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직한 신부] 3월 29일(주님 수난 성지 주일 ) 마르 14,1-15,47

제가 사는 이야기를 조금 들려 드릴까 합니다. 저는 동료사제들과 음악밴드를 만들어 각 본당을 돌며 ‘이야기 음악회’ 형식의 공연을 하고 있습니다.

저희 제주교구 사제 밴드 "더로드"의 이름에는 "The Lord" 주님, "The Road" 그 길; "주님께서 가신 길을 저희도 따라 가겠다"는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저희에게는 두 가지 지향이 있습니다. 첫째로 어린이, 청소년들이 저희들의 모습을 보면서 사제, 수도자 성소를 키워 나갔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둘째는 전 세대 신자들과 함께 성가로 하느님을 찬미하고 다양한 장르의 노래를 부르며 축제의 시간을 갖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짧은 강연을 하며 강론시간에 다루지 못했던 주제를 신자들과 나눕니다.

신학생 시절, 지금의 드럼을 맡고 있는 신부님이 "우리 신부가 되면 사제 밴드 결성하자"고 제안하였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왜 밴드를 만들자고 했는지 기억이 나지 않지만 신부들이 같이 모여서 뭔가를 한다는 것이 좋아서 동의했습니다. 결성 뒤 2년 동안 교구 행사뿐만 아니라 요청을 하는 여러 곳에서 기꺼운 마음으로 찬조공연을 하고, 청년들을 대상으로 ‘이야기 음악회’ 정기공연도 하였습니다. 그러다가 갑자기 멤버 중 두 신부가 유학과 선교를 떠나면서 저희들의 시간은 멈췄습니다.

거의 해체 위기에서 1년 정도 시간이 지난 뒤 다시 시작해 보자는 얘기가 나오면서 무엇보다 사제 밴드의 정체성에 대해서 고민을 했습니다. 그 당시만 해도 누군가는 함께 모이는 것이 좋아서, 누군가는 청소년 밴드 활성화의 목적을 가지고, 누군가는 인문학 강의와 함께하는 작은 음악회를 꿈꾸며 하고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다시 시작하기 위해서는 강한 동기가 필요했습니다.

▲ '이야기 음악회'에서 사제 밴드 "더로드"의 사제들이 노래와 연주를 하고 있다.(사진 제공 = 우직한)

결국 성소가 부족한 시외 본당을 다니면서 우리들의 모습을 보며 성소를 키워 나갔으면 하는 바람과 전 세대가 함께 모여 음악과 이야기를 통한 축제의 장을 만들자고 뜻을 모았습니다.

작년에 저희는 7개 본당을 순회하며 이야기 음악회를 열었고 올해도 7개 본당에 방문할 계획이 있습니다.

자랑을 조금 하자면 각 본당에 갈 때마다 신자분들이 성당을 가득 채워 주시고 공연이 끝나면 마치 피정을 한 것처럼 너무 은혜로웠고 행복했다는 소감을 전해 주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저희들은 더욱 보람을 느끼고 신바람이 납니다.

오늘 주님 수난 성지주일을 맞아 예수님의 수난 말씀을 저희들의 모습에 비추어 보았습니다.

“아빠! 아버지! 아버지께서는 무엇이든 하실 수 있으시니, 이 잔을 저에게서 거두어 주십시오. 그러나 제가 원하는 것을 하지 마시고 아버지께서 원하시는 것을 하십시오.”(마르 14, 36)

예수님께서 아버지의 뜻을 이루기 위해서 자신의 목숨을 내 놓으신 것처럼 저희들에게도 공동의 지향을 위해서 때론 양보와 배려가 요구됩니다. 같이 연습을 하다가 서로 템포가 맞지 않거나 음악적인 의견이 다르면 자존심이 강한 신부들끼리 티격태격합니다. 어떤 때는 서로 기분이 나빠서 연습을 중단하기도 합니다. 공연 곡을 선정할 때도 스타일이 각자 다르기 때문에 자신이 추천한 곡을 해야 될 당위성에 대해서 끝까지 얘기합니다. 결국은 다수의 의견에 따라 결정하지만 내심 아쉬운 마음을 감추지 못합니다. 이렇게 10인 10색이고 자존심과 주장이 강한 신부들끼리 함께 해나가기 위해서는 자신을 죽이는 때가 필요합니다.

우리 삶 안에서 공동체가 의견을 조율해야 할 때, 서로 합심하여 일을 해야 할 때 공동의 뜻을 위해서 더 나아가 하느님의 뜻을 위해서 자신의 뜻을 비울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합니다. 아버지의 뜻을 이루기 위해서 자신을 비우시고 끝까지 순종하신 예수님을 닮아갈 것을 다짐하며 그 은혜를 청해 봅니다.
 

 

 

우직한 신부
(안젤로)

 제주교구 정난주 본당 주임. 사제밴드 "더로드" 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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