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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산 참사 유족들과 함께 해 주세요"[긴급호소]

 

 

      벌써 두 달 가까이 장례를 치르지 못하고 순천향병원에서 고생하고 있는 용산참사 유가족 지원을 위한 모금을 위해 천주교인권위원회 사무국장인 김덕진씨가 지인들과 천주교 사회운동 가족들에게 드리는 편지를 <지금여기>에 보내왔다. 뜻 있는 분들의 응답을 기다리며 전문을 싣는다. -편집자 

 

 

 

 

 "떠나지 못하는 사람들" (동영상 제공/ 용산참사범대위, 천주교인권위)

 


안녕하세요. 천주교인권위원회에서 사무국장으로 일하는 김덕진입니다.

이명박 정권 1년 동안 다들 여러 가지 일들로 힘들고 답답한 시절을 보내셨으리라 생각합니다. 많은 일들 가운데, 저는 지난 두달간 용산화재참사 범대위 상황실에 결합하여 유가족을 지원하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주로 낮에는 명동 사무실에서 일을 하고 저녁시간 이후에는 순천향대학병원 영안실에서 지내왔습니다. 옷가지도 영안실 한 구석에 자리를 잡아 두었고 노트북도 영안실에 가져다 두었습니다. 용산범대위와 유가족들의 상황을 설명드리며 제가 그동안 천주교인권위원회에서 활동하면서 만나 뵈었던 분들께 이 메일을 드립니다. 개인적 서신이긴 하지만 결국은 공적인 이야기들이 담기게 되겠지만 말입니다.

 

   

김덕진 천주교인권위원회 사무국장

 

십수명의 유족들, 3명의 수배자, 전철연 중앙간부들, 매일 조를 짜서 서명운동과 영안실 농성을 함께하는 전철연 회원들까지 합치면 40여 명의 사람들이 영안실과 주변에 있고 교대하는 분들을 포함하면 매일 연인원 80여 명 정도가 영안실을 중심으로 모여 생활하고 있습니다. 또 그만큼의 숫자가 수도권의 모든 대학과 지하철을 돌며 구속자 석방 서명운동을 하고, 또 그만큼의 숫자가 용산 4지구에 재개된 철거를 저지하는 싸움을 하며 노숙농성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이 모든 책임이 이 철거민들에게 있다구요?

망루에 올라갔던 이들 중 6명, 경찰관을 사망케 했다는 혐의로 구속되었고 전철연 중앙간부 1명이 그 이후 집회과정에서 구속되었습니다. 잘 알고 계시는 것처럼 전철연 남경남 의장과 용산범대위의 박래군, 이종회 공동집행위원장도 수배중입니다. 경찰은 또 바로 어제 김태연 범대위 상황실장을 체포영장을 발부받아 순천향대학 병원 영안실 앞에서 연행해 지금 남대문경찰서에서 조사를 하고 있습니다. 두 달 동안 시신안치실과 영안실 사용이 1억7천여 만 원입니다. 사건 발생 2주후부터 천막을 치고 임시주방을 만들어 밥과 국을 해 먹으며 살고 있는데도 이렇습니다.

구속, 불구속 기소된 30여 명의 변호인 선임료 등 재판비용 5천만 원, 집회와 행사, 선전활동에 드는 비용이 대략 7천만 원 정도이고 부상자 치료비가 3천여 만 원입니다. 현재까지 3억이 넘는 비용이 들었고 이 중 1억원은 그동안 단체 분담금과 현장 모금 등을 모아 지불했고 2억여 원은 용산범대위와 유족들의 부채로 고스란히 남아있습니다. 앞으로도 얼마나 시간이 걸릴지 수 알 수 없고 다섯 유족 중 주거공간이 철거된 뒤 영안실을 나오면 천막이나 거리로 가야할 수밖에 없는 처지에 있습니다.

이 사건을 수십일 분석하고 연구했지만 경찰이 이례적으로 무리한 진압을 하지 않았다면, 보통의 예처럼 협상하고 설득하는 과정을 시간을 가지고 거쳤더라면, 이런 참사는 일어나지 않았을 것입니다. 화염병과 세녹스 수십통을 가지고 망루를 지었다는 이유로 대형 참사로 이어 질 것이 예상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무리한 진압을 강행한 경찰과 공권력에게는 어찌 아무 잘못이 없다 할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지금 장황한 설명과 함께 시시비비를 가리고 싶지는 않습니다. 이후 재판 과정에서 분명히 밝혀질 것이라는 희망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눈물나는 이야기들

