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인식 목사의 해방신학 이야기]

전의 글에서 나는 해방신학은 지극히 성서적인 신학임을 말했다. 해방신학은 그의 신학적 성찰을 철저히 성서에 의존하고 있다. 이런 의미에서 해방신학은 어느 신학보다도 그의 전개에서 성서의 생각을 중요하게 여기고 그것을 모든 신학적 성찰의 출발점으로 삼고 있다. 나는 이러한 성서중심적 성격이 혹독한 탄압과 오해 속에서도 해방신학이 사라지지 않고 그 명맥을 유지해 왔을 뿐만 아니라 지금까지도 그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는 이유라고 생각한다.

저명한 해방신학자들의 저서를 읽어 보라. 그들에게서 성서를 제외한다면 남는 것은 아무것도 없을 정도로 그들의 저서에서 우리는 성서의 내용이 다양하게 포함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성서에 대한 깊은 성찰의 자취들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해방신학은 결코 성서를 근본주의적이거나 문자주의적으로 해석하거나 적용하지는 않는다는 사실을 지적해야 할 것이다. 그러면 해방신학은 성서를 어떤 방식으로 해석하고 있는가?

성서는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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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라질의 해방신학자 프레이 베토(Frei Betto)는 라틴아메리카 사제들은 성서를, 세계를 바라보는 하나의 창문으로 간주하는 경향이 있다고 말한다. 사제들은 성서라고 하는 창문을 통하여 세계를 바라보고 있다고 말한다. 그는 기초공동체의 사람들도 마찬가지로 성서라고 하는 창문을 통하여 현재 그들의 상황에 대한 정확한 인식을 하게 되었다고 말한다.

다시 말하자면 라틴아메리카 그리스도인들은 그들의 현장 경험을 통하여 성서를 이해하면서 그들의 경험을 성서적 상징을 통하여 재해석하고 있다, 신학적 용어를 빌려서 표현하면 현장경험-텍스트-현장경험의 해석학적 순환고리가 형성된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현장 경험에서 출발하여 성서적 성찰이 이루어지고 그것은 또 다시 현장의 경험으로 귀결되는 순환형태를 가지고 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해석학적 순환에서 요한 복음 12장 24절의 "밀알 하나가 땅에 떨어져 죽지 않으면 한알 그대로 남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는다." 말씀을 생각해 보자. 물론 이 말씀이 예수 자신의 죽음을 의미하고 있기는 하다. 그럼에도 이 말씀은 해방을 위해 투쟁하던 많은 사람들에게 실제로 발생했던 일들로 간주된다. 해방운동에 앞장서던 한 지도자가 암살을 당하는 일은 라틴아메리카 해방운동에서 늘상 발생하곤 했다. 수많은 사제와 신학자, 그리고 평신도가 비참하게 암살당했다. 민중은 이러한 죽음을 보면서 요한 복음의 예수의 말씀을 읽고 그들의 상황에서 해석했다. 그리고 그들의 지도자의 죽음을 통하여 많은 열매가 맺어지고 있다는 것을 목격하곤 했다. 그리고 그것은 그들이 투쟁을 계속할 수 있는 힘이 되었다. 성서와 현장의 경험이 서로 상호작용을 하면서 삶과 신앙을 이어 가도록 만들고 있었다. 성서의 시각에 비추어서 그들의 삶의 현장이 재해석되고 있었으며 그것은 또 다른 행동의 열매를 맺도록 만들어 갔다.

해방적 해석학과 해방적 지식

그렇다면 해방신학의 성서해석학은 다른 해석학과 어떤 면에서 독특하다고 말할 수 있을까? 해방신학의 해석학 형성에 있어서 지대한 공헌을 남긴 후안 루이스 세군도(Juan Luis Segundo)의 말을 들어 보자.

세군도에 의하면 "가난한 자를 위한 우선택 선택"자체는 해방신학의 궁극적인 목표도 주제도 아니다. 그것은 하느님의 말씀인 성서를 해석하기 위한 인식론적 전제다. 그는 이러한 인식론적 전제에서 출발해서 성서를 읽을 때 비로소 그 말씀의 진정한 의미가 무엇인가를 깨닫게 된다고 주장한다. 그러므로 그에게 있어서 가난한 사람의 입장에서 그들의 눈으로 성서를 읽는 것은 성서 해석학의 출발점이다. 이러한 성서읽기와 해석은 우리로 전통적이고 유럽적인 해석학에 물들어 있는 우리들의 모습을 보게 만들고 우리를 다른 세계로 인도해 나간다고 주장한다.

