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 가난 증명하라는 자체부터가 비교육적"

경남의 무상급식 폐지에 대해 천주교를 비롯한 교육, 시민단체들의 비판이 거세다.

경남도의회가 ‘서민자녀 교육지원 사업’ 관련 조례안을 통과시킴에 따라 홍준표 도지사가 주도한 경남지역 무상급식 폐지가 확정됐다. 이에 따라 경남에서는 저소득층 자녀를 제외한 모든 초등학교와 특수학교, 읍, 면 지역 모든 중, 고등학교 학생들은 4월 1일부터 급식비를 내게 됐다.

경상남도의 무상급식 폐지는 2011년 전면적 무상급식이 시행된 뒤, 전국적으로 처음이다. 

이번 경남도 무상급식 폐지를 겪고 있는 경남도 내 교회, 교사, 학부모는 큰 걱정이다. 이들은 이번 조례안 통과는 도지사의 개인적 욕심에 따른 일방적 행정이며, “급식도 교육”이라는 국민적 합의, 아이들의 인권을 무시한 처사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마산교구 박철현 신부, “도지사는 도민들의 삶을 위한 정치를 해야... 본질 간과했다”
전희영 전교조 수석부지부장, “서민자녀 지원사업은 또 다른 세금 낭비”
학부모단체 문현숙 사무총장, “급식도 교육이라는 국민적 합의 되돌린 처사”

경남도가 실질적으로 무상급식을 폐지한 것에 대해 관할 교구인 마산교구 박철현 신부(사회복지국장)은 “말이 안되는 일”이라고 일축했다.

박 신부는 20일, <가톨릭뉴스 지금여기>와의 전화통화에서 이번 조례안 통과는 첫 시작부터 절차상의 문제가 있었다고 지적하면서, “가장 중요한 것은 당사자인 아이들인데, 그들의 의사와 상관없이 이뤄진, 일방적 행정이다. 이런 일은 도지사 한 사람의 신념 문제가 결코 아니”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모든 사람이 하느님의 모상으로 지어졌다는 신앙적 관점에서도 한 사람, 한 사람의 존엄을 지키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면서, “단 한 아이라도 밥을 먹지 못한다면 그를 위해 급식을 해야 하는 것이 당연한 것”이라고 말했다.

또 아이들의 인권, 존엄을 생각한다면, 정책적으로 보편 복지나 선별 복지라는 말을 들이대는 것조차 부적절하다면서, “도지사는 도민들의 삶을 살펴야 하고 그것을 위한 것이 정책이고 정치다. 하지만 이번 경우는 본질을 철저히 간과한 것”이라고 비판했다.

▲ 경상남도는 3월 19일 전국 최초로 무상급식을 폐기했다. (사진 출처 = http://blog.naver.com/kanggoddess)
전국교직원노조 경남지부 전희영 수석부지부장은 홍준표 도지사는 2011년부터 어렵게 이뤄 낸 무상급식에 대한 사회적 합의를 무시한 것이라면서, 이번 경남도의 무상급식 폐지가 다른 지역에도 영향을 미치는 방아쇠 역할을 하지 않을까 우려했다.

전 지부장은 무엇보다 “가난한 아이들을 가려 내야 하고, 그 과정에서 아이들에게 스스로의 가난을 증명하도록 해야 한다”고 안타까워하면서, “해당 학부모와 학생은 물론 일선에서 일을 진행해야 하는 교사들에게도 상처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또 전 지부장은 조례안에 포함된 서민자녀 지원사업을 검토한 결과, 이미 각 학교에서 진행되고 있는 사업과 상당히 비슷하다며, “교사를 비롯한 교육 관계자들과 논의 없이 사업을 진행함으로써 도민들의 세금을 낭비하는 셈”이라고 지적했다.

교육희망경남학부모회 문현숙 사무총장은 이번 조례안 통과에 대해 “그야말로 비교육적 처사”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문 사무총장은 경남지역 학부모들이 “급식도 교육”이라는 의식을 거꾸로 되돌린 것에 분노하고 있다면서, 아이들에게 “얼마나 가난한지 입증하면 지원해 주겠다”는 태도는 아이들과 학부모들에게 인간적인 모멸감과 상처를 주는 것이며 그 자체로 비교육적“이라고 지적했다.