생존권 투쟁을 하는 이들 중 절박하지 않은 사람들은 아무도 없습니다. 그런데 이 다섯 철거민 유족들의 사정은 참으로 더 절박합니다. 저도 원래 전철연을 좋아하지 않았습니다. 아시는 분들이 보통 가지고 있는 편견과 선입견이 제게도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두달을 곁에 있어 보니 이들도 그저 동네 형님, 누나들이였으며 떡볶이를 팔고 비디오를 대여하는 평범한 아저씨 아주머니들이었습니다. 이들을 옥상으로 내몰고 투사가 되도록 부추긴 사람들은 결국 자본과 그 자본을 비호하는 권력, 그리고 가난한 사람들과 한동네에 사는 것은 견딜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하는 대부분의 중산층 사람들입니다. 용산범대위가 만든 30분짜리 영상물 <떠나지 못하는 사람들>을 보시면 이런 절절한 이야기들이 나옵니다. 곧 발간될 철거민들의 구술집 <여기 사람이 있다>에도 눈물 없이는 읽을 수 없는 사연들이 있습니다.

고 이상림씨는 한 자리에서 27년간 돼지갈비 장사를 했습니다. 1년 반 전 막내아들 내외에게 맡겨 호프집으로 리모델링을 하였습니다. 매일 새벽 가게 앞을 쓸고 닦는 일로 시작한 이상림씨가 막내아들 내외와 함께 살던 셋방도 가게가 있는 건물 옥탑에 있으니 이번 개발로 집과 생활터전을 다 잃게 된 것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어느 누가 자신의 권리를 위해 저항하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그는 그 칠십 노구를 이끌고 망루에 올랐다가 만 하루도 지나지 않아 까맣게 불타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의 막내아들 이충연은 아버지와 함께 망루에 있다가 무릎인대가 파열되고 유독가스로 인한 폐협착으로 입원해 있다가 구속되어 치료도 제대로 못 받아 다리를 굽히지도 못하는 지경이 되고 말았습니다. 남편을 잃은 어머님은 면회만 다녀오시면 막내아들까지 어디 잘못되지나 않을까 한숨으로 밤을 지샙니다.

고 양회성씨는 여기저기서 빚을 얻고 전재산을 털어 넣어 용산에 복집을 차렸습니다. 두 아들도 아버지의 뒤를 이어 일식조리사로 일하고 있었기 때문에 조만간 온가족이 함께 가게를 운영하는 꿈에 부풀어 있었습니다. 그에게 철거와 재개발은 평생의 꿈을 바로 목전에서 앗아가는 절망적인 일이었습니다. 평생 요리만 알고 살던 양회성씨는 하연 조리사 복장대신 파란색 우비를 입고 망루에 올라가게 된 것입니다. 장성한 두 아들 중 둘째는 2주 전 추모대회에서 경찰방패에 맞고 바닥에 깔려 무릎연골이 파열되었습니다. 무릎 수술을 하고 병원에 입원해 있다가 목발을 집고 아버지 곁에 있겠다며 영안실로 돌아왔습니다.

   

고 윤용헌씨는 철거민들에게 그렇게 인기가 좋은 분이었다고 합니다. 누구에게 싫은 소리, 큰 소리 한번 하는 법이 없었고 궂은 일은 도맡아서 하는 든든한 오빠, 형 같은 분이었다고 합니다. 올해 대학에 입학한 큰아들이 아버지에게 보낸 편지를 추모대회에서 낭독했을 때 대회 참가자들과 기자들 중 눈물을 흘리지 않은 사람은 하나도 없었습니다. 서울 순화동에 있던 집과 가게가 철거되어 생업도 잃고 집도 잃었습니다. 고등학생 상필이는 영안실에서 일어나 가방대신 걱정과 눈물을 등에 지고 등교를 합니다. 숙제할 공간도 없어 이리저리 옮겨다니며 겨우겨우 숙제를 합니다.

고 한대성씨는 조용하고 묵묵한 분이셨다고 합니다. 수원 신동의 집이 철거위기에 닥쳤지만 두 아들과 참 화목한 가정을 이루고 사셨다고 합니다. 신동에서 집회를 할 때 연대해주었던 사람들이 고마워서 그날도 용산에 연대를 오셨다고 합니다. 큰 아들 승균이는 이제 상병입니다. 이 친구가 걱정되어 부대에 특별히 부탁을 해서 얼마전에 특별휴가를 나왔는데 때뜻한 밥 한끼 손수 지어 먹이지 못한 어머니는 조용히 눈물만 흘리셨습니다.

