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명기 신부] 5월 3일(부활 제5주일) 요한 15,1-8

농사를 짓는 분들의 공통된 가치 중 하나가 '땅은 사람을 속이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씨 뿌리고 돌보는 농부의 시간과 정성이 결실로 그대로 맺힌다는 말입니다. 당신은 포도나무요 우리는 가지이니 포도나무에 껌딱지마냥 붙어 있어야만 열매를 맺을 수 있다는 복음에서 예수님이 하신 말씀은 자연의 순리이며 진리이고 하느님의 섭리입니다.

중요한 점은 포도나무와 가지가 연결된 하나이기 때문에 열매를 맺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그것을 "내 안에 머무르고 나도 그 안에 머무르는 사람은 많은 열매를 맺는다"(요한 15,5)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는 때때로 열매를 맺지 못하면서도 포도나무에서 잘려나가지 않은 것에 감사하며 살아가는 작은 사람들입니다. 때문에 열매를 맺을 때까지 기다려 주시는 농부이신 하느님의 은총을 체험합니다. 은총에 보답하는 길은 부활하신 예수님이 내 안에 머물고 내가 그분 안에 머물러 온전히 하나되어 열매를 맺는 것입니다. 머루가 아니라 포도나무에서 열리는 포도를 맺기 위해 온전히 주님의 안에 머물러 있으려 간절히 기도합니다.

농사가 기본이 아니어도 콩 심은 데서 콩이 나고, 팥 심은 데서 팥이 난다는 것쯤은 모두가 아는 이치입니다. 포도나무에서 나오는 열매가 포도여야 한다는 것은 마땅하고 당연한 일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살고 있는 지금의 시대와 세상은 콩 심은 데서 팥이 나거나, 팥 심은 데서 콩을 맺어도 이상하게 여기지 않고 받아들입니다. 포도나무에서 포도가 열려야 하는데 사과가 열려도 아무런 이의 없이 인정하는 불의가 판치는 세상입니다.

▲ 포도경작, 앙리 마르탱.(1860-1943)

항해하던 여객선이 알 수 없는 이유로 침몰되었고 국민생명과 안전을 지켜야 할 책임이 있는 정부는 해야 할 구조 노력을 하지 않아 304명이나 되는 생명이 죽임을 당하는 참사가 발생했는데도 그저 교통사고라고 치부합니다. 진실 규명과 재발 방지를 위해 법을 만들고 대책을 마련하여 우리의 아이들에게 안전한 나라를 전해 주자는데 종북세력이라며 손가락질 합니다. 노동자들을 재화획득의 수단으로 전락시킨 신자유주의에 물든 기업이 이윤을 목적으로 숱한 해고 노동자들을 만들었고, 생계의 수단을 빼앗긴 이들은 생명마저 희생당했는데 기업과 나라를 살리기 위한 것이라고 오히려 큰소리를 칩니다. 자연과 환경의 파괴로 이어지는 원자력 발전을 마치 대체 에너지의 마지막 선택인 양 선전을 하고, 그것을 위해 산골 마을의 생존권마저 짓밟으면서도 당연한 권력행사라고 우깁니다. 정의를 바탕으로 한 평화가 하느님의 뜻임에도 불구하고 전쟁과 무력을 키우기 위해 강정을 깨부수는 정책이 한반도와 아시아의 평화를 위한 것이라고 억지를 부립니다. 개발과 도시계획의 논리로 주거 정의를 산산히 부숴 버리고 삶의 터와 가족을 잃은 철거민들을 법이란 미명으로 짓누르는 재벌들도 있습니다. 목숨을 버리면서까지 검은 돈을 주었다고 말한 사람이 있는데, 돈을 받은 사람이 아니라 주었다는 사람을 구속하고 수사하는 세력도 있습니다. 누가 보아도 불의한 일이며 부정한 일입니다. 공동선이 뭉개지고 정의와 진리가 재물과 이윤으로 교체되는 잘못된 방향으로 나가고 있는데도 올바로 가고 있다고 적반하장으로 큰소리치는 사람들이 득시글대는 세상입니다.

포도나무에 대한 복음의 비유에서 예수님은 단호하게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나 없이는 아무것도 하지 못한다."(요한 15,5) 그렇습니다! 정의가 근간이 되지 않는다면 평화는 이루어낼 수 없습니다. 생명에 대한 존중을 가지지 않는다면 삶과 노동에 대한 존엄은 불가능합니다. 자기만 편하게 살면 된다는 이기를 버리지 않는다면 공동선은 남의 얘기가 됩니다. 진실규명이 없다면 재발방지는 거짓 정권이 쌓는 모래성일 뿐입니다. 가난하고 소외된 약자들에 대한 배려가 없이 이루어지는 개발과 발전은 몇몇의 탐욕을 채우는 일에 불과 합니다. 포도나무에 붙어 있지 않아 열매를 맺지 못하면 잘려 나갈 뿐입니다.

또한 포도가 아닌 다른 열매를 맺는다면 포도나무에 붙어 있지 않다는 것입니다. 부활하신 예수님 없이는 아무것도 하지 못합니다. 콩 심은 데서 팥이 나는 것을 당연히 여기며, 팥 심은 데서 콩이 나는 것에 대해 아무런 반론도 제기하지 못하는 세상에서 포도나무에 달린 가지들의 역할은 무엇이겠습니까? 포도나무에 붙어 있는 가지에서는 포도가 풍성한 열매로 맺힌다는 것을 보여 주어야 합니다. 여전히 진리와 하느님의 의로우심은 살아 있음을 기억하고 외치며 살아가야 합니다. 이윤과 재물로 모든 것을 다 할 수 있다고 외치는 세상에서 하느님 없이 이루어지는 것은 모두가 허상이라는 부활의 기쁜 소식을 선포해야 합니다. 눈앞의 이익을 위해 가난하고 약한 이들의 희생을 강요하는 이들에게 농부이신 하느님이 심으신 진리와 정의의 포도나무, 예수님 없이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닫게 해 주어야 합니다. 같은 열매를 맺기 위해 예수님은 당신 안에 온전히 머무르라고 우리를 초대하십니다.

 

 
 

 박명기 신부(다미아노)
 의정부교구 청소년 사목국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www.catholicnews.co.kr

저작권자 ©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