앞으로 ‘경상남도 서민자녀 교육지원에 관한 조례안’이 시행되려면 경남지역 나머지 시군 지자체에서 별도의 조례안을 만들어야 한다. 경남지역 학부모 모임과 전교조 등은 조례안 통과를 막기 위한 지자체 압박은 물론 조례안 시행 금지를 위한 가처분 신청 등의 법적 대처를 논의 중이다.

전희영 수석지부장은 이후 다른 지역에서도 무상급식 폐기가 이뤄지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는 근본적으로 ‘학교급식법’을 바꿔, 지자체장에 따라 정책이 휘둘리는 일을 막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현행 학교급식법 8조에 따르면 급식비를 보호자가 내는 것을 원칙으로 하며, 다만 지자체에서 지원할 수도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문현숙 사무총장은 현재 경남지역 학부모 SNS모임이 꾸려졌고, 하루 평균 500여 명이 가입하고 있다면서, “조례가 통과됐지만 학부모들은 손 놓고 있을 수 없다는 입장이다. 지난 19일 학부모대회에 이어 별도의 대응 단체를 조직해 법적, 정치적 대응을 할 것”이라고 밝혔다.

▲ 무상급식 폐지에 대한 경남교육청 입장.(사진 출처 = 경남교육청 홈페이지)

경남도의회는 3월 19일 ‘경상남도 서민자녀 교육지원에 관한 조례안’을 의원 55명 중 44명 찬성으로 통과시켰다.

이 조례안에 따라 경남도는 올해 무상급식 지원예산 642억 5000만원을 서민자녀 교육지원을 위한 바우처사업(418억원), 맞춤형 교육(159억원), 교육여건 개선(66억원) 등에 쓴다는 계획이다. 그동안 경남 지역 무상급식 대상은 초, 중, 고, 특수학교 모든 학생 28만여 명이었지만, 4월 1일부터는 저소득층 자녀 6만 6000여 명만 무상급식을 받을 수 있다.

앞으로 저소득층 자녀들이 무상급식 혜택을 받기 위해서는 각 읍, 면, 동사무소에 서류를 제출하고 급식지원자 대상임을 확인받아야 한다. 제출 서류는 서민자녀 교육지원사업 신청서, 개인정보 수집, 이용 및 제3자 제공 동의서, 개인정보 이용 및 제공 사전 동의서, 금융정보 제공 동의서, 소득과 재산 신고서, 고용, 임금확인서, 건강보험료 납부 증명서, 지방세 세목별 과세 증명서, 예금잔액 증명서 등 9개에 이른다. 이와 별도로 일용근로자, 상시근로자, 자영업자, 임대사업자 등은 각각의 소득증명원을 제출해야 하며, 연금소득증명서, 무료임대확인서, 휴업이나 폐업 확인서, 임대차 계약서, 차량보험가입증명서, 부채증명원 등도 내야 한다.

이번 경남도 무상급식 폐지에 대해 경남교육청을 비롯한 교육계는 반대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먼저 전국시도교육감협의회는 각 지역별 입장차를 인정하면서도, 무상급식 폐지로 각 학교에서 혼란이 벌어질 수 있다는 것에는 모두 걱정했다. 또 경남교육청은 “학교급식 지원이 중단되어서는 안 된다”는 입장을 확인하고, “무상급식은 공짜가 아니며, 단순한 밥 한끼가 아닌 교육적 의미가 더욱 깊은 일”이라고 밝혔다.

또 홍준표 지사가 2012년 보궐선거와 취임연설을 통해 “무상급식 지원은 국민합의에 의한 사항으로 지켜져야 한다”고 발언한 것을 들면서, “무상급식 폐지는 도민과의 합의를 거치지 않은 일방적인 약속 폐기”라고 지적했다.

이어 예산부족이라는 이유에 대해서도 2015년 기준 경남도 예산이 18조가 넘는 상황에서 재정파탄을 이유로 무상급식을 하지 못한다는 것은 말이 안되는 것이라며, “경남도의 무상급식 폐지는 국민적, 사회적 합의를 통해 시행되는 학교급식의 근간을 흔들 것”이라고 우려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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