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참사 1년, 교회는 희망이었는가?

세월호가 침몰한 지 1년이 지났다. 1년 전, 304명이 바다속으로 가라앉는 과정을 지켜본 시민들은 상주가 됐고, 온 나라는 상가가 됐다. 새로운 삶, 즐거운 수학여행, 일터를 찾아 세월호에 탔던 승객들은 돌아올 수 없는 몸이 됐고, 그들의 가족들은 졸지에 ‘유가족’, ‘세월호 가족’이 됐다.

세월호가 가라앉는 3일 동안, 국민들은 위험에서 구해 줄 국가가 없다는 것, 국민의 안전을 위한 모든 시스템이 작동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다. 정부의 일은 오롯이 민간의 영역이 됐다. 심지어 진실을 규명하는 일마저도.

‘세월호 가족’들은 고통 속에만 머물러있지 않았다. 다시는 이런 상처가 생겨서는 안된다며 ‘생명과 인간의 존엄을 위한 안전한 사회 건설’이라는 희망을 제시했다.

“한국 사회는 세월호 이전과 이후가 분명히 달라져야 한다”

돈과 이윤, 권력에 희생된 이들이 다시는 생기지 않도록 국가 체제와 사회 가치를 바꿔야 한다는 요구, 가치 체계와 구조를 바꿔야 하는 대상에는 예외가 없다. 지난 1년,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을 위해서 발걸음을 같이 했던 ‘종교’도 예외는 아니다.

“세월호 가족에게 종교는 희망인가?”

종교계에서 나오는 성찰의 목소리다. 종교인들이 비종교인들의 연대 활동보다 신뢰를 얻지 못하는 현실, 유가족들이 자신의 신앙에서 위로를 얻지 못하고 부정하기도 하는 상황이 반영된 것이다. 세월호참사는 종교 역시 ‘정치적 틀에 따라 편가르기 하는 또 하나의 작은 사회’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 종교가 희망이 아니라 절망과 좌절이 될 수 있다는 생생한 현실을 보여 줬다.

가톨릭 교회 역시 그랬다. 많은 이들이 ‘세월호참사를 끝까지 기억하고 함께 하겠다’고 다짐하며 연대의 길에 나섰다. 그러나 교회 내부로 들어가 보면, 세월호 유가족을 음해하거나 정치적 문제로 몰아가는 목소리가 있다.  하느님의 뜻을 살피며 갈라진 목소리를 봉합하고 일치하는 길은 안타깝게도 멀어 보인다.

기억은 그 사건의 본질을 아는 것으로부터 시작되며, 그래야만 함께 실천하고 동참할 수 있다. 특히 그리스도교는 예수의 삶과 고통, 죽음, 부활을 기억하며, 그 안에서 희망을 발견하고 살아가는 종교다. 그러나 부활을 앞둔 성주간 수요일에 발생한 세월호참사는 사순시기의 마지막, 여전히 유가족이 거리에서 진상규명을 외치다 연행당하는 현실 앞에서 지극한 고통에 머물러 있다.

그래서 묻는다. 세월호참사 앞에 가톨릭 신앙은 세월호 가족들에게, 신앙인들에게, 이 사회에 희망이었는가? 그리고 세월호 사건이 말하는 신앙의 길은 무엇인가.

이 물음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 유가족들을 만났다. 사랑하는 가족을 억울하게 잃은 이들에게 신앙은 어떤 의미였는가. 진실규명을 위한 험난한 여정에서 만난 하느님은 어떤 분이었는가, 세월호참사 속에서 만난 교회는 어떤 모습이었는가를 물었다. 그리고 그 답 속에서 세월호가 가르치는 신앙과 교회의 길을 찾아 봤다.

지난 4월 17일에 만나 시작된 이야기는 현우석 신부(의정부교구)가 묻고, 단원고 희생자 박성호(임마누엘) 군의 이모 정현숙 수녀(말가리타, 예수수도회)와 어머니 정혜숙(체칠리아) 씨가 답하는 것으로 진행됐다.

