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모 레비, 이소영 옮김, “가라앉은 자와 구조된 자”, 돌베개, 2014

너무나도 강렬한 제목, “이것이 인간인가”라는 책을 통해 아우슈비츠에 대해 증언한 ‘프리모 레비’. “가라앉은 자와 구조된 자”는 그의 마지막 책으로 1986년 4월에 출판되었다. 그리고 그 이듬해 4월 그는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 프리모 레비는 유대계 이탈리아인으로 홀로코스트 생존자였고, 생환 뒤에는 결혼하여 가정을 이루었으며 본업인 화학자로, 니스 공장의 관리자로 일했다. 그리고 퇴근 후, 휴일과 휴가에는 작가로 글을 쓰며, ‘살아남은 자’로서 그 누구보다 성실하고 책임감 있는 삶을 살았다. 그러므로 평균 생존기간 3개월인 그 죽음의 수용소에서 11개월을 살아남은 그가, 그것도 자유의 몸이 된지 40년이 넘어 자살을 선택했다는 사실은 충격으로 다가올 수 밖에 없다. 어쩌면 그의 말대로 홀로코스트의 상처는 영원히 치유되지 않는 것일지도 모른다.

슬프게도 다시 한번 그 상처는 치유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확인하게 된다. 상처의 시간은 연장되며 복수의 여신 에리니에스는 ... 가해자만 괴롭히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일을 영구화하기 위해 피해자에게도 평화를 주지 않는다.(25쪽)

▲ 프리모 레비, 이소영 옮김, “가라앉은 자와 구조된 자”, 돌베개, 2014.
이 책은 서문과 결론을 제외하고 총 8개의 장으로 되어 있는데, 각각의 제목은 다음과 같다. ‘상처의 기억’, ‘회색지대’, ‘수치’, ‘소통하기’, ‘쓸데없는 폭력’, ‘아우슈비츠의 지식인’, ‘고정관념들’, ‘독일인의 편지’. 프리모 레비의 유서라고도 할 수 있는 이 책의 각 장들은 그가 40여 년간을 붙들고 씨름한 주제들일 것이다. 그러므로 이 책은 프리모 레비의 마지막 증언, 혹은 자신이 경험한 불가해한 세계를 이해하고자 필사적으로 몸부림쳤던 그의 사유의 고갱이들이다.

내가 가장 공들여 읽은 장은 ‘회색지대’와 ‘독일인의 편지’였다. ‘회색지대’는 그가 수감되었던 강제 수용소에서 폭력이 행사되는 메커니즘과 그것을 추동하는 심리를 분석한 것이다. 그리고 ‘독일인의 편지’는 가해자로서 “이것이 인간인가”를 읽은 독일인들의 반향을 소개하고, 그에 대한 저자의 생각을 정리한 것이다. 먼저 프리모 레비가 말한 회색지대란 여러 개의 경계로 이루어진, 그리하여 부러 모호하게 만들어진 지대를 뜻한다.

입소한 수용소에서 목격한 놀라운 광경은 그들에게 뜻밖의 충격을 던져 주었다. 자신이 내던져진 세계는 물론 끔찍한 것이었지만 또한 해독 불가능한 것이기도 했다. 그 세계는 그 어떤 모델에도 부합하지 않는 것이었고, 적은 주변에도 있었지만 내부에도 있었다. “우리”라는 말은 그 경계를 잃었고, 대립하는 자들이 두 편으로 나뉜 게 아니었다. 하나의 경계선이 아니라 여러 개의 복잡한 경계선들, 곧 우리들 각자의 사이에 하나씩 놓인 수많은 경계선들을 볼 수 있었다. (41쪽)

폭력은 바로 그 잘게 나눠진 경계 사이에서 증폭되고 강제가 아닌 자율을 얻는다. 그는 그것이 몇몇의 전문가들에 의해 설계된 것인지 경험을 통해 방법론적으로 도입된 것인지는 분명치 않지만, 의도된 것만은 분명하다고 말한다. 당시 수용소를 운영했던 독일군들은 포로들을 일반 포로와 특권층 포로 등, 여러 층의 위계를 두어 관리했다.

