 학살을 일삼는 무장단체 IS를 동경하기도 한다. 우리가 아이들에게 준 교육 환경과 제도가 낳은 자화상일 것이다. 아이들이 각자 지닌 품성에 따라 가능성을 마음껏 펼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교회가 오늘을 청소년 주일로 정한 것은 “청소년들이 우정과 정의, 평화에 대한 열망을 키우며 자라도록 돕고 그리스도의 진리와 사랑을 전함으로써 교회가 그들과 함께하며 세계의 정의와 평화를 위해 함께 노력하겠다는 다짐”때문 이라고 한다. 위의 다짐에 나타난 바대로 교회가 추구하는 우정, 진리, 사랑, 정의, 평화 등 삶의 중요한 가치를 아이들에게 심어 주는 것은 우리의 가장 중요한 사명일 것이다.

우리 교회는 어떤가. 아이들을 위해 어떤 노력을 하고 있는가. 미사 시간을 배정하고 대입 수험생을 위한 미사를 봉헌하거나 백일기도를 하는 등 몇몇 프로그램만으로 아이들을 배려했다고 할 수 있는가. 아이들이 하느님과 교회를 사랑하고 자발적으로 교회를 찾는 환경과 제도를 마련하고 있는가. 희망을 잃은 아이들이 희망을 찾을 수 있게 정성을 기울이고 있는가. 부모 자녀 갈등을 줄여 주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하고 있는가 등 다양한 각도에서 점검해 봐야 할 것이다.

오늘은 사랑의 신비를 가장 잘 보여주는 삼위일체 대축일이다. 우리 주님께서는 “네 마음을 다하고 네 목숨을 다하고 네 힘을 다하고 네 정신을 다하여 주 너의 하느님을 사랑하고 네 이웃을 너 자신처럼 사랑하는 것이” 성경의 가르침이라고 하셨다. 또 “서로 사랑하여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너희도 서로 사랑하여라.”고 유언처럼 말씀하셨다. 교회와 우리 성인들은 삶을 배우고 익히며 세상을 일궈 가는 청소년들에게 사랑의 가치를 삶으로 보여 주려고 더 노력해 보자.
 

 

 조미아 수녀 
 사랑의 씨튼 수녀회 수녀
 제천 씨튼어린이집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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