고 이성수씨는 불의를 보면 참지 못하는 분이셨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런지 두 달이 지났는데도 가족말고 후배들이 영안실을 자주 찾으십니다. 이 가족은 13년 전에 용인 수지에서 철거를 당하셨답니다. 그때도 투쟁을 했는데 받은 보상금으로는 수지에서 살 수 없어 성남으로 옮기게 되셨다고 합니다. 노점상을 하시며 살고 계셨는데 3년 전 살던 집이 두 번째 철거가 되어 네 식구가 천막을 치고 살아오셨다고 합니다. 한번도 아니고 두 번이나 살던 지을 철거당한 이의 심정을 우리가 감히 짐작이라도 할 수 있을까요? 사고뭉치였던 큰 아들은 2주전부터 아르바이트를 시작했습니다. 원래 입대가 결정되어 있었는데 이일로 미루었고 당장 동생 학교갈 차비라도 벌어야지 않냐고 하며 새벽시장 옷가게에 일하고 있습니다. 둘째는 자기 학교 선생님들과 학생들에게 구속자 석방 서명을 천명이나 받아왔습니다. 유족들의 2세들이 거의 저보다 아우들인데 이 친구들 보면서 제가 많이 배우고 있습니다.

글이 좀 길었습니다. 하지만 꼭 말씀드리고 싶었습니다. 용산참사문제가 언론의 관심에서 멀어져가고 있고 공권력의 탄압은 상상을 초월하며 전방위로 펼쳐지고 있습니다. 사실 범대위의 힘으로는 언제까지 버틸 수 있을지 걱정입니다. 이명박 정권에서 과연 우리가 승리할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이 모두 앞서겠지만 어떻게 되더라도 이 다섯 유가족들의 슬픔은 남편과 아버지를 잃은 것에서 끝이 나야 한다는 것입니다. 가족의 죽음에 대한 억울한 한이 풀리지 않고 도심 테러를 자행한 폭력집단의 가족으로 매도되어 초라한 장례를 치루고 다시 천막으로 돌아가야 한다면 정말 이 사회에는 먼지만큼의 희망도 없는 사회가 되고 맙니다.

유족들과 범대위에 힘과 마음을 모아주세요

각 단위에서 모금운동을 하고 있고 용산범대위에서도 김석기 등 책임자들에 대한 국민고발운동을 전개하며 모금운동을 하고 있습니다. 용산범대위 홈페이지 (www.mbout.jinbo.net)에 들어가시면 간단하게 참여하실 수 있습니다. 그런데 용산범대위로 모금하시기가 어려우신 분들도 계실 것입니다. 또 유족들을 직접 지원하고 싶으신 마음도 있으시라 믿습니다. 그래서 다섯 분에 대한 간략한 설명을 드렸고 다섯 분의 부인들 명의로 통장을 개설했습니다. 이리로 직접 작은 정성을 모아주시면 이 기금들은 영안실 비용을 비롯한 유족들의 삶을 지원하는 일에 쓰이게 될 것입니다. 다섯 분 중 한분에게만 보내셔도 좋고 사연을 보시고 마음이 더 가시는 가족을 지원하셔도 좋습니다.

 

여러분들의 마음이 모이지 않으면 이명박 정권에서 이런 일이 또 일어날지도 모릅니다. 간곡하게 부탁드립니다. 작은 정성도 눈물겹게 감사합니다. 모금이 아니면 물품을 보내주셔도 좋습니다. 쌀, 김, 김치, 참치캔, 버섯, 소주, 맥주, 라면, 짜장라면 무엇이든 환영입니다. 직접 오시기 힘드신 분들은 택배로 보내주세요. 연락만 주시면 그 마음과 정성을 유족들에게 전달하겠습니다. 장황하게 긴 글이 부담을 드리지나 않았나 모르겠습니다. 다급하고 간절한 마음이 깊어 전화연락 한 통 드리지 못하고 실례를 무릅쓰고 이렇게 메일을 드린 것에 다시한번 양해를 구하며 유족들의 계좌와 물품을 보내주실 곳의 주소를 아래에 적습니다. 제 연락처도 적습니다 (김덕진 016-706-8105) 보내실 때 전화나 문자로 알려주시면 더욱 감사하겠습니다.

끝까지 읽어 주셔서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명랑 드림

 

모금해 주실 계좌

모금해 주실 유족계좌

농 협 302-0030-1081-11 김영덕 (고 양회성님 부인)
농 협 302-0018-2602-31 전재숙 (고 이상림님 부인)
국민은행 295402-01-105119 유영숙 (고 윤용헌님 부인)
국민은행 295401-01-156901 권명숙 (고 이성수님 부인)
국민은행 295401-01-156943 신숙자 (고 한대성님 부인)

물품 보내주실 주소
서울 용산구 한남동 657 번지 순천향대학병원 장례식장 4층 특실

용산범대위
02-795-14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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