수용소의 현실에 맞닥뜨린 최초의 충격은 예견하지 못하고 이해할 수도 없었던 누군가의 공격이었는데, 관리자 포로라는 새롭고 이상한 적으로부터 시작됐다는 것이다. 이 관리자 포로는 손을 잡아주고, 안심시켜주고, 길을 가르쳐주는 대신 모르는 언어로 고래고래 소리 지르며 달려들어서는 얼굴에 주먹을 날렸다. 새로 들어온 사람을 길들이려 하고, 자신은 잃어버렸지만 상대는 아마도 아직 가슴 속에 간직하고 있을 존엄의 불씨를 꺼뜨리고자 했다. 그러나 만약 새로 들어온 사람이 자기 존엄을 지키고자 감히 반응을 보인다면 정말로 큰일 난다. 이는 일종의 불문율이자 철칙이다. (45쪽)

그는 “권력층은 그 폭이 좁으면 좁을수록 그만큼 외부의 조력자가 더 필요해진다.”(46쪽)는 사실을 간파해 낸다. 그리고 조력자들을 자신에게 묶어 두기 위해 자신과 같은 위치로 타락시킨다. 여기서 프리모 레비의 통찰은 꽤나 섬뜩하다.

“한 번 변절한 사람들(조력자들-인용자)이므로 또 다시 변절하지 말란 법은 없다. 이런 그들에게 지엽적인 임무를 맡겨두는 것으로는 충분치 않다. 그들을 묶어 두는 가장 좋은 방법은 범죄의 짐을 지게 하는 것이고 그들 손에 피를 묻히는 것이며 가능한 한 그들을 연루시키는 것이다. 그렇게 함으로써 그들은 진짜 주범들과 공범관계로 묶일 것이고, 더 이상 되돌아 갈 수 없게 된다.”(47쪽)

마지막 장 “독일인의 편지”에서 프리모 레비의 목소리는 예외적으로 강경해진다. 참고로 보통 프리모 레비를 ‘작가’로 소개하지만 나는 그에겐 작가보다는 ‘증언자’라는 호칭이 더 잘 어울릴 거라는 생각을 한다. 물론 그는 “지금이 아니면 언제”와 같은 장편소설을 썼고 “쉐마”와 “브레마의 선술집”이라는 시집을 내기도 했지만, 본질적으로 그의 글들은 하나의 회고이고 증언이다.

그는 자신의 고통스러운 경험과 기억들을 최대한 차분히 그리고 객관적인 자세를 유지하려 애쓰며 겨우겨우 써내려간다. 그는 자신은 철학자도 역사가도 아니라고 말한다. 그런 자의식 때문인지 그는 어떤 현상에 대해 분석하다가도 자신의 사고가 언제 멈춰야 할지를 고민하고 또 자신의 증언을 다른 생존자들의 그것과 수시로 체크하며 그 이상을 넘어가지 않으려 애쓴다. 그래서 그의 목소리는 쉽게 감정에 휘둘리지 않는다. 그 이유로 그의 증언이 신뢰를 얻지만, 그 때문에 슬픈 것도 사실이다. 어쩌면 그에게 글쓰기란 깨어진 자신의 영혼의 조각들을 이어 붙이는 일종의 복원의 과정이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그 조마조마한 작업에 읽는 이의 마음이 아프다.

그 범죄자에게 찬성표를 던진 것은 바로 나

그런데 이 장에서만큼은 분명히 자신의 분노를 전달한다. 프리모 레비는 1961년 자신의 책 “이것이 인간인가”의 독일어판을 출간했다. 그 반향으로 그는 수십 통의 편지를 받는데, 그 가운데는 1962년 독일 함부르크의 T.H 박사 부부가 보내온 편지도 있었다. 남편인 T.H는 당시 독일 국민이 ‘아무런 의미도 없이 튀어 나온 악마’이자 “범죄자이자 배신자”인 히틀러에 속았다고 말하면서 “저는 아무런 변명도, 해명도 할 수 없습니다. 배신당하고 탈선을 한 내 가엾은 국민들 어깨 위에 놓인 죄는 무거운 짐이 되고 있습니다. 당신에게 주어진 삶과 저 또한 알고 있는 당신의 아름다운 나라의 평화를 즐거이 누리시기 바랍니다”라는 정중한 인사를 건넸다. 그리고 그의 부인은 ‘독일 국민이 악마의 포로(히틀러-인용자)가 되었음을 너무 늦게 깨달았다.’고 고백하며 그 결과 “자신의 목숨을 구하기 위해 침묵하고 위험에 빠진 형제를 버리는 사람들의 거대한 무리가 남게 됩니다”라고 덧붙였다(215-218쪽).

