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보다 진실 규명이 필요하다.

천주교계는  4.16세월호참사 특별법 시행령안이 특별조사위의 독립성을 해치고 있다고 철회를 요구하고 보상금을 앞세우는 정부의 태도를 비판했다.

특별조사위를 비롯해 참여연대 등 시민단체들이 시행령안 폐기를 요구하고 있는 가운데 <가톨릭뉴스 지금여기>는 이 사안에 대해 각 교구 정의평화위원회 등의 의견을 물었다.

우선 서울대교구 유경촌 보좌주교는 “도와줄 마음만 있으면 얼마든지 잘 될 텐데, 아마도 도와줄 마음이 없는 게 아닐까”라며 정부의 태도에 답답해 했다. 유 주교는 서울대교구 사회사목 담당 교구장대리를 맡고 있다.

대전교구 정평위원장 박상병 신부는 정부의 시행령안에 대해 “진실을 규명하려는 의지가 보이지 않는다”라고 했다. 그는 정부가 입법예고를 해 놓고, 돈으로 배상하는 것을 내세운다며 “돈만 부각되고 돈으로 시작된 문제가 돈으로 마무리 되는 못된 시행령안”이라고 덧붙였다.

박 신부는 지난해 주교회의 정평위에서 낸 세월호참사 관련 입장문에서 “치유는 진실에서 시작한다”는 말이 기억에 남는다며 이 시행령안은 진실을 밝히는 도구가 아니라 적당히 덮고 말려는 조치라고 비판했다. 그는 이어 지금이 성주간임을 상기하고 “부활이 2000년 동안 이어져 온 것은 예수님의 삶을 기억하고 살아낸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라며 “또 다른 십자가를 매달고 싶지 않다면 기억하고 함께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 정부의 시행령안 폐기를 요구하는 기자회견이 열린 3월 30일, 광화문 광장에 세월호 인양을 촉구하는 세월호천막이 세워져 있다.ⓒ배선영 기자

지난해 7월 14일 주교회의 정의평화위원회는 “세월호 참사 국정조사 파행과 특별법 제정에 대한 정의평화위원회의 입장”에서 참사의 진실 규명을 위해 성역 없는 조사가 가능한 법안을 마련해야 하며 조사위원회에는 반드시 조사권과 기소권을 비롯한 사법권한과 함께 독립성과 공정성이 확보되어야 한다고 밝혔다.

청주교구 정평위원장 김훈일 신부는 정부와 특조위의 안이 다른 핵심은 “조사의 주체인 것 같다”면서 정부의 안은 정부가 다 주도하려는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그는 이대로 간다면 불신과 갈등만 유발하게 된다며 공정성과 객관성을 담보할 수 있는 민간 전문가가 좀 더 참여하는 기구가 돼야 한다고 했다.

수원교구 정평위원장 최재철 신부는 답답함에 말을 잇지 못하며 큰 한숨을 쉬었다. 그는 정부의 시행령안과 이를 해석한 것을 봤는데, 주요 직책이 정부 공무원으로 이뤄져 있고, 조사 대상이 정부의 조사 결과를 검증하는 정도라면서 “그걸 어떻게 받아들일 수 있겠냐”고 되물었다.

부산교구 정평위원장 이동화 신부도 정부의 시행령안에 대해 “진상규명을 방해하고 돈으로 처리하고 싶어하는 것 같다”고 비판했다. 이어 “성주간을 보내면서 가난하고 약한 사람들과 연대하지 않고 어떻게 부활을 맞이하겠냐”면서 “시행령안 폐기에 같이 마음이 모아 주는 것이 연대”라고 말했다. 이 신부는 프란치스코 교황이 지난해 한국에 방문했을 때 세월호 배지를 계속 달고 다녔던 것과 한국 주교단이 교황청에 갔을 때 가장 먼저 세월호참사가 어떻게 됐는지 물은 것은 연대를 보여 준 것이라며, 연대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의정부교구 정평위원장 김인석 신부도 “(시행령안에 대해) 말할 필요도 없이 잘못된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유가족들의 진실을 알리고자하는 노력은 사회 전체를 변화시키려는 값진 투신이라며 감사하고 존경한다고 말했다.

▲ 광화문 광장 세월호 천막 옆에 추모 국화가 놓여 있다.ⓒ배선영 기자
정의구현사제단 대표 김인국 신부는 “사람이 할 짓이 아니다”라고 딱 잘라 말했다. 그는 “세월호참사는 돈 제일주의로 일어난 일”이라며 “정부는 돈이면 다 된다는 황금만능정신으로 진실을 숨기고 참사를 마무리하려고 하는데, 이는 그 자체로 또 다른 참사를 부르는 짓”이라고 비판했다. 이어 돈으로 자식 잃은 부모의 눈물을 닦아줄 수는 없다고 강조했다.

지난 3월 27일에 해양수산부는 ‘4.16세월호참사 진상규명 및 안전사회 건설 등을 위한 특별법 시행령 제정안’을 입법예고했다. 이 안은 특조위가 제안한 안과 달리 인력 규모를 120명에서 90명으로 줄이고, 해수부가 파견하는 기획조정실장에게 위원회 업무를 종합, 조정하는 권한을 줬다. 또한 조사 대상을 원인 규명이 아니라 정부조사 결과 또는 자료에 한정시켜 진상규명의 범위를 제한했다.

이에 2일 특조위는 정부의 시행령안의 철회 요구 결의안을 투표에 부쳤고, 결과 재적 위원 14명 중 10명이 찬성해 가결됐다. 새누리당 추천인 조대환 부위원장 등 4명은 반대했다. 같은 날 세월호참사 유가족 52명은 광화문과 팽목항에서 정부 시행령안 폐기와 배상, 보상 절차 중단을 요구하며 삭발을 했다.

한편, 오늘 오후 2시 특조위 이석태 위원장은 천주교 서울대교구 염수정 추기경과 만나 시행령의 문제점을 설명하고 특조위가 정상적인 활동을 할 수 있도록 천주교에서 지원하고 관심을 가져 달라고 당부했다. 이 자리에 함께 한 특조위 위원 이호중 교수(서강대학교 법학대학원)는 <가톨릭뉴스 지금여기>에 염 추기경이 시행령에 대해서 직접적인 언급은 하지는 않았으나,  "피해자들이 제대로 치유되고 회복되기 위해서 진실규명이 중요하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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