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네딕도의 날'에 본 "성과 속"

▲ 5월 12일 성 베네딕도회 왜관수도원에서는 35년 만에 베네딕도회 전체 수도공동체 모임이 열렸다.ⓒ정현진 기자

한국 베네딕도회 9개 공동체 수도자 300여 명이 모인 가운데 5월 12일 경북 칠곡 성 베네딕도회 왜관수도원에서 ‘봉헌생활의 해 베네딕도의 날’이 열렸다.

이번 행사는 성 베네딕토가 유럽의 수호성인으로 반포된 50주년을 기념해 열렸으며, 모든 공동체가 함께 만난 것은 지난 1980년 베네딕토 성인 탄생 1500주년 이후 35년 만이다.

베네딕도회는 거창하고 요란한 행사는 아니지만, 35년 간 한국의 베네딕도 수도공동체가 성장한 모습을 돌아보고 형제적 친교와 우애를 나누는 시간으로 마련했다며, “베네딕토 성인의 규칙을 함께 따르는 수도자들이 스승의 정신과 삶의 자리를 다시 확인하고자 한다”고 취지를 밝혔다.

이번 공동체 행사에는 성 베네딕도회 왜관수도원을 비롯한 툿칭 포교 성 베네딕도수녀회 대구수녀원, 툿칭 포교 성 베네딕도수녀회 서울수녀원, 부산 올리베따노 성 베네딕도수녀회, 고성 올리베따노 성 베네딕도수도회, 성 베네딕도회 요셉수도원 등 6개 공동체와 카말돌리수녀회, 수정의 성모 트라피스트 수녀원, 성공회 베네딕도수녀원 등이 참여했다.

기념행사는 박현동 아빠스, 배은주 수녀(툿칭 포교 성 베네딕도수녀회 대구수녀원)의 강의 그리고 각 수도 공동체의 문화행사, 저녁기도 등으로 진행됐다.

▲ '봉헌생활의 해 베네딕도의 날'에 참여한 각 공동체들은 베네딕도회의 어제와 내일을 함께 살피는 한편, 문화 공연도 했다. ⓒ정현진 기자

“환대는 그리스도인 정체성”

‘한국 베네딕도회가 나아길 길’을 주제로 강의한 배은주 수녀는 오늘날 한국 베네딕도회의 소명은 바로 ‘환대의 실천’이라고 말했다.

배 수녀는 우리가 경험한 가장 큰 환대는 “하느님의 아들인 예수가 이 세상에 인간의 모습으로 온 것”이라며, “이는 인간의 처지 그대로를 하느님이 당신의 온 존재로 끌어안은 것이며, 환대는 바로 나의 처지에서 하느님의 처지, 아픈 이들의 처지로 넘어가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배 수녀는 수도자들에게 일만큼 중요한 것이 쉼, 안식이라면서, 성경에서 이른 ‘안식일’의 의미를 되짚었다. 그는 안식일은 천지창조 마지막 날 하느님이 쉬면서 세상을 축복한 날이며, 희년과 같이 모든 피조물의 관계를 회복하는 시간이라고 설명하면서, “안식일의 영성은 삶의 관계망을 지키고, 약자를 연민하도록 마련한 시간이라는 것에 있다”고 말했다.

또 배 수녀는 “환대는 이론이나 아름다운 말로 하는 것이 아니라 체험과 실천을 통해 이뤄지는 것”이라면서, “우리 각자가 수도하고 수신하는 힘이 커지고 늘어나면 함께 하느님 체험을 하는 이들이 늘어나고, 그것을 통해 세상을 바꾸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절박한 세상의 자리에서 기도하고 일하라”

▲ 베네딕도 수도회는 출판, 성물제작 등 다양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분도출판사에서 펴낸 "해방신학".
박현동 아빠스는 <가톨릭뉴스 지금여기>에 한국 안 베네딕도회는 공동체별로 20년에서 100년에 이르며 35년 전보다 6개의 공동체가 늘어난 만큼 봉헌생활의 해를 맞아 성장과 활동을 돌아볼 기회를 마련했다고 이번 행사의 목적을 설명했다.

베네딕도회는 특정 사도직 활동이나 창립 목적이 없다. 굳이 규정하자면, 수도 공동체 생활을 중심으로 ‘하느님을 찾는 삶’ 자체가 목적이다.

박현동 아빠스는 베네딕도회가 앞으로 어떤 길을 갈 것인가에 대해서 “현재 베네딕도회가 하고 있는 일은 지난 역사의 산물이지만, 그 지속 여부는 세상과 교회에 도움이 되느냐에 따라 달라질 것이다. 우리는 끊임없이 복음화에 필요한 일을 식별하고 찾아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또 ‘기도하고 일하라’는 수도회 모토는 다시 말하면 ‘이 시대의 절박한 곳에 가서 기도하고 일하라’는 소명이 될 수도 있다면서, “특히 ‘환대’라는 측면에서 우리는 수도원을 찾는 모든 이들을 그리스도처럼 맞이할 것이며, 공동체도 세상을 향해 활짝 열고 우리가 필요한 곳을 적극적으로 찾아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예전의 수도생활은 수도원 담장을 기준으로 성과 속이 분리됐지만, 이제는 그런 물리적 공간을 넘어 세상과 만나고 사람들에게 새로운 의미를 전달해 줄 수 있어야 한다면서, “그런 일들은 눈에 드러나는 일보다 훨씬 더 세심하고 영적인 측면으로 접근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행사에 참여한 김 세실리아 수녀(툿칭 포교 성 베네딕도수녀회 대구수녀원)도 <가톨릭뉴스 지금여기>에 “아주 오랜만에 공동체 가족들을 만나 황홀하고 기쁘기 그지 없다”며, “세상을 바꾸는 것이 그리스도의 길을 가는 것이다. 이번 행사가 세상의 빛이 되고 소외된 이들 속에서 일치하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고 소감을 밝혔다.

김 수녀는 요즘 접하고 있는 세월호 가족들 소식을 언급하면서, “우리가 세상과 함께 아픔을 나누기 위해서는 세상을 더 알고, 어디로 흘러가는지 지켜봐야 한다. 그 가운데 수도자로서 참여해야 할 것이며, 서로 연대함으로써 세상을 새로움과 밝음, 평화로 인도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왜관수도원 진 토마스 신부는 “환대는 베네딕도회의 본래 전통이었으며, 그 모토는 평화”라고 말했다. 그는 “군부독재 시절, 모일 곳 없는 이들이 찾아온 곳이 바로 베네딕토 수도회였다”며, “세상을 위해 기도하는 것은 물론, 우리 회원들이 평화를 위해 할 수 있는 것은, 누구나 거침없이 자신의 의견을 표현하고 이야기할 공간과 기회를 마련하는 일일 것”이라고 말했다.

베네딕도회는 지금으로부터 1500년 전 이탈리아 누르시아 출신 성 베네딕토가 지은 수도규칙(Regula Benedicti)을 따르는 남녀 수도회들의 연합으로, 수도원 역사는 6세기 초 성 베네딕토가 이탈리아의 수비아코와 몬테카시노 등지에 수도원을 세우면서 시작됐다. 한국은 1909년 독일 베네딕도회 수사들이 오면서 시작됐다.

2015년 현재 한국 베네딕도회 공동체는 6개이며, 전체 회원은 약 1200명이다.

▲ '베네딕도회의 날'은 저녁기도와 각 공동체 파견으로 마무리됐다. ⓒ정현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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