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도자가 바라본 세상과 교회]

오늘부터 '수도자가 바라본 세상과 교회'는 사랑의 씨튼수녀회 이진영 수녀가 맡아 주십니다. - 편집자

월례 피정 중에 산책을 하다가 작은 숲을 발견했습니다. 대부분의 수종이 참나무종인 산에 어림잡아 약 50평 남짓 작은 소나무 숲이 눈에 들어왔지요. 평평한 언덕에 저마다의 뿌리와 줄기를 가지고 하늘을 향하여 쭉쭉 뻗은 가지 위로 푸른 솔가지들이 하늘을 이고 서 있었습니다. 숲으로 들어서니 짙은 솔내음에 기분이 상쾌합니다. 산책하면서 듬성듬성 서있는 소나무를 만났지만, 함께 어깨와 머리를 맞대고 하늘을 향해 무리를 이룬 숲은 참으로 특별한 느낌을 주었습니다. 그 숲에서 풍기는 솔내음~ ‘이것이 공동체의 힘이다!’하고 느꼈습니다. 사람들은 저마다 지구 위에서 작은 공동체를 이루며 살아갑니다. 가정공동체, 지역공동체, 국가공동체, 민족공동체, 신앙공동체, 지구공동체.... 각자가 함께하는 이유를 공유하며 서로를 품고 의지하며 살아가는 것이지요. 때론 갈등을 겪기도 하고, 때론 화합을 이루면서....

새터민(탈북자) 공동체 소임을 하면서 한반도 공동체, 한민족 공동체에 대한 진한 의식을 체험하며 분단 칠십 년의 역사에서 우리는 어떠한 모습으로 공동체를 이루고 있고, 나는 어떤 의식과 소명으로 공동체 안에 존재하는지를 틈틈이 성찰하게 됩니다. 소중한 것들을 진정으로 소중함으로 의식하며 살 수 있는 것이 바로 ‘삶을 행복하고 기쁘게 살 수 있는 비결’이 된다는 것을 새삼 느낍니다.

하나원(탈북자 정착지원사무소, 탈북자들이 남한 입국 뒤에 국정원조사가 끝나면 하나원에서 약 3개월간 남한 착에 관한 교육을 받는 곳)에 가서 미사를 할 때면 미사에 나온 새터민들이 기도를 요청합니다. 그 내용은 대부분 ‘북쪽에 있는 부모님이 건강히 잘 계실 수 있게 해 주세요.’ ‘북에 있는 자녀를 하루 속히 만날 수 있도록 도와주세요.’ ‘중국에 있는 자녀들이 건강하게 잘 지내도록 돌보아주세요.’ ‘두만강에 묻고 온 딸이 하늘나라에서 평안하게 해 주세요’ 이런 구구절절한 사연에 눈시울이 뜨거워집니다.

‘한반도 북쪽에서 태어나야지’하고 생각하고 태어난 사람이 있을까요? 어느 누구도 태어날 곳을 지정해서 원하는 곳에 태어난 사람은 없습니다. 분단된 조국에서 태어났다는 이유로 가족 간에 전화도 자유롭게 할 수 없고, 만날 수도 없는 현실을 우리는 언제까지 받아들이고 살아야 하는 것일까요? 우리의 분단의 역사가 올해로 칠십 년이 되니 통일이 마치 문자에나 있는 아련한 단어로 분단된 현실에 익숙해져 있는 이들이 너무나 많은 것은 아닐까요? 새터민들과 함께하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분단된 상황에 대하여 답답하고 복잡한 마음들이 더해 갑니다.

▲ 탈북 의사를 소재로 한 드라마 "닥터 이방인"에서 주인공 박훈(이종석 분)이 브로커와 협상하는 장면.(사진 출처 = SBS 홈페이지)

부와 권력과 명예와 인기를 추구하고 거기에 인생의 성공과 행복을 거는 현대인들! 모든 것을 다 잃은 예수님의 십자가 아래에 무릎을 꿇고 오로지 자기의 안일과 성공을 위하여 몸에 성호를 긋는데 급급한 현대인들이라지만 이웃의 아픔에 시간을 내고, 희망버스와 기다림 버스를 타고 함께 밤을 새우며, 노란리본을 가슴에 품고 고통과 사랑을 나누는 이들이 존재하기에 세상은 평화와 기쁨을 조금씩 만들어가고 있다는 희망을 갖습니다.

얼마 전 만난 새터민여성은 브로커(탈북민들이 탈북할 때 대부분 브로커(중개인)에게 비용을 지불하고 안내를 받는다) 비용을 벌려고 새벽 1시까지 일하는 아들을 위해 밤 12시부터 음식을 해서 아들이 오자마자 뜨끈한 밥을 차려내는 것이 참으로 행복하고 기쁘다고 했습니다. 아들이 힘들어 할 때마다 힘들다 어렵다하면 더 힘이 들고 어려워지니 ‘나는 괜찮다. 힘이 난다’고 하라며 아들을 출근시킨다는 그분의 밝은 미소가 깊은 감동을 주었습니다. 북에 두고 온 가족을 생각하면 슬프다가도 지금 곁에 있는 가족을 보며 행복감과 위로를 느낀다는 이들!

간절함은 많은 것을 가능하게 한다고 했습니다. 가족과의 이별로 인해 이들이 갖는 그리움과 간절함은 남과 북의 정치적 이념을 넘어서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에 디딤돌을 놓고 소통을 가능하게 하는 원동력이 됩니다. 그 원동력은 통일의 마중물이 되어 소통의 꿈을 이루게 하리라 믿습니다.
 

 

이진영 수녀(체칠리아)
사랑의 씨튼수녀회 수녀
인천새터민지원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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