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인식 목사의 해방신학 이야기]

남미의 해방신학은 ‘강한 성경적 색채’(a strong biblical coloring)를 띠고 있다. 보프의 말을 빌리면, “‘정치경제적’ 억압이라는 상황에서 그리스도교 신앙이 무엇을 뜻하는지 성찰하려는 것”이 바로 해방신학이다. 달리 말하면 인간에 대한 억압과 또한 그로부터 해방의 과정을 “성경 안에서 구체적으로 발견되는 신앙의 눈으로” 보려고 하는 것이 해방신학인데, 해방신학자들에게 ‘신앙의 눈’이란 언제나 ‘하느님의 말씀의 시각’ 즉 성경적 관점과 동의어였다. 이러한 점에서 해방신학에서 가장 중요했던 것은 가난한 사람이 가진 신앙의 눈으로 성경를 바라보는 것이었다. 그리고 이러한 형태의 성경 읽기는 다음과 같은 몇 가지 입장을 제안하였다.

첫째는 밑에서 바라보는 신학이고 둘째는 약자와 억압받는 자의 입장에서 성경 뒤집어 읽어 보기, 셋째는 교리의 예수를 극복하고 현장의 예수를 발견하는 성경 읽기,(사도 신조 예수➜ 역사적 예수) 그리고 넷째로 인문학적 성경 읽기, 특별히 사회학적인 성경 읽기였다.

브라질의 한 기초공동체에 속해 있는 사람들에게 가장 소중하게 여기고 좋아하는 성경 구절이 무엇인가를 물었다. 이들은 어떤 대답을 했을까? 한 사람은 그리스도교의 첫 공동체가 서로의 재산을 나누면서 살아감으로써 그들 사이에 가난한 사람이 없었다는 사실을 기록한 사도행전이라고 답하였다. 또 어떤 사람은 민중의 호소에 귀를 기울이고 해방시키는 하느님을 소개하는 탈출기라고 답하였다. 그외에 사람들은 예수가 회당에서 읽은 말씀을 언급하기도 하였고 또 어떤 사람들은 "가장 작은 이들에게 행한 것이 나에게 행한 것이다"라는 예수의 말씀이 기록되어 있는 마태오 복음 25장을 손꼽기도 했다. 이러한 답변들은 브라질 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라틴아메리카 대부분의 그리스도교인들 사이에서 들리는 답변이기도 하다. 이들은 어떻게 해서 이러한 성경 구절을 소중히 여기게 되었을까? 그것은 해방신학의 사제들과 했던 가난한 사람의 눈으로 성경 읽기를 통해서 이루어진 것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각자의 상황에서 성경 읽기

 가난한 사람의 눈으로 성경 읽기는 목사나 신부가 읽고 해석한 성경를 일방적으로 평신도들에게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모두가 함께 각자의 상황에서 읽는 것이다. 이 같은 성경 읽기는 전통적이고 획일적인 읽기와는 다르게 새로운 시각의 해석이 발생한다. 그리고 그것은 우리에게 성경의 의미 이해에 혁명적 변화를 가져온다.

제도권에 의해 주입되거나 혹은 교리라는 형식을 통해 우리에게 강요되기도 한 해석을 뛰어넘어 자신이 살고 있는 상황에서 읽거나 혹은 다른 사람의 입장에서 성경를 바로 보게 되면 지금까지 알고 있던 것과는 다른 해석과 의미를 발견하게 된다.

사마리아 여인은 부정한가

내가 실제로 경험했던 민중 성경 읽기의 예를 들어보겠다. 아르헨티나에서 살고 있을 때 나는 학교에서 실시하는 거리의 노숙인들과 함께 읽는 성경 읽기 프로그램에 참여한 적이 있다. 노숙자들과 점심을 함께 한 뒤 원하는 사람들과 성경 읽기를 하곤 했다. 당시 본문은 요한 복음 4장의 사마리아 여인의 이야기였다.

요한 복음 4장에 나오는 사마리아의 여인 일화는 여러 번 남편을 바꿔 여섯 번째 남편과 사는 부정한 여인이 예수를 구주로 영접해 정화된다는 것이 일반적인 읽기다. 그런데 함께 성경를 읽던 여자 노숙인은 “내가 바로 그 사마리아 여인”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그는 “나는 한번도 남편을 바꾼 적이 없다”며 “남자들이 나를 강간하고 가지고 놀다가는 아이가 생기면 도망가버리곤 했다”는 것이었다. 그는 “남자들은 그러고도 돈을 벌어오지 않는다고 나를 때렸지만, 나는 남자들이 버리고 간 아이들을 먹여 살리기 위해 안 해 본 일이 없다”고 했다. 그 여자노숙인의 주장대로라면 부정한 인간은 그가 아니라 그를 능욕하고 책임지지도 않은 여러 남자들인 셈이다. 

창조 이야기

이런 의미에서 해방신학에서 가난한 사람의 눈으로 바라보는 성경 읽기의 예를 몇 가지 더 들어 보겠다.

먼저 창세기의 창조 이야기를 가난한 사람들의 눈으로 읽어 보자. 라틴아메리카의 가난한 사람들은 창조 이야기에 나오는 각종 식물과 그리고 동물과 늘 한 공간에서 삶을 살아온 사람들이다. 그들이 살고 있는 집 주위에는 늘 씨앗을 품고 있는 식물들로 둘러싸여 있고 그들의 뜰에는 각종 짐승이 드나드는 환경에서 살아왔다. 그들에게 있어서 창조 이야기는 전혀 낯선 이야기가 아니다. 그것은 하느님과 인간의 관계가 이처럼 일상적이고 친밀한 관계임을 절실하게 보여 주는 이야기일 뿐이다.