이런 의미에서 그는 지배적 지식과 해방적 지식의 차이를 보게 한다. 가난한 사람이라는 인식론적 전제에서 출발하는 해석학은 우리로 하여금 해방적 지식을 갖게 한다.

해방적 지식은 지식을 이용하여 생산증대에 전력하게 만드는 지배적 지식과는 달리 날마다 새로운 세계를 추구하고 발견한다. 소유하고 독점하려는 지배적 지식과는 달리 나눔의 세계를 추구한다. 지식을 소유하고 지배하려는 욕망에서 벗어나 그것을 이해하고 해석하려는 노력으로 우리를 인도한다.

해방적 지식은 우리로 하여금 우리의 행동을 정당화하거나 혹은 강제하려하지 않고 오히려 우리로 하여금 대화하고 질문하고 질문에 답하려는 행위로 인도한다. 경쟁하고 지시하는 것에서 협력하고 참여하는 삶으로 인도한다. 현상유지보다는 변화를, 일반화보다는 현장화를 소비보다는 절약을 그리고 개인성보다는 공동체성을 추구하도록 한다고 말한다.

▲ 빈곤 (사진 출처 = en.wikipedia.org)

성서해석과 삶의 현장의 변화

해방적 지식을 추구하게 만드는 해방신학의 성서해석의 목표는 무엇일까? 세군도에 의하면 그것은 한 마디로 변혁이다. 그것은 해방이다. 경제-정치-문화적 해방에 이르는 것이다. 그것은 우리의 상황을 변혁하고 우리의 세계를 좀더 살기 좋은 세계로 만드는 것이다. 해방신학의 해석학은 우리로 하여금 성서에 나타난 해방의 내용에 대한 지식을 갖도록 하거나 해방에 대하여 말할수 있도록 하는 것을 목표로 하지 않는다. 해방신학의 해석학은 우리로 하여금 보다 더 해방적인 행위를 하게 함으로서 이 세계를 변혁하도록 하고 있다. 이런 의미에서 세군도는 이렇게 말한다.

"라틴아메리카에서 가장 진보적인 신학은 해방에 대해서 말하는 것보다 해방적인 삶을 사는 신학이 되어야 한다. 다시 말하자면 가장 진보적인 신학은 우리가 해방에 대하여 얼마나 많이 알고 있고 관심을 갖고 있는 가를 설명하거나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 보다 더 해방적인 삶의 행위의 실천에 관심을 가져야 할 것이다. 우리의 믿음을 가장 잘 보여 줄 수 있는 길은 해방적 실천이다. 해방에 대한 믿음을 강화시키는 것을 넘어서서 그것을 살아가야만 한다. 이것을 위해 우리는 보다 더 해방적인 삶의 태도를 가져야 할 것이며 우리가 나아가야 할 유토피아를 보다 더 분명한 언어, 해방적이며 대안적인 언어를 사용하여 제시해야 할 것이다.

해방신학의 해석학은 전통 그리스도교의 해석에 많은 변화를 가져왔다. 실지로 이러한 해석학 속에서 해방적 삶을 실천했던 라틴아메리카의 많은 그리스도교인들은 성서해석이 단순한 문자적 해석이 아니라 삶의 변혁을 위한 해방적 행위와 연결되어야 함을 몸소 보여 주었고 또 보여 주고 있다. 신앙의 견고성은 어떤 특정한 교리에 대한 확고한 믿음으로 보여지는 것이 아니다. 신앙의 견고성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에 의해서 모범적으로 제시된 삶의 모델을 따르고 또 그에 대하여 헌신하는 삶의 행위로서 보여지는 것이다. 현장-텍스트-현장으로 이어지는 해방신학의 해석학적 순환고리는 우리로 하여금 여전히 이 세계의 변혁을 위하여 그리스도교가 중대한 사명을 감당해야 함을 가르쳐 주고 있다.
 

홍인식 목사
파라과이 국립아순시온대학 경영학과 졸업. 장로회신학대학 신학대학원 졸업 M. DIV.
아르헨티나 연합신학대학에서 호세 미게스 보니노 박사 지도로 해방신학으로 신학박사 취득.
아르헨티나 연합신학대학 교수 역임. 쿠바 개신교신학대학 교수 역임.
현재 멕시코 장로교신학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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