▲세월호참사 앞에 신앙은.... 박성호 군의 어머니 정혜숙 씨는 "세월호참사는 하느님이 증인인 사건이었다"고 말했다. ⓒ정현진 기자

“너희는 이 일의 증인이다”(루카 24,48)

“어릴 적부터 성당에 가는 것을 좋아했고, 직관적으로 믿는 사람이었어요. 결혼을 하면서 딸 둘, 아들 둘을 낳아 첫 딸과 아들을 봉헌하겠다고 생각하며 기도했죠. 그래서 어떤 면으로는 신앙을 강요하기도 했고 스승 노릇을 하며 아이들이 성인, 성녀처럼 자라기를 바라기도 했어요.”

정혜숙 씨는 그야말로 ‘열심한’ 신자였다. 아들 성호는 그렇게 신앙하는 엄마를 가장 존경한다고 생전에 고백했다. 아들 하나, 딸 하나를 영적, 육적으로 온전히 봉헌하기를 바랐던 엄마의 뜻을 받아, 큰 아들 성호는 사제 성소를 꿈꿨고, 마지막 피정에서 친구와 함께 “꼭 신부가 되자”고 약속했다.

그는 몇 년 전부터 예수의 십자가 수난을 유독 깊이 묵상하게 됐다고 했다. 아름다운 부활 이전에 극심한 고통과 아픔이 있다는 것을 생각하면서 신앙은 ‘무섭고 두려운 것’으로 다가왔다. 예수처럼 모함당하고 피흘리고 가시관을 써야 하는 아픔을 따르라는 것, 고통을 감내해야 부활할 수 있다는 신앙은 잔인했다.

그러면서도 부활의 희망과 기쁨만을 바라는 가운데 과연 부활이 올것인가라는 의문도 품었다. 그런 두려움과 의문을 극복하는 과정에서 신앙은 자랐다. 그리고 그 신앙이 세월호참사를 제대로 볼 수 있게 해 줬다.

“제발 구해달라는 간절하고 간절한 기도, 왜 구해주지 않았느냐는 울부짖음...그리고 깨달은 것은, 그분이 배 속에서 함께 고통 받고 죽었다는 것”

성삼일 미사 복사를 위해 수학여행을 포기하겠다던 성호가 탄 배가 침몰했다. 사고 직후, 팽목항으로 달려가는 길에 그는 아들이 자신에게 와서 마지막 인사를 하는 것을 느꼈지만,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었다. 누구한테도 말할 수 없는 아들 죽음에 대한 예감 뒤에, 정혜숙 씨는 하느님께 이렇게 따져 물었다.

“하느님, 우리 아이들이 성인, 성녀처럼 자라기를 바랐지만, 피의 순교는 제 몫이었고 마땅히 받겠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우리 아이들은 아니었어요. 오래 하느님을 따르는 백색 순교의 길을 가게 해 달라는 거였어요. 언제 내 아이를 이렇게 데려가라고 했나요?”

아이의 죽음을 직감적으로 받아들이고 그가 믿던 신에게 울부짖었다. “왜 내 아이를 십자가에 매달았습니까, 왜 그렇게 봉헌하게 했나요”. 지옥 같은 시간을 보내며 문득 그는 4월 13일 주일 미사에서 성호가 불렀던 ‘아버지 뜻대로’라는 노래를 떠올렸다. 성호는 그 어느 때보다 노래를 훌륭히 불러 모두의 칭찬을 받았었다.

“그런 과정에서 내 마음에 떠오른 것은.... ‘내 뜻이 아니라 하느님 뜻대로였다는 것’이었어요. 성경의 말씀이 한 자도 틀리지 않았다는 것.” 당시 기억을 떠올리며 고통에 잠시 말을 멈췄던 그는 이렇게 말했다.

팽목항에서 아이를 기다리면서 그리고 침몰 현장에서 목격한 모든 것. 유독 그날따라 잔잔한 바다를 두고 아무도 구조활동을 벌이지 않은 것, 유가족들이 감시를 당하고, 기자들에게 제발 진실을 알려 달라고 목놓아 청했음에도 거짓 기사가 나가는 그 모든 상황을 보면서 그는 아이를 데려간 십자가의 길과 예수의 고난, 시신마저 창에 찔린 사건이 하나도 다르지 않다는 것을 느꼈다. 사고 뒤, 아이의 장례를 치르기까지 일어난 변화였다.

