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교구 노사목, '신앙토크, 일과 신앙의 괴리' 열어

‘노동’은 생활을 잇기 위한 수단을 넘어 가치관과 공동선을 실현하는 장이라고 한다. 그러나 이 땅에서 ‘노동’, ‘노동자로 살아간다는 것’은 너무 많은 부당함을 감수해야 하는 육체적, 감정적 ‘노고’에 가깝다. 과도한 노동시간, 업무량 배당과 같은 나쁜 노동 조건, 동료나 관리자 간의 갈등, 부당한 업무 지시에 항의하거나 거부하는 것은 곧 부당함의 악순환이나 ‘실직’의 위험을 동반하기 때문이다.

이런 노동의 현실에서 신앙인들은 또 다른 어려움을 겪는다. 교회는 노동과 노동자의 존엄과 귀중함, 불의에 대한 저항을 가르치지만 ‘노동자로서의 신앙인’들은 현실적 한계와 함께, ‘가르침과 실제’ 사이의 괴리를 온몸으로 체감해야 한다. 노동자로서 정당한 권리를 요구하고, 부당한 요구, 정의롭지 않은 일을 거부해야 하지만, ‘착한 신자’여야 한다는 강박감에 갈등의 주인공이 되는 것을 주저하거나 홀로 견디고 만다. 나아가 신자로서 잘못된 상황을 외면했다는 죄책감에 시달리기도 한다. 

▲ 이날 사례 발표에는 서울대교구 노사목, 가노청, 가노장 회원, 제안과 조언에는 노사목 전문위원들이 나섰다.ⓒ정현진 기자

“회사 관리자의 언어 폭력, 인격 모독을 참기 힘들지만, 신앙인이기 때문에 언행을 조심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참아 왔습니다.”

“회사가 추구하는 것은 정당하지 못한 방법으로 다른 기업의 자리를 빼앗는 일이었습니다. 신앙관에 비춰 불의한 일이었지만, 어떤 영향력도 행사할 수 없는 처지였기 때문에 고민을 하다가 결국 회사를 그만두게 됐습니다.”

“연장 근무와 노동력 착취가 계속됐지만, 대처할 방법이 없어 우울증을 앓을 정도였습니다. 결국 퇴직했고 퇴직금을 신청하자, 사장은 적은 금액으로 합의하려고 했습니다. 변호사를 앞세운 사장을 이길 수 없어, 결국 합의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5월 10일 서울대교구 노동사목위원회가 노동절을 맞아 마련한 대화마당 ‘신앙 톡(Talk) 일과 신앙의 괴리’에서는 이러한 노동자로서 살아가는 신앙인들의 구체적인 상황을 나누는 자리로 열렸다.

이날 대화마당에서는 신앙을 가진 노동자들이 한국사회 구조 안에서 노동자로서 살아가는 어려움뿐만 아니라 불의한 구조 속에서 신앙인으로 겪어야 하는 괴리감에 대해 토로했다. 또 이들의 이야기에 대해 노동관련 전문가들이 각자의 분야에 비춰 공감하고, 대안을 모색했다.

신앙을 가진 노동자들에게 신앙은 무엇이며, 그들의 일터에서 신앙은 어떤 의미가 돼야 할까. 갈등과 문제를 푸는데 신앙이 힘이 되려면 노동자와 경영자들이 함께 갖춰야 할 것은 무엇일까. 

▲ 서울대교구 노동사목위원회는 지난 5월 10일 오후 2시부터 서울 명동 가톨릭회관에서 '신앙 톡, 일과 신앙의 괴리' 대화마당을 열었다.ⓒ정현진 기자

“신앙인, 노동자로서 권리 찾기.... 혼자서는 할 수 없다”

노동자들의 여러 사례에 대한 도움말에는 서울대교구 노동사목위원회 전문위원들이 나섰다.

먼저, 문무기 교수(경북대 법학전문대학원)는 “권리위에 잠든 자, 보호하지 않는다”는 말을 들며, 현실적 조언에 나섰다. 그는 근로기준법, 근로계약과 노사간 권리, 의무를 노동자들이 제대로 알고 있어야 한다면서, “법은 스스로 해결해 주거나 비서 역할을 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권리의식을 갖고 노력할 때만 ‘친구’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또 근로계약상 노동자에게 성실하게 일할 의무가 있다면, 사용자에게는 인적, 근로관계상 안전과 배려의 의무가 있다면서, “근로계약은 (너무도 당연한) 신의성실의 원칙에 따라, 서로 이행해야 하며, 이 모든 것은 노동자와 사용자가 모두 존엄한 인간이라는 것에서 출발한다”고 강조했다.

