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의 민주화-근본적 정체성 회복의 길 2.

“가톨릭신자의 종교의식과 신앙생활”이란 주제로 가톨릭신문 창간 70주년 기념 신자의식 조사보고서를 지난 2000년 12월에 출간했다. 또한 창간 80주년 기념사업으로 제3차 의식조사를 진행 중인 것으로 알고 있고, 일부는 내용을 발표하고 있다. 그러나 이 의식조사가 현 상황에 신앙생활을 하고 있는 사제·평신도들을 대상으로 한 것이기에 교회개선과 성장을 위한 참고용일뿐 실제로 큰 의미는 없다고 본다. 이것은 끊임없이 다양하게 변화되고, 정보인식들이 파도처럼 몰려오는 현상에서 마치 기존의식들이 파묻히면서 신앙의식도 그럴 것이라는 위협을 느끼고 있는 교회 기득권층 지도자들이 지금까지 전통적으로 이어진 신앙체제를 보호하려는 의도와 욕구 이상의 것이 아니라고 본다. 오히려 제도교회 밖에서 보고 느끼는 생각을 정확히 알고 대처하는 방법이 더욱 효과적이고 보편적인 대안이 아닌가 싶다. 사실 세상구원과 복음화의 대명제를 안고 역사의 흐름 안에 자리한 교회가 자신의 울타리 밖에서 보는 시각들을 수렴해야하는 것은 당연한 요구가 아닌가? 교회 안과 밖에서 보는 제도교회의 시각은 분명 다르게 표출될 수 있다. 그러나 한국이란 사회 안에 존립하고 있고, 앞으로도 있어야하는 교회가 객관적이고 합리적 또는 이성적으로 판단하는 사회 지성인들의 건전한 평가와 진단을 외면해서는 안 된다. 이것은 교황 요한 23세가 제2차 바티칸공의회를 시작하면서 “십자가에 양팔을 벌려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님의 인류에 대한 무한한 큰 사랑의 품안에 제외된 세상 사람은 하나도 없습니다”라고 선언한 것과 무관하지 않다.

20세기 한국 최고 지성인으로 선정된 리영희 교수는 문학평론가 임헌영과 나눈 ‘대화’에서 그리스도교에 대해 이렇게 언급하고 있다: “과거에도 현재에도 그리스도교는 인간에게 평화보다도 전쟁과 증오심을, 적대감을 만들어 내고 있고, 악이 있는 세상을 설정하며 싸우고 있다. 그리스도교는 예수의 삶을 따르는 것이지 제도와 체제를 유지하는 것이 아니다. 또한 자유와 평등과 정직이 있는 사회가 조성되는 역할을 해야 한다.” “오늘의 그리스도교는 예수의 정신과 복음보다도 제도교회 위상의 팽창력에만 치중하고 있다.” “교회, 성당이 많아질수록 사회 불의, 아픔들이 적어져야 하는데 더욱 많아지는 것을 보면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닌가? 특히 교회가 비과학적이고 비이성적인 내용으로 가르쳐서는 안 된다. 기복화와 내세계관화의 현상이 치사량적인 마약처럼 흐르는 것이 큰 문제이다.”

또 동양의 간디라고 존경받고 있던 함석헌의 민주주의를 외면하는 종교권력에 대한 일갈은 정확하다: “인간이 만든 모든 제도·체제(종교까지도)는 기득권층이 생기고, 그 기득권층은 민중(씨알)의 아픔을 풀어주고 수렴하기 보다는 억압을 하게 된다. 그 중에서 종교권력이 가장 심하다. 한국의 기독교가 역사의 격동기에서 긍정적인 일도 했지만, 종교권력은 정치권력보다도 더욱 오래가고, 한민족의 정서에 밀착되어 우매한 국민으로 만들고 있다. 민주주의를 외치면서 종교 자체는 민주주의를 멀리하고 있다.”

이런 비판의 소리 저변에는 21세기 예측불허의 정보와 과학의 발전 속에서 인간이 추구하는 참 가치와 행복을 그리스도교 신앙이 제시할 때에 그 정체성이 유지될 수 있다는 예지의 판단이 깔려있다고 생각한다. 여기에는 참된 인간성 상실에서 오는 자괴감과 절망을 복음으로 비춰달라는 요구가 있고, 구태의연한 교회 위상에 대한 반성과 함께 쇄신의 절박한 의무를 재차 깨우쳐 주는 소리이다.

그러나 근래 성직자들은 냉담신자 숫자가 점점 많아지고 젊은이들과 청소년들이 교회를 멀리하는 뚜렷한 현상을 보고 교회의 위기감을 느끼고 있지만, 그 원인과 해결 방법을 찾는 데는 별로 큰 관심이 없다. 이는 교회가 인간현상, 사회현상의 변화에 대응하는 살아있는 복음의 메시지를 제대로 선포하지 못하고 있고, 오히려 교회법, 교의로 통제하려는 의지가 강하게 작용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본다. 가끔 이러한 신앙의 위기를 인지한 고위성직자들이 ‘쇄신’과 ‘회개’를 말하지만, 구체적이고 실천적인 변화는 전혀 없다. 8년 전 한국주교회의 의장으로 선출된 박정일 주교는 자신의 회개와 쇄신이 복음화와 사회의 도덕성 회복과 밀접한 관련이 있음을 언급하였다: “회개와 쇄신을 통해 교회가 새롭게 거듭나야 합니다. 그리고 주교들 자신부터 쇄신돼야 합니다. 교회의 사명은 복음화인데, 가장 먼저 사회도덕성을 회복하고 사회정의를 구현해야 합니다.” 이런 고뇌의 소리가 지금도 울리고 있는가? 때로는 언어의 유희로만 회개와 쇄신의 소리를 듣는다. 근래 ‘만들어진 신’(리처드 도킨스), ‘종교의 위기’(우에다 노리우키), ‘다빈치 코드’와 같은 책들이 젊은이들에게 인기를 얻고 있고, 그 내용을 비판 없이 수긍하는 모습에서 크게 보이는 것은 “종교공해”, “교회공해”, “예수공해”란 정서가 사회전반에 깔려 있기 때문이다.

/안승길 2008.0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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