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정부교구 800여 명, 팽목항 찾아 미사와 순례 진행

3월 21일 의정부교구 각 지역에서 21대의 버스가 팽목항을 향해 출발했다.

세월호 참사 339일째인 이날, 의정부교구 정의평화위원회가 마련한 ‘세월호 기억 미사’에 참석하기 위해 새벽 버스에 몸을 실은 이들은 신자와 수도자, 사제 800여 명이었다.

꼬박 6시간을 달려 도착한 팽목항은 조용했다. 이미 지난해 11월 세월호 유가족과 실종자 가족을 지원하기 위한 모든 시설이 철수한 뒤 팽목항에 남아 있는 것은 입구에 마련된 실종자 가족 숙소 9동과 분향소 그리고 천막 성당뿐이었다.

미사에 앞서 도착한 신자들은 먼저 분향소를 들러 헌화했다. 대부분 팽목항에 처음 왔다는 이들, 차마 안산 분향소에 들를 엄두를 내지 못했다는 이들은 컨테이너 박스 하나 크기의 분향소 한쪽 벽을 가득 채운 희생자들의 영정에 할 말을 잊고 눈물을 흘렸다.

이날 미사는 광주대교구 가톨릭사회복지회 최기원 신부, 팽목항 천막성당 주임 최민석 신부를 비롯해 의정부교구 사제 15명이 공동 집전했다.

▲ 3월 21일 오후 2시 팽목항에서 의정부교구 신자와 수도자, 사제 800여 명이 '세월호를 기억하는 미사'를 봉헌했다. ⓒ정현진 기자

“당신들의 거짓, 불의, 음모를 명백하게 밝힐 것이라 준엄하게 선언하고자 여기 왔습니다”

“당신께서 세례를 주신 이호진 프란치스코 형제는 딸 아름이와 함께 여전히 밝혀지지 않은 사건의 진실을 밝히고자 진도 팽목항에서 삼보일배를 하면서 서울로 올라오고 있습니다. 팽목항에는 정부의 지원이 끊긴 상태에서 실종자 가족이 가족의 시신이라도 찾아 달라고 울부짖고 있습니다. 유가족들은 쓰러질 것 같은 몸과 마음을 추슬러 여전히 쉼 없이 나라 곳곳을 돌아다니면서 세월호를 잊지 말아 달라고 호소하며 철저한 진상 규명을 촉구하고 있습니다. 광화문 세월호 천막은 혹독한 겨울을 견뎌 냈습니다.”

강론을 맡은 상지종 신부(의정부교구 송산 성당)는 교황 프란치스코가 최근 바티칸을 찾은 한국 주교단에게 한 첫 질문 “세월호 문제는 어떻게 됐습니까”에 이렇게 답했다.

상지종 신부는 미사 참례자들에게 “벗들의 피눈물을 닦아 주는 참사람이 되고자, 벗들의 울부짖음을 듣고, 쓰러진 벗들을 일으켜 주고, 무관심과 조소, 냉대 속에 사는 벗들을 살리기 위해, 우리가 ‘하느님 모습을 닮은 존엄한 사람’임을 스스로 드러내기 위해 이곳에 모인 것”이라고 팽목항에 모인 이유를 상기시켰다.

이어 상 신부는 “이제 곧 팽목을 떠나 각자 삶의 자리로 돌아가 보고, 듣고, 느낀 모든 것을 마음에 담고, 무관심에 맞선 연대, 죽임에 맞선 살림의 자리, 빼앗긴 이와 함께 하는 잔치로 만들기 위해 나갈 것”이라면서, “세월호의 십자가와 함께 침몰한 우리 사회, 국민은 세월호의 부활과 함께 거듭날 수 있다. 더욱 힘차게 열정적으로 세월호의 부활, 우리 모두의 부활 여정에 함께 해 달라”고 당부했다.

미사 주례를 맡은 김인석 신부(의정부교구 정평위원장)는 이 자리에 와서 미사를 봉헌하는 것은 세월호로 희생된 이들 모두가 신자이기 때문이 아니라, 우리가 세상 속에서 살아가는 ‘그리스도인’이기 때문이라면서 “그리스도인들은 기억하는 사람들이며, 그 기억을 통해서 하느님의 뜻, 진실과 정의의 열매인 평화를 맛보는 여정의 사람들”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김인석 신부는 세월호 배지와 팔찌, 묵주를 찬 손을 들어보이라며, “오늘 하루의 행사를 위한 것이 아니다. 세월호 팔찌를 찬 손을 부끄러워하지 말고 더 많은 이들에게 4.16을 기억하고 있음을 보여 달라. 직접 목소리를 낼 수 없는 이들을 대신해서 목소리를 내는 것이 지상에 살아가는 그리스도인의 사명”이라고 당부했다.

▲ 미사에 참석한 실종자 가족, 단원고 2학년 1반 조은화 학생의 아버지 조남석 씨는 "이곳에 오는 것도 고통스럽고 그래서 마음을 접고 싶지만, 도저히 그럴 수가 없다"면서, 세월호 인양과 진실규명을 위해 함께 외쳐 달라고 호소했다.ⓒ정현진 기자

“남윤철, 조은화, 허다윤, 박영인, 양승진, 고창석, 이영숙, 권재근, 권혁규”

이날 미사에서 신자들은 세월호 침몰 지역인 ‘동거차도’를 향해 앉아, 여전히 바다 속에 갇혀 있는 9명의 실종자 이름을 부르며 기억했다.