“하느님은 인간을 통해서 일하고 자신의 빛을 드러내려고 하시는구나. 그러기에 예수님과 똑같이 무고하고 어린 내 자식을 십자가 위에 올려 놓으셨구나....”

정혜숙 씨는, 세월호참사는 '하느님이 증인으로 계신 사건'이라고 증언했다. 제발 세월호가 요나의 고래 뱃속이 되기를, 물에 빠진 베드로처럼 구해 주기를 바랐던 기도를 들어주지 않았지만, 정작 하느님은 세월호 속에서 아이들과 함께 고통을 겪고 죽었다고 믿었다. 사람을 통해 일하고자 했던 하느님은 아무것도 하지 않은 사람들 때문에, 아이들과 함께 죽은 것이 틀림없었다.

세월호로 주신 소명, 세상과의 관계 회복

“우리를 이 사건 한가운데 밀어 넣은 하느님에게 물었어요. 당신이 원하는게 무엇입니까. 왜 우리를 이렇게 고통스럽게 합니까. 평생 그렇게 눈물을 흘려 본 적이 없어요. 뺨이 아파 눈물을 참아야 할 만큼. 하지만 그 고통 속에서 하느님께 물을 때마다, 그분이 더 아파하며 울고 있다는 생각, 그분이 우리 아이들과 끝까지 함께 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어요.”(정현숙 수녀)

정현숙 수녀 역시 원망과 분노의 시간 속에서 자신과 똑같이 아파하고 울고 있는 하느님을 발견했다. 그리고 자신의 기도 안에 함께 있고 울어 주는 하느님을 통해 위로가 무엇인지 느꼈다.

그는 세월호 사건을 겪으면서 자신의 신앙이 피상적이었음을 알게 됐으며, 그동안 모르고 있던 삶의 영역을 보게 됐다고 고백했다. 또 세상의 악이 무엇인지도 명확해졌다. 그는 돈과 명예, 권력, 교만이라는 악에 세상이 뿌리 깊게 장악됐다는 것을 조카를 잃고 나서야 알게 됐다면서, “우리가 죄를 지었습니다라는 고백이 저절로 나왔다. 우리의 교만이 이런 세상을 만드는 죄를 지었다는 생각에 고통스러웠다”고 말했다.

이어 정 수녀는 우리에게 매일 주셨던 보석 같은 선물, 엄마가 아이에게 밥을 지어 먹이는 소중한 일상을 우리 스스로 깨트린 것이라면서, “나와 하느님, 세상의 관계가 삼위일체처럼 연결됐다는 것을 알았다. 나와 하느님 사이의 관계 뿐만 아니라 세상과 맺는 관계를 회복해야 하고, 그것은 바로 창조질서를 회복하는 일이며 우리의 소명”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 "아이들은 분명, 하느님 곁에 있을 거예요." 이들은 처음부터 끝까지 하느님이 이 사건과 함께 한다는 것을 믿는다고 했다. ⓒ정현진 기자

거룩한 변모, “일어나라. 그리고 두려워하지 마라.”(마태오 17,7)

“나는 나약한 사람이니까, 내 판단이 잘못 돼서 다른 가족들에게 도움이 되지 못할까봐 두려웠어요. 하지만 지난 1년간 실패와 좌절, 희망과 성공의 과정이 반복되면서 그런 두려움은 없어졌어요. 다만 하느님이 나를 통해 무언가 하길 것이라는 것을 믿어요.”

정혜숙 씨는 아이가 돌아오고 난 뒤에도 고통의 시간을 보냈지만, 그런 가운데서 성모님의 마음을 생각했다. 사랑하는 아들을 잃고 어떻게 그 길을 걸어가셨을까.... 그리고 함께 하는 부모들을 보면서 처음에는 두려워했지만 증거자로 세상에 떨쳐 나온 제자들의 모습을 본다.  이제 그는 사람을 통해 일하려는 성령의 힘을 믿으며, 성모 마리아와 제자들의 길로 나섰다. 그는 “여전히 영적인 싸움을 하고 있고, 실패와 좌절, 성공을 반복해서 겪고 있지만 그 안에서 성령의 힘을 느낀다. 이 사건이 나를 그렇게 이끌어 가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신앙이 없는 이들도 진실을 위해 변하고 있다면서, “예수님을 증거하기 위해 살았던 제자들처럼, 평생 증거하며 살아야 한다. 많은 어려움이 있겠지만, 그 가운데 내가 협조자로 살도록 하느님이 부르고 있다”고 말했다.

