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교리 렌즈에 비친 세상 - 박용욱]

오늘부터 '사회교리 렌즈에 비친 세상'은 대구대교구의 박용욱 신부가 맡아 주십니다. - 편집자

1958년, 벽안의 젊은 미국 신부님이 가난한 나라 한국을 찾아옵니다. 미국명 앨로이시어스 슈워츠, 한국 이름으로 소 알로이시오 신부님입니다. 전쟁의 참화가 채 가시지 않은 한국의 산하를 마주하면서 그는 이렇게 묻습니다.

"미국에는 개들도 피할 집이 있고 병을 치료할 병원이 있었지만, 한국에는 많은 사람들이 헐벗고 굶주리고 병든 채 살아야 한다. 이것이 과연 하느님이 원하는 세상일까?"

가난한 이들 안에서 하느님 나라를 발견한 소 알로이시오 신부는 똥냄새 진동하고 죽은 동물 썩는 냄새가 가실 줄 몰랐던 부산 송도의 판잣집에서 4년 9개월을 삽니다. 내가 먼저 가난해야 가난한 이들의 처지를 이해할 수 있으며 같은 느낌을 가질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그 경험을 통해 무엇이 우리 사회에 가장 먼저 필요한지를 깨달은 신부님은 특별히 가난한 아이들을 돌보는 데 헌신했습니다. 소 신부님과 신부님이 세운 마리아수녀회의 수녀님들은 아무도 돌보지 않는 아이들의 몸과 마음을 씻어 주면서 그들의 아버지와 어머니가 되어 주셨지요.

이 모습을 보면서 자랐던 부산 송도의 한 소년이 훗날 비슷한 길을 따르기 시작합니다. 의대를 졸업하고 의사로서 안정된 삶을 살면서 홀어머니의 위신을 세워 드릴 수도 있었던 이 분은, 살레시오회에 입회한 뒤 전쟁으로 고통 받는 남수단의 아이들을 위해서 학교를 세우고 환자를 돌보며 음악을 가르칩니다. 그분은 사목생활 9년을 온전히 아이들을 위해서 바쳤고, 그분의 돌봄을 받았던 아이들은 멀리 한국에서 온 신부님을 아버지로 기억합니다.

그분이 바로 이태석 신부님입니다. 이태석 신부님은 멀리 한국 땅에서 고아를 돌보던 소 알로이시오 신부님에게서 삶의 향기를 맡았다고 술회합니다. 아마도 수단의 소년들은 같은 향기를 이태석 신부님께로부터 맡았을 테지요. 사랑은 이렇듯 멈추지 않고 아래로 내리 흘러서 세상에 향기를 퍼뜨리는 법입니다. 소 신부님을 통해 하느님의 사랑을 체험한 소년이 다시 사제가 되어 아프리카의 소년들에게 다가가는 모습은 하느님 사랑이 어떻게 흘러 세상을 적시는지 보여 준 좋은 예였습니다.

그러나 이런 사랑의 흐름이 한 개인이나 수도회의 차원을 넘어서 국가적인 차원에서 이어지고 있는지 살펴보면 상당히 실망스런 것도 사실입니다. 2004년 쓰나미가 동남아 일대를 강타했을 때 독일 자동차 경주 선수 미카엘 슈마허 씨는 개인 자격으로 무려 천만 달러에 이르는 성금을 선뜻 냄으로써 세상을 놀라게 했지요. 당시 한국 정부는 절반에도 못 미치는 돈으로 생색을 내려다 눈총을 받고, 결국 500만 달러를 보내는 데 그칩니다. 대조적으로 정부는 2005년 허리케인 카트리나가 미국을 덮치고 난 뒤에는 일본을 뛰어 넘어 3000만 달러에 이르는 성금을 보내는가 하면 당사자 미국 정부와 조율할 틈도 없이 구호물품을 실어 보내는 놀라운 순발력과 배포를 자랑하게 됩니다. 비밀 해제된 미 대사관 문서에 따르면 한국 외교부 당국자는 구조팀 파견과 구호품 전달을 거부한 미국 당국에 고위급 관리들의 체면을 생각해서 구호품이라도 받아 달라고 매달리는 희극을 벌이기도 했지요.

갑자기 늘어난 씀씀이가 불안해서였는지 2013년 필리핀 태풍 참사에는 다시 500만 달러로 구호금을 줄였다 급기야 지진으로 4000명 이상의 사상자를 낸 네팔에는 100만 달러의 긴급 구호 자금을 보내기로 했다는 소식이 들립니다. 서울 명동에서 다섯 평의 땅을 사기에도 모자란 11억 원 정도의 자금이 네팔에서는 얼마나 큰 효과를 낼 수 있을지 의문입니다만, 아무튼 일찍이 구호품으로 연명하던 나라에서 돈 지갑을 열게 된 것만도 다행이라 할까요. 긴급구호 뿐만 아니라 상시적으로 세계적 빈곤에 대처하기 위한 공적 개발 원조(ODA)의 경우에도 대한민국의 위상은 초라하기 그지없습니다. OECD 국가 중에서 최하위권에 머무르는 원조의 규모도 규모려니와, 얼마 안 되는 원조마저도 녹색ODA, 새마을 ODA라는 이름으로 한국의 경제적 영향력을 키우는 데 집중시키고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요컨대 받아먹기만 하고 내놓을 줄 모르는, 게다가 얼마 되지 않은 원조금을 통해 도리어 경제적 이득을 추구하는 행태가 우리 모습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런 몰염치한 모습을 통렬히 지적할 만큼 우리 교회가 나눔에 적극적이었는지 묻는다면 이 또한 답하기 곤란한 질문이 되고 맙니다. 물론 한국 천주교회가 점차적으로 해외원조의 규모를 늘려 온 것은 사실이지만, 신자들이 내는 교무금과 주일 헌금이 교회의 담 밖을 넘어서 가장 낮고 어두운 곳까지 흘러 들어가기엔 여전히 부족한 듯 보입니다. 교구 별로 나름의 지침을 마련하고 본당 예산의 일정액 이상을 반드시 사회 사목과 자선에 쓰도록 유도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실천은 아직 머나먼 실정입니다. 한때 ‘밀가루 신자’라는 말이 나돌 만큼 많은 것을 받아 온 우리 교회가 언제쯤 이런 민망한 상황을 벗어날 수 있을까요. “얻어먹을 수 있는 힘만 있어도 은총”이라지만, 얻어먹기만 하고 나누지 못하는 이들이 은총의 값어치를 제대로 셈할 수 있으리라고 생각하기는 어려울 겁니다. 선의의 신자들이 어렵게 낸 교무금과 헌금이 좀 더 값있게 쓰이길 바랍니다. 당장 네팔의 참사 앞에 우리 교회가 어떻게 대응하는지 지켜 볼 일입니다.

▲ 네팔 지진으로 무너진 건물들 (사진 제공=한국 카리타스)

 

박용욱 신부 (미카엘)
대구대교구 사제  포항 효자, 이동 성당 주임을 거쳐 현재 대구가톨릭대학교 의과대학과 간호대학에서 윤리를 가르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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