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서대필 사건' 강기훈, 24년만에 무죄 확정

유서를 대필하고, 자살을 방조한 혐의로 옥살이까지 했던 강기훈 씨(51)의 무죄가 24년 만에 확정됐다. 대법원은 14일 강 씨의 무죄를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

이에 천주교인권위 김덕진 사무국장은 14일 <가톨릭뉴스 지금여기>에 “너무 늦게 당연한 판결이 나와서 안타깝다”고 말했다. 이어 이 사건은 한 명이 옥살이 한 것만이 문제가 아니라 “사건을 조작해 당시 강경대 열사의 죽음을 계기로 이어졌던 국민들의 민주화에 대한 열망에 찬물을 끼얹은 일”이라고 강조했다.

‘유서대필 사건’의 시작은 1991년 4월 명지대 신입생인 강경대 씨가 시위 중에 경찰의 쇠파이프에 맞아 숨진 일이다. 그 뒤 전남대 박승희 씨가 노태우 정권에 항의하며 분신했고, 잇달아 안동대 김영균 씨, 경원대 천세용 씨가 분신했다.

이어 같은 해 5월 8일 전국민족민주운동연합(전민련)의 사회국 부장 김기설 씨가 서강대에서 노태우 정권 퇴진을 외치며 분신자살을 했다. 경찰은 김기설 씨의 유서와 필체가 같다며 전민련 동료인 강기훈 씨를 자살 방조 혐의로 기소했고, 1992년 대법원은 징역 3년 확정판결을 내렸다.

▲ 14일 '유서대필 사건' 강기훈 씨가 24년 만에 무죄 확정판결을 받았다. (사진 출처 = 연합뉴스TV 유튜브 영상 갈무리)

김덕진 사무국장은 “검찰, 사법부, 언론이 동참해 이 사건을 왜곡하고 김기설 씨의 죽음 역시 모욕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이에 대해 검찰과 사법부, 당시 여론의 분위기를 몰았던 전 서강대 총장 박홍 신부와 시인 김지하 씨 등도 강기훈 씨와 국민에게 사과하고 다시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당시 김지하 씨는 “죽음의 굿판을 당장 걷어치워라”라는 글을 발표했고, 박홍 신부는 기자회견을 열고 김기설 씨의 분신자살에 대해 “젊은이들의 죽음을 선동하고 이용하며 또 직접 실천하는 반생명적인 사람들의 정체를 알고”, “이 죽음을 선동하는 세력을 반드시 폭로해야 한다”고 말한 바 있다.

또한 김 사무국장은 2012년 서울고등법원 첫 공판이 있은 뒤 3년이 지나 대법원 판결이 나온 것에 대해 “의도적으로 대법원 확정 판결을 미뤘다는 의혹을 살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그는 간암으로 투병 중인 강기훈 씨의 사정을 알면서 대법원 판결이 늦어진 것이 문제라고 본 것이다.

1994년 8월 17일 강기훈 씨는 복역을 마치고 출소했다. 2007년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위원회가 국과수와 7개 사설 감정기관에 맡긴 필적감정 결과를 바탕으로 유서를 쓴 사람이 김기설 씨라고 밝히면서 재심이 결정됐다.

지난해 1월 16일 서울고등법원 재심 결심공판에서 강 씨는 “지난 20여 년간 하루도 빼놓지 않고 업무 중에도, 식사를 할 때도, 화장실에 있을 때도, 심지어 꿈속에서도 무한반복되는 장면들이 있다”며 “이 사건이 법을 다루는 전문가들이 ‘편견’을 갖게 되면 얼마나 불행한 일들이 벌어지는지를 생각하게 하는 참고자료가 되기를 바란다”고 최후진술을 했다.

한편, 참여연대도 논평을 내고 “검찰은 목격자 등 직접적 증거 없이 국과수의 필적 감정결과에 의존해 기소하고, 법원이 일사천리로 유죄판결을 내려, 당시에 사건 조작 의혹이 제기되기도 했다”고 밝혔다.

또한 “2007년 11월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가 재심권고결정을 내렸을 때도, 검찰은 불복하였고, 재심 결정이 난 뒤 지난해 서울고법에서 1991년 국과수의 필적 감정이 신빙성이 없다며 무죄판결을 내렸을 때도, 검찰은 받아들이지 않고 대법원에 상고했다”고 했다.

이어 참여연대는 “검찰이 과거사 재심 사건들에 무리하게 상고하는 것은 명백히 검찰권 남용”이라면서 “권력의 주구 노릇을 하느라 억울한 희생자를 만든 부끄러운 역사를 반성하고, 강기훈 씨 유서대필 재심 무죄 사건에 대한 피해자들에게 사과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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