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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 말딩 회장, 글도 남겼으면 좋았을 텐데”평신도로 춘천교구 기초 세워

얼마 전 천주교 춘천교구는 평신도 지도자 엄주언(말딩, 1872-1955)의 60주기를 기렸다. 그의 기일인 4월 30일 춘천 죽림동 주교좌성당에서 추모 미사와 음악회가 열렸다. 이곳 신자들에게는 “엄 말딩 회장”으로 친숙한 엄주언에 대해 4월 26일자 <춘천주보>는 ‘춘천교구 신앙의 증인’이며 ‘전교의 대부’, ‘죽림동본당 창설의 공로자’로 표현했다.

   
▲ 엄주언 말딩 선종 60주년 행사를 기획한 정인조 씨가 춘천 말딩회관 앞에 서 있다. ⓒ강한 기자
행사를 기획한 정인조 씨(은수자 요한)를 5월 12일 춘천 말딩회관에서 만나 엄주언이 어떤 사람이었는지, 그에 대한 기억이 오늘날 춘천교구에 어떤 의미를 갖는다고 생각하는지 물었다.

죽림동본당 사목위원인 정인조 씨는 엄주언 회장과 개인적 인연은 없었다. 다만 2003년부터 7년간 사목회 총무를 맡으면서 죽림동본당 역사에 대한 자료를 읽고 손님 안내도 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관심을 갖게 됐다고 했다.

가족들의 증언에 따르면 엄주언은 한문을 잘 알았고, 마테오 리치가 쓴 한역 서학서 “천주실의” 등을 열아홉  살에 읽고 감명을 받았다. 그는 1894년 현재 경기도 광주시에 있는 ‘천진암’에서 프랑스인 목 신부에게 세례를 받았다.

3년의 천진암 생활을 마치고 춘천으로 돌아왔지만 오랜 박해 때문에 천주교를 두려워하던 이웃들의 냉대를 받았고, 친척의 도움으로 춘천시 고은리의 ‘윗너부랭이’라고 불리던 지역에 폐가를 마련해 화전을 일구며 살 만큼 생활이 어려웠다. 그러나 엄주언은 성실하고 검소한 생활로 이웃들의 존경을 받게 됐고 재산도 조금씩 늘어났다. 그의 노력에 힘입어 1920년에 곰실공소 건물이 마련됐다.

“한국가톨릭대사전”의 ‘춘천교구’와 ‘죽림동 주교좌 본당’ 항목에 따르면 엄주언은 죽림동본당이 풍수원본당에서 분리, 설립되는 데 큰 기여를 했다. 서울대목구장 뮈텔 주교와 풍수원본당 주임 정규하 신부를 여러 번 찾아가 사제 파견을 요청했고, 마침내 1920년 9월 곰실공소가 본당으로 승격되면서 김유룡 신부가 부임했다.

춘천 시내에서 곰실까지 거리가 멀었기에 본당을 옮기기로 결정하고, 엄주언을 비롯해 신자들이 어렵게 마련한 기금으로 약사리에 마련한 땅에 1928년 성당을 옮겼다. 그 성당이 오늘날 죽림동 주교좌성당의 기틀이 됐다.

   
▲ 말딩회관 안 춘천교구 역사관에 엄주언의 사진(오른쪽 아래)이 전시돼 있다. ⓒ강한 기자

엄주언은 1955년에 83살로 세상을 떠났다. 1999년에는 엄주언의 세례명 말딩(마르티노)을 이름으로 붙인 ‘말딩회관’이 만들어졌다. 말딩회관은 엄주언의 막내딸 엄 루시아가 기증한 땅에 지은 5층 건물로 죽림동성당 들머리에 있으며, 춘천가톨릭신협과 교구 평신도사도직 단체협의회 사무실 등을 두고 교구 신자들을 위한 교육과 친교의 장으로 쓰고 있다.

정인조 씨는 엄주언 회장을 “올곧은 신앙인”이자 “전교에 혼신을 다한 우리 현실의 바오로 사도”로 소개했다. 이제 고인이 된 딸 엄 루시아가 2003년 증언한 데 따르면, 엄주언은 딸에게 ‘네가 세상의 금은보화를 다 가져도 네 영혼을 구원하지 못하면 헛일이다’라고 힘줘 말했다.

처음에는 친척의 도움으로 폐가를 얻어 생활할 만큼 가난하고 고립된 그였지만, 1890년대 말-1900년대 초에는 1년에 40-50여 명이 세례를 받게 할 만큼 신자 공동체를 키웠다. 엄주언의 집에서 일하게 된 머슴들도 세례를 받은 경우가 많았다. 정인조 씨는 가족들의 증언을 바탕으로 엄주언이 자신의 일꾼 11명을 세례 받게 하고 결혼할 수 있도록 도움을 줬으며 논 한 마지기를 나눠줬다고 전했다.

이처럼 죽림동본당 설립에 크게 기여한 엄주언 회장이지만, 그의 삶을 돌아볼 수 있는 문서 자료는 거의 발견되지 않고 있어서 가족과 지인의 증언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춘천교구가 말딩회관에 마련한 역사관에는 교구의 초석을 다진 사제들이 기증한 물건과 기록이 전시돼 있지만, 엄주언에 대해서는 사진 한 장과 벽에 쓰인 한 줄의 문장이 거의 전부다. “1920년 엄주언의 독실한 신앙생활과 김유룡 신부의 사목적 헌신에 힘입어 춘천 지역은 풍수원본당에서 분가해 곰실에 터를 잡아 본당을 설립했다.”

정인조 씨는 “그분이 일기나 책을 써 남기셨으면 참 좋았을 텐데, 한문에 능통하셨던 분인데도 아쉽게 그런 자료들이 없다”고 말했다.

   
▲ 춘천 죽림동 주교좌성당 ⓒ강한 기자
정 씨는 엄주언 선종 60주년을 지내면서 2020년 죽림동본당 설립 100주년을 생각하고 있었다. 또한 그는 춘천교구장 김운회 주교도 교구 설정 80주년(2019년)을 앞두고 ‘선교’를 강조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김운회 주교는 2014년 사목교서에서 2019년에는 ‘복음화율’(인구 대비 천주교 신자 비율) 10퍼센트, 주일미사 참례율을 40퍼센트 달성할 것을 목표로 제시한 바 있다. 주교회의가 내놓은 “한국 천주교회 통계 2014”에 따르면 춘천교구의 신자 비율은 8.4퍼센트였다.

그는 죽림동본당에서도 선교를 위한 다양한 프로그램을 마련하고 지도자 양성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면서, 신자들이 엄주언의 신앙을 이어받아 복음 전파에 더욱 힘써야겠다고 말했다.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www.catholic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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