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레시다 문헌 - 85]

5.5 교회 일치를 위한 대화와 종교 간 대화

5.5.1 온 세상이 믿도록 하기 위한 교회 일치의 대화

 
227. 친교의 교회론에 대한 이해와 실천은 우리를 교회 일치를 위한 대화로 이끕니다. 다른 교회와 교회 공동체들의 세례 받은 형제, 자매들과의 관계는 제자와 선교사로서 포기할 수 없는 길로서(요한 바오로 2세, 회칙 ‘하나 되게 하소서’(Ut Unum Sint), 1995.5.25, 3항 참조) 일치의 부재는 하나의 추문이요 죄악이며 그리스도의 바람을 실현해 나아가는 데 있어서 하나의 좌절이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모두 하나가 되게 해 주십시오. 아버지, 아버지께서 제 안에 계시고 제가 아버지 안에 있듯이, 그들도 우리 안에 있게 해 주십시오. 그리하여 아버지께서 저를 보내셨다는 것을 세상이 믿게 하십시오.”(요한 17,21)

228. 교회 일치를 위한 노력의 정당성은 단지 사회적 측면만 아니라 그것이 복음적이고 삼위일체적이며 세례적이라는 데에 있습니다. 교회 일치를 위한 노력은 “세례에 의해 새로 태어난 이들” 사이에 이미 존재하는 “불완전하나마 실제적인 친교를 표현”하며 형제애에 대한 구체적 증언입니다.(‘하나 되게 하소서’, 96항) 교도권은 교회 일치를 위한 노력이 갖는 삼위일체적이고 세례적인 특징을 강조합니다. 그러한 특징을 갖는 대화는 회개와 화해의 길을 따라 영적이고 실제적인 태도로 나타납니다. 오직 그렇게 할 때에만 “그리스도를 믿는 모든 이와 함께 거룩한 성찬례를 거행할 때”(‘사랑의 성사’(Sacramentum Caritatis), 56항)가 도래할 것입니다. 우리 공동체 안에서 세례 때 헌신하기로 한 그 의미를 되살릴 때 친교를 향한 길은 열매를 맺을 수 있습니다.

229. 교부들이 신앙을 설명하며 펼쳤던 그 참된 호교론을 우리는 반드시 회복해야 합니다. 호교론 그 자체가 부정적이어야 하거나 단순히 방어적일 필요는 없습니다. 오히려 “사랑으로 진리를 말한다”(에페 4,15)고 하신 바오로 성인의 말씀처럼 참된 호교론은 결국 우리의 마음과 가슴 속에 있는 것들을 명료하고 설득력 있게 말하는 능력을 수반합니다. 오늘날 그 어느 때보다 그리스도의 제자와 선교사들은 모든 이들이 그분 안에서 생명을 누릴 수 있도록 쇄신된 호교론을 갖출 필요가 있습니다.

230. 때때로 우리는 일치가 성령의 은총임을 잊을 때가 있고 다음과 같은 지향으로 기도를 많이 올리지 않습니다.

이러한 마음의 회개와 거룩한 생활은 그리스도인들의 일치를 위한 사적, 공적 기도와 더불어 모든 일치 운동의 혼으로 여겨야 하며, 마땅히 영적 일치 운동이라 할 수 있다.(제2차 바티칸공의회, ‘일치의 재건’(Unitatis Redintegratio), 8항) 
 

번역 : 배우휘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편집자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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