박영기 노무사는 특히 노동자들의 감정노동과 ‘직장 내 내부고발’(양심선언)에 대한 신앙인들의 자세를 언급했다. 우선 최근 사회적으로 지속적 문제제기가 되고 있는 감정노동 문제 개선을 위해서는 ‘역지사지’의 자세가 필요하다면서, “우리 모두는 신자이면서, 고객이자, 소비자, 감정노동자, 사용자의 입장을 갖고 있다”며, “‘존중받고 싶은 만큼 남을 먼저 존중한다’는 감정노동의 황금률을 먼저 지켜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직장 내 내부고발’(양심선언)에 대해서는 최근 양심선언에 나선 이들이 천주교 신자인 예가 많았다면서, “이는 내부고발과 관련한 복음적 기준은 옳지 않은 것에 ‘아니오’라고 나서는 것이며, 침묵은 복음의 가르침이 아니라는 신앙적 실천의 결과”라고 말했다. 또 ‘내부고발’이라는 세속적 용어 대신 ‘양심선언’이라는 교회적 표현이 그 목적에 맞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김동배 교수는 양심선언에 대해 윤리적 차원에서 살피면서, “양심선언 이전에 조직 안에서 해결을 도모하는 것이 우선이며, 양심선언의 목적, 경위, 양태 등을 살펴 공익성이 인정되면 제보자를 보호하는 구조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현재 윤리적으로 양심선언이 허용되는 조건은 “심각한 손실의 실제적 위험 존재, 내부 채널을 통한 손실 예방을 우선적으로 추구했는가의 여부” 등이다.

“인간은 바로 자유롭고 창의적이며 참여적이고 연대적인 노동을 통해 삶의 품위를 드러내고 드높일 수 있습니다.”(‘복음의 기쁨’ 192항)

박용승 교수(경희대 경영대학)는 “기업의 가치가 선하고 공동선을 지향하고 있다면, 신앙과 노동의 가치가 부합하게 될 것”이라며, “신앙인으로서 겪는 ‘일과 신앙의 괴리’를 극복하는 중요한 방법은 주체적 각성과 참여, 연대”라고 강조했다.

박 교수는 “‘새로운 사태’를 시작으로 교회의 사회교리가 촉구해 온 노동조합 장려는 그 어느 때보다 존중돼야 한다”면서, “이를 위해서는 책임 있는 기업 운영, 노동조합 운동을 이끌기 위한 깨어 있는 리더십이 모두 필요하다”고 말했다.

김어상 교수(전 서강대 교수)는 “‘사람’이 모든 일의 원인이며 최종 목적, 운영 주체임을 기억해야 한다”면서, “사회교리에서 가르치는 연대성, 보조성, 공동선의 원칙은 바로 ‘사람의 사람을 위한 사람에 의한’을 의미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또 김 교수는 목적과 수단은 똑같이 정당해야 한다면서, “교회의 가르침은 꾸준히, 조금씩 그리고 함께 이뤄가야 하는 것”이라고 당부했다.

“책임자의 명령이 도덕이나 기본 인권, 복음의 가르침에 어긋날 때, 신앙인들은 양심적으로 그 명령에 따르지 않을 의무가 있다.”(‘가톨릭교회교리서’ 2242항)

마지막으로 장경민 신부(서울대교구 노동사목위원장)는 “일과 신앙 사이의 괴리는 우리 자신이 바로 신앙인이기 때문에 겪는 것”이라면서, “우선 신앙인으로서 정체성을 분명히 하고, 불의를 복음으로 변화시키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일터의 문제는 더 많은 이들과 함께 공유하고 의견을 들음으로써 복음적 변화를 위해 노력하는 ‘식별과 실천’의 과정이 필요하다면서, “노동은 단지 ‘수고로운 일’이 아니라 그것을 통해 세상을 바꾸도록 주신 사명”이라고 말했다.

이날 대화마당에 참석한 김영우 씨(인천교구 효성동성당)는 “다른 사람들도 나와 같은 갈등을 겪는지, 또 어떻게 그것을 대처하는지 궁금했다”고 참석 이유를 밝히면서, “회사 안에서 여러 가지로 어려운 이들을 도와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현실적으로 나서지 못해 죄책감을 갖고 있다. 오늘 이야기를 통해 공감할 수 있어서 좋았다”고 말했다.

또 김영우 씨는 “노동자들이 자신의 권리가 무엇인지 정확히 모르는 경우가 많고, 접할 기회도 적은 것이 사실”이라며, 노동자 권리 교육의 활성화가 아쉽다는 의견을 내기도 했다. 김 씨는 교회에서도 노동교육을 하면 좋겠지만 당장 현실적 한계가 있는 것도 사실이라며, “노동교육에 대한 공감대와 인력 부족이 해결된다면 교회에서도 노동교육을 할 필요성이 있을 것”이라고 했다. 

▲참석자들은 노동문제에 대한 이론적 세미나가 아닌, 현장의 목소리를 듣고 공감할 수 있는 자리였다고 평가했다.ⓒ정현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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