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명기 신부] 4월 5일(예수 부활 대축일 ) 요한 20,1-9

“알렐루야~~ 알렐루야~~주님께서 부활하셨습니다!”

우리는 부활의 기쁨을 나누기 위해 환한 미소를 머금고 알렐루야~ 알렐루야~를 외치며 인사를 나눕니다. 그러나 2000년 전 그날의 새벽은 그다지 기쁘거나 영광스럽지 않았습니다. 안식일 다음날 예수의 무덤을 찾은 마리아 막달레나는 무덤 입구를 막아 놓은 돌이 치워져 있고 무덤은 비어 있음에 놀라 ‘누가 주님을 무덤에서 꺼내 갔습니다. 어디에 모셨는지 모르겠습니다.’ 라고 제자들에게 알립니다. 시몬 베드로와 다른 제자는 황망한 마음으로 한걸음에 달려가 예수의 시신이 눕혀져 있던 빈 무덤을 확인합니다. 여인의 말처럼 아마포와 얼굴을 쌌던 수건만 남겨진 채 무덤 안은 비어 있었고, 주님을 어디에 모셨는지 모르는 상황입니다. 이것이 예수부활에 대한 첫 번째 증언입니다. 그렇습니다. 무덤은 텅 비어 있었고 그저 그분을 모셨던 흔적만 남아 있을 뿐입니다. 그 상황에서 예수님이 다시 살아나셨을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요? 여인과 제자들의 믿음이 약한 것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때문에 우리는 부활을 이렇게 선포합니다. “무덤이 비었다!”

부활은 비움에서 시작된다

▲ 무덤, 알렉세이 사브라소프.(1870)
경이롭게도 부활은 비움에서 시작됩니다. 부활은 가득 채워짐에서 시작되는 것이 아니라 텅 빈 무덤에서 시작되는 것입니다. 복음에서 전해 주는 것처럼 예수님을 모셨던 무덤은 비어 있었습니다. 누가 그 안에 있던 주님을 가져갔는지 아무도 알 수 없습니다.

예수는 자신의 죽음과 함께 세상의 온갖 죄악과 불의, 거짓과 불신, 부정과 패악을 돌무덤에 묻었습니다. 그리고 탐욕과 이기, 독선과 아집, 신자유주의의 흉물스러운 논리로 꾸며진 우상들이 가득 차 있던 무덤은 이제 비어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부활을 통하여 온갖 더러움으로 가득 찬 세상과 마음을 비워 주셨습니다.

우리가 만나는 부활은 비어 있는 무덤과 마음에서 시작됩니다. 그리고 우리 삶의 빈 곳을 조금씩 조금씩 채워 나가는 것이 바로 부활을 사는 삶입니다. 가득 채워진 것에서 무엇인가를 내어 놓는 것이 부활의 삶이라고 생각한다면 부활은 또 다른 삶의 짐이 될 뿐입니다.

빈 곳을 무엇으로 채울 것인지 고민하며 살아가는 신앙인의 삶이 부활하신 예수를 증거 하는 삶입니다. 그 빈자리를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자비와 진리, 자유와 정의, 존엄과 평화로 채워야 하는 것이 부활을 체험하고 믿는 이들의 삶이 되어야 합니다.

예수의 첫 제자들은 빈 무덤이 된 자신들의 삶을 복음 선포의 새 삶으로 채웠고 예전과는 다른 변화된 삶을 살아감으로써 예수의 자리를 채웠던 것입니다. 예수가 있던 자리는 비어 있으니 그 빈자리를 예수의 삶으로 채우는 것이 부활을 사는 것입니다. 때문에 부활은 관념이나 명제가 아니라 삶과 존재의 방식입니다. 머리로 이해할 수 없으며 지식으로 습득할 수 없는 이유는 몸으로 느껴야 하는 삶의 영역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교리가 아니라 삶이어야 합니다.

▲ 2014년 1월 경기도 평택시 심리치유센터 와락에서 사제, 수도자가 쌍용자동차 해고자들과 김밥을 만들고 있다.ⓒ지금여기 자료사진

비어 있는 우리와 이웃

일 년 전 봄볕 가득한 어느 날, 우리네 가슴은 아이들을 하늘나라로 보내면서 텅 비어 버렸습니다. 언제 그만두라는 통보를 받을지 몰라 노심초사 마음 졸이며 일해야 하는 비정규직이라는 사실만으로도, 함께 땀 흘리던 노동의 현장에서 무 자르듯 잘려 나간 해고 노동자란 이름만으로도 우리와 이웃의 삶은 비어 버렸습니다. 또, 국책사업과 도시 재개발이란 미명으로 숱한 이들이 삶의 터전을 비워야만 했습니다.

그 비어 버린 생명을 가지고 일 년을, 오 년을, 십 년을 살아온 이들이 있습니다. 생명보다 이윤이 우선되는 권력과 사회에서 내몰리면서 가진 모든 것을 빼앗겼고, 삶과 마음은 이미 비워졌습니다. 권력의 압제와 자본의 논리로 삶의 자리를 비워야 했던 그들은 이미 부활을, 삶을 시작하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묵상해 봅니다. 빈 삶을 채우기 위한 투쟁의 길을 걸으며 받은 온갖 괄시와 모욕, 천대와 비난을 받으며 점점 더 비워야만 했던 그들은 강도를 만난 우리의 이웃입니다. 빈자리에 정의를 세우고, 진실을 밝히며 존엄과 자유로 채워 나가기 위해 싸우고 있는 그들의 삶이 빈 무덤을 채우는 부활의 삶임을 묵상해 봅니다.

그들과 연대하기 위하여 자신의 여린 어깨를 내어 주며 사순을 지냈던 착한 사마리아사람들의 삶이 부활에 동참하는 삶이 아니었을까 묵상해 봅니다. 더 가지고 채우기 위해서 안간힘 쓰며 살았던 신앙인들에게 빈 무덤은 부활의 질문을 던집니다.

“그분을 어디에 모셨습니까?”

 

 
 

 박명기 신부(다미아노)
 의정부교구 청소년 사목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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