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대교구, 5.18 토론

광주대교구가 ‘교구 5.18 기념일’을 맞아 지난 16일 ‘기억과 식별의 5.18 대화마당’을 열었다. 이날 행사에는 '5.18과 공동체 그리고 하느님나라'를 주제로 정의구현사제단 대표 김인국 신부가 주제발표를 했고, '대동세상의 가치를 교육정책을 통해 어떻게 실현하는가?'에 대해 서광중 배이상헌 교사가, '대동세상의 가치를 시정책을 통해 어떻게 실현하는가?'에 대해 전남대 5.18연구소의 김희송 교수가 발제를 맡았다.

우선 광주 서광중 배이상헌 교사는  5.18에 대한 광주시 교육의 현실을 짚었다. 발제자 자신도 “5.18정신 계승을 이처럼 도전적으로 현실화한 경우를 본 적이 없다”고 표현할 정도로 발제는 5.18 교육의 현실을 구체적으로 꼬집고, 나아갈 길을 제안했다.

그는 현장에 있는 중등 교사인 만큼 직접 겪은 5.18 교육에 대해 보고하고 진단했다. 배이 교사는 교단에서 접하는 2000년에 태어난 중3 학생들에게 5.18은 “정의로운 전설, 낯선 국가폭력이며 한편으로 현대사 교과의 암기사항, 어른들의 구린내 나는 의례”이기도 하다고 했다.

배이 교사에 따르면 2008년 12월 광주시교육청은 5.18 기념재단이 만든 “(초등학생용) 5.18 민주화운동”과 “(중/고등학생용) 5.18 민주화운동”을 교과서로 인정했다. 동국대 홍윤기 교수는 특정한 역사적 사건을 교과서로 제시한 것은 세계 교육역사상 이례적 사건이라고 평가했다.

배이 교사는 5.18의 기억이 무엇인지 물으며 ‘민주화운동’이라는 표현이 ‘87년 체제’식 어법이고 ‘80년의 봄’을 민주화운동으로 부를 수는 있으나 1980년 5월 18일-27일 사이 광주에서 민주화운동을 찾는 것은 어불성설이라고 했다.

“5.18에는 극단적 국가폭력과 사활을 건 생존투쟁, 극단적 곤경에 빠진 ‘우리’를 향한 보편적 ‘측은지심’이 절대적으로 형상화된 ‘주먹밥과 헌혈’의 대동정신, 그것의 귀결로서 열사의 죽음을 배신하지 않고, 헛되게 하지 않으려는 최후의 무장 항쟁이 존재했을 뿐이다. 거기에 무슨 넉넉한 ‘민주화운동’이란 말인가?”

그는 왜 5.18 교육, 왜 5.18 교과서인지 바닥에서 다시 출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배이 교사는 “5.18 교육은 5.18이 1997년에 국가기념일로 선포되기 앞과 뒤가 매우 다른데, 공식적으로 5.18 교육을 드러낼 수 없었던 때에는 교사와 학생이 자발적 동력이 활발했으나, 공식화가 됐을 때는 교사들의 동력이 떨어지고 학생 역시 박물관 답사용 지식으로 바라보는 시선이 많아졌다”고 분석했다.

그는 국가폭력에 저항하기로 한 광주시민의 선택이었던 5.18은 민주화운동이 아닌 민중항쟁이라는 전통적 표현이 적합하다며 이를 통해 우리 시대가 성취한 것은 ‘국민의 정부’나 ‘참여정부’가 아니라 저항과 대동의 정신을 계승하는 역사의식의 공동체라고 강조했다.

배이 교사는 이어 예전에는 교사 개인의 삶의 개성만큼이나 다양하게 가르쳐진 것과 달리 기념일 지정 뒤에는 학교 전체의 프로그램이 되면서 천편일률적인 교육자료와 동영상을 반복해 본 학생들은 시험에 나오는지에 신경을 곤두세우게 됐다고 지적했다.

그는 5.18을 테마로 한국의 민주화운동사를 공유하는 동아리를 만들거나 방과후 강좌를 열어 역사의식 공동체의 밑거름이 되길 제안했다. 이어 5.18 교육의 정체는 5.18의 역사적 현재성을 실현하고 그것을 계승하는 한국사회의 시민군을 배출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또한 배이 교사는 5.18 교육은 진실을 전달하는 소극적인 목적에서 벗어나 ‘역사의식 공동체’를 목표로 지속적 교육운동이 돼야하며 이것은 공교육뿐만 아니라 지역사회의 문제라고 지적했다. 이를 위해 교사들과 시민운동가들이 먼저 역사의식의 공동체로 거듭나고 재구성돼야 한다고 했다.

▲ 5.18 당시 전남도청 앞 분수대에 모여있는 광주시민 (사진 제공 =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전남대 5.18 연구소의 김희송 교수는 1980년 5월의 광주가 자치(self-governing)의 이상적 모델이라고 봤다. 그는 5.18 항쟁기간(5월 18-27일)에 뿌려진 유인물 등에 쓰인 언어들의 “의미틀”(frame)을 분석하여 “시민”에 의한 “공동체”가 어떤 모습이었고 지금에 어떤 교훈을 주는지 살펴보면서, 이러한 작업이 그간의 “기억투쟁” 속에서 (다른 것이 강조되는 사이) 소홀히 되거나 잊혀져 온 광주의 모습도 되살려낼 수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당시 광주에서 이뤄진 “대동세상”에 대해 “공권력이 무력화되고 생필품 공급이 차단된, 고립의 도시에 갇힌 시민들이 서로 살림을 위해 자신의 것을 기꺼이 내어 놓고 양보하면서 스스로 통치하는 민주시민의 새로운 미덕을 창출했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이 시기 신군부는 이들을 “폭도”로, 광주의 상황을 “치안 부재의 무법천지”로 보고 강경진압의 명분으로 삼았다.

김 교수는 그러나 지금은 5.18 항쟁이 외형적으로는 정치적 인정을 받았음에도, 내용적으로는 80년 5월 광주에서 꽃피웠던 대동세상의 현재화는 머나먼 상황이라고 비판했다. 그는 지방자치가 실시된 뒤 6기에 걸친 광주 시정에서 “시정의 슬로건으로 5월 광주정신과 연관된 민주가 제시되었지만 민주를 구체화할 독자적인 중점 시책이 제시된 적은 거의 없었다”고 지적했다.

김 교수는 근래 등장한 “사회적 경제”가 광주 5.18 항쟁시기의 대동세상과 연결된다면서 이를 확대하는 것이 광주 정신을 구체적으로 계승하는 한 길이라고 제시했다.

정의구현사제단 대표 김인국 신부는 주제발표에서 5.18의 과정을 나누고 오늘날을 돌아보며 “목숨과 갖고 바꿔서라도 갖고 싶었던 나라가 오늘의 이런 나라는 아닐 것”이라며 “인간성을 갉아먹는 국가 시스템을 털어 버리고 사람을 위하는 사람의 국가를 새롭게 세우는 것이 광주의 은덕에 대한 보답”이라고 강조했다.

광주대교구는 2005년에 5월 18일을 ‘교구 5.18 기념일’로 지정했다. 5월 16일 대화마당에 이어 17일에는 살레시오 고등학교에서 국립 5.18 민주묘지까지 도보순례를 한 데 이어, 18일 저녁에는 남동 5.18 기념 성당에서 기념미사를 봉헌한다.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www.catholicnews.co.kr>

저작권자 ©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