이 부부의 편지에 프리모 레비는 격한 어조로 다음과 같이 회신했다고 말한다.

나는 그 어떤 교회도 악마를 따르는 자에게는 관용을 베풀지 않고, 악마에게 자기 잘못을 돌리는 것을 인정하지 않는다고 썼다. 잘못과 실수에는 본인이 응답해야 하며 그렇지 않으면 문명의 모든 흔적이, 실제로 (히틀러의-인용자) 제3제국에서 그러했듯이, 지구상에서 사라질 것이라고 썼다.... 엄청난 재앙을 가져온 이 남자는 배신자가 아니었다. 극도로 명확한 생각들을 가진, 일관성 있는 광적인 사람이었다. 그는 그 생각들을 바꾸지 않았고 결코 숨기지도 않았다. 그에게 찬성표를 던진 사람들은 당연히 그의 생각들에 찬성표를 던진 것이다.

일본의 정치사상가 마루야마 마사오(丸山眞男)는 20세기 전반 동아시아 전체를 파시즘과 전쟁의 광풍으로 몰아간 일본이 전후 그 과오에 대해 누구도 책임지지 않고, 그것을 천황제라는 근대 일본의 정치 시스템 안에서 형해화하는 기만에 대해 ‘무책임의 체계’라는 말로 비판했다. 프리모 레비 역시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이 저지른 범죄에 대해 그 모든 것을 히틀러와 그의 제3제국에 돌리고 그 치하의 평범한 독일인들은 아무런 죄가 없었다고, 혹은 그것은 우리도 어찌할 수 없는 일이었다고 말하는 모든 이들에게 “그렇지 않다”고 말한다. 고통이 한 인간의 몸과 인격, 그 하나하나에 개별적으로 가해진 것이라면, 어쩌면 그에 대한 단죄는 추상적인 것이 아니라, 구체적인 지점을 찾아 다시 하나하나 카인의 표식을 찍어 주어야 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나는 이 글을 세월호참사 1주기를 하루 앞둔 날 쓰고 있다. 프리모 레비는 자신의 글쓰기가 ‘이해하기’와 ‘용서하기’를 위한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 물론 그는 어느 인터뷰에서 “이해하는 것이 용서하는 것은 아니다.”라고 분명히 말했다. 이해한다는 것. 그에게 그토록 이해가 중요했던 것은 아마 홀로코스트라는 상상할 수 없는, 그래서 존재할 수도 없었던, 하지만 존재했던 불가해한 비극. 거기서 살아남은 자신과 이후 자신에게 주어진 삶을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 결정하는, 절체절명의 존재론적 문제였기 때문일 것이다.

600만 명에 이르는 유대인이 학살된 홀로코스트와 세월호참사를 비교하는 게 온당하지 않을 수 있지만, 세월호참사는 내가 경험한 우리 사회의 홀로코스트다. 300명이 넘는 사람들이 그것도 어린 학생들이 배에 갇혀 가라앉고 있는데, 실질적으로 우리는 그중 한 명도 구하지 못했다. 상상하기도 싫지만 어쩌면 구하지 않은 것인지도 모른다. 그날 그 배 안에, 그 바다에 내가 없었으니 그건 아직 쉽게 말할 게 아니다. 하지만 내가 정말 이해할 수 없는 건, 이후 우리가 보여 준 이상한 행동들이다.