미사에 참석한 광주대교구 최기원 신부(광주가톨릭사회복지법인)는 여전히 부활의 기쁨을 마음껏 드러낼 수 없는 상황을 안타까워했다. 최 신부는 지난해 부활, 기쁨으로 부활을 선포할 수 없었던 아픈 기억을 되새기면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신앙은 희망할 수 없는 자리에서 희망한다는 것이며, 십자가의 자리가 바로 부활의 자리라는 우리 신앙의 근간을 잊지 말아야 한다”며, “세월호는 가장 어두운 곳에 있지만 우리의 부활 또한 가장 어두운 그 자리에서 이뤄졌으니, 세월호의 자리를 부활의 자리가 되도록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우리는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요? 1년이 다 되도록 50미터 아래 바다에 9명이 수장되어 있습니다. 잊고 싶고 이곳에 오지 않고 싶지만 끈을 놓을 수가 없습니다. 진실을 알리기 위해 전국을 다니고, 인양을 해 달라고 부탁하며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습니다. 어서 빨리 인양을 해 달라고 함께 정부에 요청해 주십시오.”

미사에는 세월호 실종자 가족과 유가족도 함께 참여했다. 미사에 참석한 단원고 2학년 1반 조은화 학생의 아버지 조남석 씨는 수색이 끝난 뒤 4개월이 지나도록 인양을 위해 정부 관계자 누구도 나서지 않는 현실을 지적하면서, “이것이 대한민국의 현실이며, 부모된 우리의 막중한 책임이다. 우리 모두가 같은 국민으로, 제대로 인양해 줄 것을 함께 촉구해 달라”고 호소했다.

또 유가족으로 팽목항 분향소를 지키고 있는 유가족 2학년 4반 김웅기 군(재준 이냐시오)의 어머니 윤옥희 씨도 실종자 가족과 유가족들이 9명의 실종자들이 돌아올 수 있도록 호소하며 이 자리를 지키고 있지만 그 힘이 너무 미약하다면서, “함께 해 주는 이들이 없었다면 지난 1년도 없었을 것이다. 앞으로도 온전한 인양을 위해 실종자들이 돌아올 수 있도록 함께 외쳐 달라”고 요청했다.

참석자들은 미사를 마치고도 미처 하지 못한 분향을 하는 등 한동안 자리를 뜨지 못했다. 분향을 마치고 나오던 한경심 씨(비비안나, 운정성당)는 “오늘 처음 팽목항을 오게 됐는데, 아이들의 사진을 보는 순간 너무 안타깝고, 어른으로서 미안했다”면서, “세월호 참사를 보면서 그동안 우리가 얼마나 불의를 지나치며 살았는지 알게 됐다. 앞으로는 우리 자신이 먼저 불의의 상황에 발벗고 나서 바로잡도록 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또 백 소화데레사 씨(주엽동성당)은 다른 이들의 울음을 듣지 못하고 무관심한 세태에 대해 “너무 많은 죄를 짓고 있다”고 안타까워했다. 그는 “현장에 와서야 비로소 고통과 비극을 느끼는 우리 자신이 얼마나 나약하고 무디고 부족한 존재인가 깨달았다”면서, “우리가 신앙인이라며, 성전에만 머물 것이 아니라 기도하며 밖으로 나가 행동해야 한다. 기도하며 함께 울 수 있을 때 힘이 모아지고 불의와 맞설 힘이 생길 것”이라며, 앞으로 서울 광화문이라도 열심히 나가 볼 생각이라고 말했다.

김연승 씨(엠마누엘, 백석동성당)는 “늘 마음의 짐을 안고 있었는데, 와서 보니 아직 아무 것도 해결되지 않은 우리 현실을 보며 더 무거운 짐을 짊어지고 가는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동시대인으로서, 어른으로서 미안한 마음이 너무 크다면서, “해결된 것이 없는데도 빨리 잊자는 말들, 정치적 이념을 들이대는 모습, 무관심한 시민들의 모습이 한국 사회의 자화상임을 많이 느끼고 있다”며, “올해도 슬프고 답답한 부활을 보내게 될 것 같다”고 씁쓸해 했다.

현재 팽목항에 남아 있는 실종자 가족은 3가족이며, 유가족들 일부가 실종자 가족과 함께 팽목항 분향소를 지키고 있다. 약 1년의 시간이 지난 현재 가족들은 심적, 신체적 고통은 물론 생활고 까지 겪고 있으며, 농사 일용직까지 나서고 있는 실정이다. 의정부교구 정평위는 이날 미사 봉헌금 650만여 원을 최민석 신부를 통해 세월호 실종자 가족에게 전달했다.

한편 의정부교구는 오는 4월 1일 오후 7시 의정부교구 주교좌성당에서 이기헌 주교 주례로 세월호 1주기 미사를 봉헌한다.

ⓒ정현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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