창조 이야기는 그들의 일상적인 삶에서 날마다 발생하는 사건으로 받아들여졌다, 창조 이야기에서 중요한 것은 식물과 동물과의 친밀한 관계에서 나오는 삶의 풍요로움이다. 그들에게 창조 세계는 풍요의 세계이며 함께 사는 삶의 세계다. 소수의 사람들이 대다수의 부를 차지하고 있는 현실의 세계는 하느님의 창조세계와는 전혀 다른 세계일 뿐이다.

창조 이야기, 책임성의 이야기로 이해

창조 세계는 또 다른 의미에서 책임감의 세계이기도 하다. 라틴아메리카의 가난한 사람들은 자신들 삶의 현장 주변에 있는 식물과 동물을 결코 수단으로 생각하지 않았다. 그 모든 것은 그들의 삶의 일부였으며 삶 자체였다. 그러기에 자연을 함부로 대하지 않았고 공존하고 있었다. 그러기에 성경의 창조 이야기는 인간의 우월성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책임성을 말하고자 하는 것으로 이해되었다. 그러기에 그들에게 있어서 자연을 이용하여 이익을 늘리고자 하는 현 세계는 하느님의 세계가 아니었다.

창조 세계는 또 다른 의미에서 가난한 자들에게 그들의 존엄성과 권리에 대하여 상기시키는 기록이기도 하다. 모든 사람은 하느님의 형상으로 창조되었고 자연을 관리할 책임을 받는다. 라틴아메리카의 가난한 사람들은 창조 이야기를 통하여 그들의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을 발견한다, 얼마나 오랫동안 가난한 사람들은 인간의 역사에 의해 거부당했으며 불순한 집단, 존경받을 가치가 없는 게으른 집단으로 여겨져 왔던가. 그러한 취급을 받으면서 가난한 사람들은 스스로의 존엄성을 잃게 되었고 자포자기의 삶을 살기도 하였다. 그러나 성경의 창조이야기는 인간은 하느님의 형상으로 창조되었으며 그러기에 각각 존엄성을 가지고 있음을 보여 주었다.

창조 이야기를 보는 책임, 존엄, 평등의 관점

그뿐만 아니다. 하느님은 인간에게 자연을 관리할 책임을 주시고 그 열매로 먹고 살게 해 주셨음을 보게 된다. 생산의 열매를 누리는 것은 모든 사람에게 주어진 당연한 권리이다. 소수의 사람에게만 주어진 것이 아님을 보게 된다. 이에 따라 현실의 부의 편중과 빈부의 차이는 부당한 것이고 하느님의 창조의 세계에 반하는 것임을 보게 된다. 저임금에 시달리면서도 그것이 당연한 것이고 또 성공하기 위해 치러야만 하는 당연한 희생이라는 논리에 사로잡혀 있었던 사람들을 일깨우는 기록이었다. 생산의 열매에 대한 주장은 하느님이 인간에게 부여한 당연한 권리임을 본다. 이렇듯 가난한 사람들의 눈으로 성경를 읽으면 창조 이야기는 모든 사람이 함께 누리는 풍요로움의 세계, 하느님의 형상으로서의 가난한 사람들의 인간 존엄성이 인정되는 세계, 창조세계에 대한 관리의 책임성에 대한 이야기, 생산의 열매에 대한 정당한 권리의 이야기, 평등한 남녀의 아름다운 사랑에 관한 이야기이다.

▲ 창세기 이미지(이미지 출처 = pixabay.com)

이집트 탈출 이야기

의심의 여지없이 이집트 탈출 이야기는 해방신학에서 가장 중요한 성경의 기록으로 여겨진다. 이집트 탈출기는 여러 가지 의미로 읽히고 해석되지만 라틴아메리카의 가난한 사람들의 눈으로 보면 그 의미는 분명해진다. 그것은 자신의 백성을 해방시키기 위한 하느님의 관심과 염려 그리고 하느님의 사역이다.(탈출 3,7-8) 이집트 탈출기는 억압받는 백성들의 신음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내려와서 그들을 해방시키는 하느님에 대한 이야기다.

1973년 브라질의 동북부의 한 무리의 주교들이 당시의 군사독재 정권을 향하여 강한 비판의 목소리를 높였다. 당시 그들이 발표한 성명의 제목이 "나는 내 백성의 신음 소리를 들었다"였다. 해방신학의 이집트 탈출기 읽기는 이 기록에서 나타나는 기적 사건에 많은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다. 오히려 파라오의 억압적인 정권의 학정에 대하여 관심을 기울이고 또한 이런 과정에서 억압받는 이스라엘 민중 해방의 지도자 모세의 역동적 지도력에 관심을 기울인다. 즉 억압자와 억압받는 자의 사이에서 모세가 보여 주는 역동적인 지도력에 관심을 보이는 것이다.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의 배반과 흔들림 사이에서 여러 차례 어려움을 겪었다. 이런 경험은 라틴아메리카 해방지도자들에게는 전혀 낯선 것이 아니었다. 이집트 탈출기는 단순한 사건을 넘어서 라틴아메리카 해방의 과정에서 성경를 이해하기 위한 가장 중요한 해석의 도구가 되었고 오늘의 삶의 경험을 분석하는 데도 중요한 영향을 미치는 성경 읽기가 되었다.

 

홍인식 목사
파라과이 국립아순시온대학 경영학과 졸업. 장로회신학대학 신학대학원 졸업 M. DIV.
아르헨티나 연합신학대학에서 호세 미게스 보니노 박사 지도로 해방신학으로 신학박사 취득.
아르헨티나 연합신학대학 교수 역임. 쿠바 개신교신학대학 교수 역임.
현재 멕시코 장로교신학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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