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여덟 살인 라트리 소렌은 날마다 아침이면 삽을 들고 들로 나가야 한다. 가족이 먹을 감자를 찾아서다. 몇 달 전까지만 해도 이 아이는 한 가톨릭 초등학교의 어엿한 1학년생이었다. 하지만 지난 1월에 학교가 갑작스레 문을 닫으면서 라트리를 비롯한 70여 명의 학생의 삶을 온통 뒤집어졌다. 이들 대부분은 소수 부족민이다.

올해는 라트리에게는 큰일이 많았다. 1월 초에는 어머니가 죽었는데, 아직도 병 이름을 모른다. 그리고는 라즈샤히 교구가 운영하는 성 시로 초등학교가 문을 닫았다. 이 학교는 5학년까지 수업료가 무료였다. 라트리는 이제 자기가 학교 교실 안을 다시 볼 수 있을지 자신이 없다. “우리 집은 가난하고 아빠는 나를 학교에 보낼 만큼 돈이 없어요.”

▲ 8살 라트리 소렌이 자신이 다녔던 학교를 걷고 있다. 이 학교는 지난 1월 갑자기 문을 닫았다.ⓒStephan Uttom

아버지인 핀투 소렌은 땅이 한 뼘도 없는 일용 노동자다. 헐어 빠진 대나무 울타리가 쳐진 집에 살며, 핀투는 한 달에 많이 벌면 3000타카(약 4만 원)를 번다. 이 지역은 가난한 소수 부족민이 사는 곳이라 라트리의 급우들도 그녀처럼 지금은 가족을 돕기 위해 무언가를 얻으려 돌아다닌다.

이 문제는 한 학교의 학생들에게 한정된 것이 아니다. 성 시로학교는 라즈샤히 교구가 운영하던 중 지난 12월과 1월에 갑작스레 문을 닫은 다섯 학교 가운데 하나일 뿐이다.

각 학교는 지난 30년간 운영돼 왔으며, 이곳 부족민 자녀들에게 절실한 기초교육을 해 줬다.

피터 비스와스는 네 자녀의 아버지인데, 최근에 폐쇄된 또 다른 한 학교에 두 아이가 다니고 있었다. 딸은 한 재봉학교에 겨우 등록할 수 있었다. 아들은 공립학교에 등록했지만, 비스와스에게는 그 학비를 댈 능력이 없다.

“아들은 학교에 가지 않아요. 이유는.... 교복이나 펜, 노트 같은 학용품을 사 줄 돈이 없어요.”

교구 관리들은 외국 원조가 없어져서라고 그 책임을 돌린다. (원조단체들이) 원조사업 계획을 제대로 잡지 못해서이거나 이곳 현지의 부족민들의 상황을 아주 오해해서일 것이라고 한다. 하지만 현재의 상황을 보면 방글라데시의 교육부문에서 가톨릭 공동체가 차지하고 있는 중요 역할을 수행하는 방식에 커다란 의문이 일어날 수 밖에 없다. 

“원조 의존증” 

거의 한 세기 동안, 이곳 라즈샤히, 그리고 이웃한 디나즈푸르교구에서 가톨릭교회는 꾸준히 성장해 왔다. 특히 로마에 본부가 있는 교황청 외방선교회 선교사들의 영향력이 컸다.

주민 대다수가 문맹인 현실을 이겨내기 위해, --- 선교사 파올로 치체리 신부는 라즈샤히 교구에 초등학교 8개를 만들었고, 자기 수도회와 이탈리아에 있는 친구들이 보내는 기부금으로 이 학교를 운영했다. 성 시로학교와 마찬가지로 다른 학교들도 모두 학비를 받지 않았다.

그는 또한 가진 토지가 없는 부족민들을 위해 주택 건축과 소득증대 사업도 벌였다. 그 결과 그는 부족민들 사이에 아주 유명해졌다.

하지만 치체리 신부가 2013년에 디나즈푸르 교구로 전임되면서 그가 세운 학교 대부분이 문을 닫기 시작했다. 겨우 1년 만에 다섯 학교가 문을 닫았는데, 라즈샤히 교구 관리들은 이 사태를 “자금조달(funding) 침체” 때문이라고 했다.

남은 세 학교 가운데 하나는 이곳의 한 민간단체가 넘겨받았고, 다른 두 학교도 곧 없어질 것이라고 한다.