세월호참사 앞에 교회의 존재를 묻다
"교회, 인권과 생명을 위해 가장 앞에 서기를..."

“저 역시 종교인이지만, 우리 종교인들이 이 정도였나 실망했어요. 처음 사건이 일어났을 때, 정치의 영역이라고 생각했는데 그들이 모두 침묵했습니다. 그 다음, 이 문제에 대해 누가 나설 수 있을까 생각하니, 종교 밖에 없어요. 생명과 진실의 문제이기 때문이죠. 하지만 종교 지도자들도 함께 침묵했습니다.”(정현숙 수녀)

세월호 참사를 겪으며 가족들이 겪은 교회는 어떤 존재였을까.

정현숙 수녀는 교회가 그동안 가르쳐 온 생명과 인권, 진리의 일에 나서지 않는 것을 보면서, “생명력 없는 박제를 보는 것 같다”고 말했다. 처음부터 지금까지 마음과 시간을 보태는 이들로 인해 치유를 받고 있지만, 일선 본당이나 더 깊숙이 들어가서 경험하는 교회는 세월호를 '이미 지나간 일'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세월호참사로 인해 수도회, 종단, 단체 등 모든 경계가 허물어지고, 다만 ‘인간’의 영역을 다시 세우는 경험을 하게 됐다면서, “기존의 경계를 넘어 함께 희망을 만들고 생명을 살리는 일에 동참하는 이들이 진정한 종교인이며, 다시 인간성을 되찾는 일일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교황 프란치스코가 이야기한 ‘야전병원’은 응급처치가 필요한 현장이라면서, 현장이 있는 지역 교회의 참여를 요청했다. 정현숙 수녀는 “지역 교회의 경계는 사랑을 더 빨리 긴급하게 하기 위한 설정”이라면서, “그러나 사랑이 없는 행정적 경계는 아무 의미가 없다. 구역과 경계를 따지는 것은 보편교회의 모습이 아닐 것”이라고 일침했다.

정현숙 수녀는 “주님이 보여 준 사랑, 가르쳐 준 진리가 아니면 모두 거짓이다. 원천으로 돌아가는 것이 쇄신이라면, 이 사건으로 교회 역시 쇄신되어야 한다”면서, “위기는 기회다. 세월호의 고통을 통해 시대의 징표를 읽어야 한다. 길이 없다면 예언자적 역할로 다른 길을 내야 한다”고 말했다.

“더 많은 이들이 현장으로 나올 수 있도록 도와주세요. 살아있는 기도는 현장에서 하는 기도입니다. 현장에서 가장 필요한 기도는 목격한 사람들만이 할 수 있습니다. 그것이 아니면 피상적인 기도일 뿐이에요. 더 많은 이들이 현장에 나오고 공감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 달라고 교회에 호소합니다.”(정혜숙 씨)

정혜숙 씨는 열심히 연대하는 이들에게 감사하지만, ‘일치된 교회’라는 측면에서는 아쉬움이 많다면서, “아직은 종교의 모습이 많이 미약하다. 인권과 생명의 문제를 두고 교회가 맨 앞에 서야 한다고 믿는다”고 말했다.

그는 “현실과 생활이 중요하고 그것을 내려 놓는 것이 힘들다는 것도 알지만, 권리와 생명, 인권을 찾는 것이 중요하다면 현실을 내 놓고 나와야 한다”면서, “예수가 공생활에 나서고, 제자들이 일상을 버리고 예수를 따랐던 것처럼, 하느님이 이끄는대로 선택하고 살아야 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교회가 제도권에 갇혀 화석화된 신앙을 바꾸고자 한다면, 지금의 모든 것을 내려놓고 이야기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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