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제 수사 탄생 100주년 기념 떼제 기도회

“다른 게 자연스럽다.”

예비신자 교리를 받을 때 ‘주님의 기도’를 다시 외느라 힘들었다. 어릴 때 개신교회에 다니면서 입에 익은 그 ‘주님의 기도’와 조금 달라 기도를 할 때마다 원래 알던 기도가 나오기 일쑤였기 때문이다.

떼제에서는 자신의 언어로, 자신이 아는 주님의 기도를 드린다. 다른 말로 같은 ‘주님의 기도’를 드리는 것이 자연스럽다. 각각 다른 교회 배경을 가지고 있지만, 떼제에서 함께 기도를 드리는 순간 “눈에 보이는 일치”를 경험한다.

5월 12일 저녁 떼제공동체를 만든 로제 수사 탄생 100주년을 기념해 서울 정동에 있는 성공회 대성당에서 떼제 기도회가 열렸다. 떼제에서는 찬양으로 기도를 하기도 한다. 기도회 전부터 성당 안에는 준비를 위해 모인 이들이 기도곡을 연습하고 있어 아름다운 선율로 가득찼다.

▲ 5월 12일 저녁 서울 정동에 있는 성공회 대성당에서 로제 수사 탄생 100주년 기념 떼제 기도회가 열렸다. ⓒ배선영 기자

찬양을 배경으로 만난 개신교 신자인 김성수 씨(27)는 2011년 프랑스 떼제공동체에 4달 동안 장기봉사자로 머물렀다. 그는 “다른 게 자연스럽고, 억지로 만들어내지 않는 분위기가 편안하고 좋아” 지금까지도 떼제 기도모임을 찾는다.

수원에 사는 유혜진 씨(마리아, 28)는 “다른 교파의 사람과 함께 기도하고 이야기할 수 있으며 열린 마음으로 오기에 쉽게 친해질 수 있어” 떼제를 좋아한다. 그는 “노래로 기도를 해 누구나 쉽게 전례에 참여할 수 있고, 제약없이 누구에게나 열려 있다”고 떼제를 설명했다. 2013년, 2014년에 두 번 프랑스 떼제공동체에 다녀왔고, 한국에서는 한 달에 한 번 기도모임에 참여한다.

은천성 씨(샤를르, 58)는 1981년에 서강대에서 떼제 수사의 교양 강의를 듣고 떼제를 알게 됐고, 1986년에 프랑스 떼제공동체에 다녀왔다. 그는 “개신교 안에서도 교파가 다른 사람끼리 만나면 경직되는데 이곳에서는 그렇지 않고, 믿지 않는 사람들도 편히 있을 수 있다”고 했다. 그는 “주님께 요청하는 기도가 아닌 신뢰 속에서 주님의 뜻을 기다리는 기도가 공동체 안에서도 가능하다”고 덧붙였다.

▲ 기도회에서는 홍콩, 타이완, 일본 등에 있는 청년의 기도를 받아 보편지향기도를 드렸다. ⓒ배선영 기자
이날 “떼제공동체와 함께 하는 화해와 연대를 위한 일치 기도회”에는 240여 명이 모였다. 기도회 중에는 홍콩, 타이완, 일본 등의 청년 기도모임에서 보내 온 내용으로 보편지향기도를 드렸다. 이날 기도회를 준비한 신한열 수사가 전자우편으로 받은 이웃 나라 청년들의 기도를 번역했고, 그는 한국의 청년들의 기도를 번역해 이웃나라들로 보냈다.

기도회에 온 사람들을 맞이하느라 바쁜 신한열 수사와 잠깐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그는 “떼제를 다녀간 사람들이 일상에서 힘을 얻어 자신이 속한 교회에서 그리스도인으로 충실히 살아가도록 하는 것이 목적”이라고 말했다. 그래서 떼제는 운동을 만들지도 않고, 회원이 있지도 않다.

“중요한 것은 떼제의 묵상이나 노래만이 아니라 화해와 일치의 정신이다. 교회 전통의 차이를 어려움으로 보지 않고 우리를 더 풍부하게 해 준다고 본다면 우리의 신앙도 풍요로워 질 것이다”

또한 그는 “일치가 먼 훗날에 일어날 일이 아니라 지금 여기에서 일어난다는 것을 체험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다. 일치하고 화해해야 한다는 말이 아닌 함께 하는 오늘의 기도 속에서 하나가 되면 “눈에 보이는 일치”가 이뤄진다. “표현은 다르더라도 예수님이 가르치신 기도가 하나라는 것을 느낄 수 있는 것”이다.

떼제공동체는 갈라진 그리스도인들의 일치와 화해, 인류의 평화를 위한 수도공동체를 세우기 위해 로제 수사가 1940년에 프랑스 동부의 작은 마을인 테제에 정착하면서 시작됐다. 제2차 세계대전 때는 전쟁포로, 유대인, 피난민 등을 맞이했고, 지금은 수많은 젊은이들이 떼제공동체를 찾는다. 30개 나라 100여 명의 수사가 있으며, 남유럽, 아시아, 아프리카, 중남미 등 가난한 지역에 파견돼 생활한다.

한편, 떼제공동체는 북한 적십자회가 운영하는 두유공장에 콩과 기름짜는 기계 등을 지원해 학교의 아이들이 매일 한 잔씩 두유를 마실 수 있도록 지원하고 있다. 또한 북한의 병원에 의료기기나 약품을 지원하고, 의사가 프랑스에 와서 공부하고 돌아갈 수 있도록 돕고 있다.

이에 대해 신 수사는 “장벽으로 갈라진 교회, 찢어진 인류의 화해와 일치를 위해 평생을 바친 로제 수사의 발자취를 따라 분단된 한국 현실에 조금이나마 평화와 화해의 다리를 놓을 수 있는 일이 있다면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 떼제에서 드리는 "십자가 주위의 기도". ⓒ배선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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