우리가 한 이상한 행동

35만 년 전 네안데르탈인이 이 지구에 처음 출현한 이래 인류는 사람이 죽으면 그 시신을 땅에 묻었다. 그 뒤로 우리는 죽음을 슬퍼하고 남겨진 자들을 위로하는 문화적 전통을 이어왔다. 세월호참사는 내가 이 유구한 전통이 처음으로 깨진 현장을 목격한 사건이다. 우린 충분히 슬퍼할 시간도 갖지 못한 채, 지겹다는 말을 들어야 했으며 애도의 상징으로 노란 리본을 달면 뭇사람들이 보내는 이상한 시선을 느껴야만 했다. 지난 일 년간 거의 대부분 우리에게 노란 리본은 상장(喪章)인 동시에 다윗의 별이었다. 그리고 “진실은 침몰하지 않는다”는 표어를 내건 상점이 있으면 장사가 안 된다는 이유로 주변의 공개적인 항의를 들어야만 했다.

그리고 자식들을 잃은 부모들에게 가해진 잔인함은 형언하기 힘든 것이었다. 다 해어진 자식의 시신을 묻고 돌아온 그들은 곧바로 차디찬 거리로 내몰렸으며, 거기서도 자식 팔아 팔자 고치려 한다는 능멸을 당해야만 했다. 그리고 그중 어떤 이는 살려 달라며 유력 정치인 앞에 무릎을 꿇었고 또 몇몇은 목숨을 건 단식을 해야만 했다. 그 단식 앞에 이 땅의 어떤 젊은이들은 폭식으로 그들을 조롱했다. 그리고 지금 자식을 잃은 그들은 머리를 깎고 다시 또 수십 수백 킬로미터를 걸은 고행의 순례를 하고 있다. 도대체 이것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이것이 과연 인간인가?

프리모 레비는 ‘카포’(Kapos) 즉 수용소 안에서 간수들을 대신해 포로들의 대장 역할을 하는, 선택받은 몇몇의 포로들을 관찰하여, 남들보다 더 ‘좌절한 사람’ 그리고 ‘억압받는 사람’ 중 권력을 원했던 이들이 주로 카포가 되었다고 말한다. 그렇게 보면 어쩌면 죽음을 조롱하고 애도를 불편해 하는 이들은 그 누구보다 세월호참사를 보며 좌절하고 겁에 질린 사람들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그들은 죽은 이들과 유가족들에게 폭력을 가함으로써 자신은 그들과는 다르다는, 자신은 결코 그들처럼 될 수 없다는 심리적 위안 혹은 거리감을 얻고 싶은 건지도 모른다. 그들의 행동을 추호도 변호해 줄 생각은 없다. 하지만 그들의 지독한 불안과 공포만큼은 알 거 같기도 하다. 왜 아니겠는가? 이 야만의 세월에.

먼 훗날 우린 우리가 했던 그 모든 행동들을 돌이켜 보며 부끄러워할 것이다. 지독한 수치심을 느끼며 모멸감에 몸을 떨 것이다. 반드시 그래야만 한다. 그때 우리는 결코 이렇게 변명해서는 안 된다. ‘다 무능하고 부도덕한 정권 때문이었다.’ ‘우리를 속인 부패한 언론 때문이었다.’ ‘그때 우리가 달리 어쩔 수 있었겠는가?’ 이 시대의 권력은 프리모 레비의 말처럼 우리의 배신자가 아니다. 극도로 명확한 메시지를 일관성 있게 매일 같이 우리에게 전달하고 있다. 그들은 결코 자신들의 생각을 바꾸지 않았고 숨기지도 않고 있다. 그들에게 찬성표를 던진 사람들, 그리고 침묵으로 동조하고 있는 사람들 모두 그들과 한편인 것이다.

가라앉은 자와 구조된 자. 지금 우리는 가라앉은 자인가, 구조된 자인가? 우리는 지금 어디에 있는가.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너희 자신의 구원을 이루라.”(필리 2,12) 바오로 사도가 필리피 교회의 성도들에게 전한 말이다. 세월호가 잠겨있다. 진실도 잠겨 있다. 자식을 잃은 부모들이 거리에서 울부짖고 있다. 그리고 신은 우리에게 “네 아우는 어디 있느냐?” 묻고 있다.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이제 우리 스스로를 구원해야 할 때다.

 

고윤수(토마스) 대전시립박물관 학예연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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