교구 관리들은 치체리 신부가 선의로 일을 했다고 생각하지만, 일부에서는 그가 장래를 내다보지 않았다고 비판한다. 치체리 신부 후임으로 착한목자대성당 주임신부가 된 마르셀 톱노 신부는 치체리 신부가 수십 년이나 이들 학교를 운영하면서도 자립을 시도하지 않고 상황이 변덕스런 기부에 의존했다는 것이다.

톱노 신부는 부족민 출신이다. 그는 치체리 신부가 이곳 부족민 공동체에 봉사하는 일에 필요한 사항과 상황을 이해하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오랫동안 공짜로 얻어 왔기 때문에 이곳 주민들은 자신들이 남에게 기부하는 사고방식을 발전시키지 않았다. 이것이 이곳 교회의 가장 큰 문제다.”

치체리 신부만 그런 것이 아니다. 라스샤히 교구의 게르바스 로자리오 주교는 외국 선교사들은 대개 부족민들의 상황을 오해하고 오랫동안 잘못된 정책을 실행했다고 주장한다.

“치체리 신부같은 사제들은 조언을 해도 듣지 않고 사람들이 돈을 달라고 하면 주고는 그들이 자립하도록 만드는 데는 거의 힘을 쓰지 않았다.”

치체리 신부는 <아시아가톨릭뉴스>가 여러 차례 그의 휴대폰으로 연락했지만 전화를 받지 않았다. 그의 한 동료사제는 <아시아가톨릭뉴스>에 치체리 신부는 이 문제에 대해 언론과 얘기하고 싶은 생각이 없다고 말했다.

그러나 교황청 외방선교회 관구장인 프란코 코냐소 신부는 치체리 신부가 라즈샤히 교구에 끼친 공헌은 부인할 수 없는 것이라고 말했다.

“치체리 신부는 엄청 많이 도왔어요. 가난한 부족민들을 가르치고 성장시켰습니다. 이제는 부족민 출신의 의사, 기술자, 교양인들이 있어요. 그 학교들은 큰 쓸모가 있었고, 그러므로 한 번에 전부 문을 닫아서는 안 되었어요.”

라스샤히 교구가 아닌 다른 교구의 교회관리들은 치체리 신부가 떠난 뒤 학교들이 해산된 그 갑작스런 방식을 비판했다. 예를 들어 성 시로학교를 폐교하기로 한 결정은 지난해 12월에 발표됐고 겨우 한 달 뒤에 문을 닫아 버렸다는 것이다.

방글라데시 주교회의 가톨릭교육위원회 총무인 비조이 해럴드 로드리게스 수사는 “폐교는 해결책이 아니다. 그 학교가 아니면 학교에 갈 수 없는 아이들에게 해가 가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 대신에, 교회는 그 학교들을 계속 운영할 대안을 5-6가지 만들어서 지역 주민들과 협의해야 했다.”

달라지는 결과들 

방글라데시 인구는 약 1억 6000만 명인데, 거의가 이슬람인이고 그리스도교인은 0.5퍼센트도 되지 않지만 그 대다수는 가톨릭 신자로서 약 35만 명이다.

인구 숫자로는 아주 적지만, 가톨릭을 비롯한 그리스도교는 방글라데시의 교육부문에서는 큰 비중을 차지한다. 가톨릭교회는 종합대학 1개, 단과대학 8개에 초등, 고등학교 580개를 운영하고 있으며 학생 수는 10만 명이나 되는데, 대부분은 그리스도교인이 아니다.

가톨릭 교구는 모두 7개가 있는데, 이들 교구 안의 그리스도인들의 문자해독률은 80퍼센트 가량으로서 전국 평균인 65퍼센트보다 높다.

하지만 이러한 적극적인 교육정책의 열매는 평등하게 퍼지지 않는다. 심지어 가톨릭 신자들 사이에서도 그렇다. 익명을 요구한 한 교회관리에 따르면, 라즈샤히 교구나 디나즈푸르 교구처럼 부족민이 많은 교구에서는 문자해독률이 50퍼센트에 그친다. 이 관리는 이 두 교구의 부족민 대부분은 실제적으로 문맹이라고 했다.

부족민을 위해 활동하는 이들은 이런 불균형한 결과는 오랫동안 부족민 가톨릭 신자들이 무시당하고 차별받아온 결과라고 주장한다.

산탈족 출신인 제임스 키스쿠는 “라즈샤히 교구에는 교회 고등학교가 셋 있는데, 모두 (방글라데시의 주요 민족인) 벵골족 본당에 있다”고 지적했다. “부족민 대부분은 자녀를 멀리 유학 보낼 힘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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