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명기 신부] 4월 19일(부활 제3주일 ) 루카 24,35-48

1년 전 우리 국민 모두는 눈앞에서 자본과 이윤의 논리로 무장된 탐욕으로 발생한 세월호참사를 목격해야만 했습니다. 수학여행을 가던 단원고 2학년 학생들 250명이 꽃다운 나이에 피지도 못하고 희생당한 것은 하늘이 무너지는 아픔이었습니다. 봄볕의 따사로움을 안고 여행을 떠나 금요일에 돌아와야 할 이 아이들은 차가운 바닷속으로 영영 떠나고 말았습니다.

2014년 4월 15일 화요일 밤 9시 476명을 태우고 인천에서 출발한 세월호는 다음 날인 4월 16일 오전 8시 52분경 맹골수도에서 항로를 변경하던 중 배가 기울어 침몰하기 시작했고 11시 18분 선수의 일부분만 남기고 침몰되었습니다. 배의 내부를 가장 잘 알고 있는 선장과 선원들은 퇴선 명령이나 퇴선 조치를 전혀 하지 않은 채, 승객들에게 ‘가만히 있으라’ 는 방송만 했을 뿐입니다.

9시 35분 출동한 해경은 기울어진 배의 선수로 접근해 조타실에 모여 있던 선원들만 구조했습니다. 배가 기울기 시작하고 1시간 20분이라는 시간이 지난 10시 17분까지 ‘가만히 있으라’ 는 선내 방송을 따랐던 승객의 대부분은 사망하거나 아직도 실종되어 있는 참사가 발생하였습니다.(사건 개요는 ‘416세월호 민변의 기록’에서 발췌했습니다) 희생자들의 부모와 가족들은 진실 규명과 책임자 처벌, 재발 방지를 위한 특별법 제정을 위해 국민들과 연대하여 국회, 광화문, 청운동 등지에서 노숙을 하며 1년의 세월을 모르쇠로 일관하고 있는 정권을 상대로 싸워 왔습니다.

700만 국민의 동참으로 어렵게 특별법이 제정되었지만, 행정부는 특별법을 무력화하는 시행령을 만들었습니다. 이 정부가 세월호참사의 진상을 철저하게 규명하고, 재발 방지를 위한 올바른 대책을 세워 희생자들과 가족들에게 진정성 있는 위로를 하고 보상을 할 의지가 있는지 의심스러운 상황입니다. 그렇게 세월호참사 뒤로 1년의 시간이 흘렀고, 여전히 세월호는 9명의 실종자들과 함께 맹골수도의 바다에 가라앉아 있습니다.

▲ 성 베네딕도회 왜관수도원의 사제가 선착장 끝에서 하염없이 바다를 바라보고 있다.ⓒ배선영 기자

증인은 기억하는 사람이다.

우리는 머리와 몸이 기억하는 대로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어디에서 태어나서 무엇을 보고 자랐으며, 성장과정에서 어떤 기준으로 기억하느냐에 따라서 삶이 형성됩니다. 즉, 각자의 삶이 어떤 과정을 겪었는가에 따라서 기억하는 내용도 달라지는 것입니다. 흔히 말하는 이념적 좌우는 자신의 기억이 어느 삶의 자리에서 무엇으로 채워지며 성장했는지를 극명하게 보여 주는 예입니다. 그러므로 교회가 가난한 이들에 대해 우선적 선택을 해야 하는 것은 교회의 자리가 어디이며, 성령의 이끄심 속에서 무엇을 기억하며 살아야 하는지 알려주는 표지이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교 신앙은 본질적으로 기억을 토대로 합니다. 예수님은 수난 당하시기 전 제자들과의 마지막 식사에서 당신을 기억하여 이를 행하라고 성체성사를 세우시고 십자가에 달려 죽으셨습니다. 부활하여 제자들에게 나타나신 예수님은 다음과 같이 말씀하십니다. “그리스도는 고난을 겪고 사흘 만에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다시 살아나야 한다.... 너희는 이 일의 증인이다.”(루카 24,46-48) 당신의 삶과 죽음과 부활에 관한 증인으로서 우리를 세우셨습니다.

예수의 증인이 된다는 것은 그분이 선포한 기쁜 소식을 기억하고 그분의 삶과 고난과 죽음을 기억하겠다는 것입니다. 증인으로 서 있다는 것은 예수의 부활을 믿고 기억하며 그 부활의 삶을 살아가겠다고 다짐하는 것입니다. 증인으로서 말한다는 것은 죽음으로 멈춘 시간을 다시 흐르게 하고 정지된 생명을 다시 이어주는 부활의 희망을 기억하겠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증인은 죽음에서 생명을, 절망에서 희망을, 눈물에서 위로를, 고난의 자리에 함께하며 불의에서 의로움을 이루시는 하느님의 정의를 기억하는 사람입니다. 악과 죽음을 이긴 하느님의 승리와 희망을 기억하는 증인은 시대의 불의와 부조리에 굴복하지 않습니다.

하느님의 정의가 반드시 승리할 것이라는 굳은 믿음을 가지고 예수 부활의 메시지를 증언하기 때문입니다. 죽음의 상황, 악의 구렁텅이에서 선이 이길 것임을 희망하며 살아가는 것이 부활하신 예수님이 우리를 증인으로 선택하신 이유입니다.

우리는 1년 전 국가의 총제척인 무능과 부실, 신자유주의의 탐욕으로 침몰한 세월호참사를 기억합니다. 나아가 1년 동안 정권이 보여준 안일하고 구태의연한 모습은 국가권력에 대한 불신으로 새겨지고 말았습니다. 염원하던 진실을 여전히 바다에 수장시킨 채 우리는 제2, 제3의 참사를 염려하며 불안 속에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게다가 다수의 사람들은 그만하면 되었으니 잊으라고 비난하며 아파 눈물 흘리는 희생자 가족들을 고통으로 몰아가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암흑 같은 절망의 상황 속에서 가족들의 슬픔을 위로하고 연대하며, 진실을 규명하고 재발방지를 위해 함께한 것은 죽음과 악을 이기신 예수 부활을 기억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망각을 강요하는 이들에게 기억하는 것은 신앙의 토대라고 강하게 항변해야 합니다. 예수님은 오늘 어두운 불의에서 하느님의 의로우심에 대한 증인으로 우리를 택하셨습니다. 증인으로 선택된 우리는 기억하는 사람입니다.

“기억합시다! 기도합시다! 행동합시다!”

▲ 2014년 11월 6일 진도 팽목항에서 광주대교구 사제단과 신자들이 미사가 끝나고 방파제까지 세월호 실종자들이 가족의 품에 돌아오고 진상규명이 이뤄지길 기도하며 침묵기도 행진을 했다.ⓒ배선영 기자

 

 
 

 박명기 신부(다미아노)
 의정부교구 청소년 사목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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