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땅물벗]

 

이상한 밥집

지난 주 목5동 성당 환경 교육을 마치고 돌아오다가 서교동에 있는 ‘문턱 없는 밥집’에 들렸습니다. 생존권 투쟁이 테러가 되고 일제고사를 거부했다고 해직당하는 요즘 세상 모습을 보며 우리 사회가 강자들만의 사회가 되었음을 참 많이 느낍니다. 사회적 강자인 정부와 검찰, 경찰과 기업들은 그들만의 국익을 이유로 약자와 소수자들의 인내와 희생을 강요하고 있는 요즘, 이 밥집은 참 이상한 밥집입니다.

돈이 없어도 유기농산물 재료로 만든 밥을 먹을 수 있고, 내가 가진 게 부족하면 천 원 한 장 달랑 내고 가도 누구도 이야기하지 않는 이상한 밥집입니다. 이 밥집에서 한 사람 만났습니다. 2007년 5월부터 밥집 돌보는 일을 맡고 있는 심재훈(프란치스코)씨입니다. 뜬금 없이 밥집이 궁금해 찾아왔다는 저를 보고 심재훈씨는 ‘웰빙’ 이야기부터 꺼냅니다. ‘웰빙’이라는 말에는 잘사는 사람들의 관점이 담겨있다고. 그렇습니다. 한 끼 끼니를 걱정하는 사람들에게 ‘웰빙’은 그야말로 먼 나라 이야기일 것입니다. ‘문턱 없는 밥집’이 시작된 이유는 여기에 있었습니다. 웰빙적 접근이 아니라 건강한 먹을거리는 누구나, 특히 가난하고 노동으로 힘든 일을 하는 사람들도 쉽게 먹어야 한다는 생각이었습니다.

밥값통
매일 점심이면 100여명의 사람들이 밥집을 찾습니다. 그 가운데 30~40명은 천 원 이상의 돈을 내기 어려운 사람들입니다. 특히 요즘은 청년 실업자들이 많이 온다고 합니다. 또 취로 사업하는 분들, 저소득층 아이들에게 지급하는 무료 식권을 들고 오는 분들도 있습니다. 나머지는 주변의 직장인들이 옵니다. 한번은 멀쩡해 보이는 청년이 돈을 내지 못해 사정을 들어보니, 지하 단칸방 월세를 30만원에 살았는데 몇 달 고향에 다녀온 사이 월세가 50만원으로 올라 쫓겨난 사연이 있었습니다. 얼마 지나 그 청년은 고시원 총무로 지내며 월급 30만원을 받게 되었다고 다시 밥집을 찾아 거금 5천원을 내고 밥을 먹고 갔습니다. 처음에는 식당에 실업자나 노숙자들의 자존감을 지켜주기 위해 밥값 천원을 붙여놓았습니다. 무료 식사에 길들여진 이들의 자존감을 지켜주기 위한 배려였는데 지금은 이마저도 없어졌습니다.

‘꼬다리 전’과 ‘나머지 조림’

‘문턱 없는 밥집’은 친환경적으로 생산하고 만들고 먹는 밥집입니다. 먹을거리 재료는 윤구병 선생이 사시는 변산 공동체에서 유기농업으로 만든 농산물이 올라옵니다. 음식 만들기도 그렇습니다. 올라온 채소와 농산물은 흙만 씻고 모두 껍질째 만듭니다. 화학조미료는 말할 것도 없고 유전자조작 농산물도 없습니다.

음식을 만들고 남은 꼬다리는 ‘꼬다리 전’으로 변신하고, 멸치, 다시마, 뒤포리 등 국물 내고 남은 재료는 다시 ‘나머지 조림’으로 태어납니다. 이들 남은 재료로 만든 ‘꼬다리 전’과 ‘나머지 조림’은 인기 메뉴이자, 좋은 술안주가 됩니다. 껍질 째 만들고 그나마 남은 재료도 이렇게 다시 쓰니 버릴 게 없습니다. 먹는 사람들도 버려서는 안 됩니다.

이곳에 오는 손님들은 다 먹고 숭늉에 그릇을 닦아 먹는 ‘빈 그릇 운동’을 실천합니다. 신기하게도 처음 오는 사람들도 잘합니다. 자연을 지키고자 하는 열의를 느낀다고 합니다. 대량 소비와 폐기, 그로 인한 지구 생태 위기 속에서 밥 한 끼를 통해 지속가능한 삶이 가능하다는 희망을 보았습니다.

기분좋은 가게

기분 좋은 가게

밥집 옆에는 '기분 좋은 가게'가 있습니다. 말 그대로 ‘기분 좋은 가게’입니다. 들어가보니 재활용 가게라는 느낌보다 분위기 좋은 찻집 같습니다. 자본과 이윤의 논리로 만들지 않은 착한 물건들이 가득합니다. 공정무역을 통해 만들어진 커피와 초콜릿, 축구공이 있습니다. 건강한 도서들도 많습니다. 모두가 기증한 것들이지만 ‘가장 아끼는 것을 기증해 달라’는 원칙에 따라 내어 주어 모두가 좋아 보입니다.

가게 한편에는 ‘되살림 공방’도 있습니다. 말 그대로 안 쓰는 천을 되살려 다시 옷을 만듭니다. 넥타이로 만든 치마와 퀼트 분위기 물씬한 천 가방이 좋아 보입니다. TV 마다 소비자 고발 프로가 난무하는 세상 속에서 아끼고 덜 쓰고 상상하는 공간입니다. 돈들이지 않고 되살려 써도 멋 내는 욕구가 충분히 가능하다고 말하는 대안의 공간입니다. 우리 사회에는 이런 ‘쓸모 있는’ 교육이 필요합니다. 아끼고 다시 쓰고 조금 가난하게 살아도 멋있고 자신감 있는 삶을 살수 있다는 상상력과 그래서 참된 인문 교육이 필요합니다.

가게 내부

가게를 나와 지하철을 타러 걸어가는 길옆에는 엄청난 규모의 아파트 공사가 벌어지고 있었습니다. 그 옆 중세의 성(城)을 생각하게 하는 거대한 모델 하우스 ... 전에 보았던 서교동 작은 집들과 골목길은 어느 순간 사라지고 성(城)이 들어서고 있었습니다. 이런 것을 진보라고, 발전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사회적 강자이자, 대세인 세상 속에서 그래도 그날 저는 좋은 꿈을 꾸었습니다. 삶에 지쳐 힘 빠질 때, 곁에 꿈꿀 수 있는 사람들 두루 모아 앉아, ‘꼬다리 전’과 ‘나머지 조림’에 심재훈씨가 극찬한 ‘참살이 막걸리’ 한 잔 주~욱 들이키는 꿈을 꾸게 되었습니다. 저는 조만간 이 꿈을 꼭 이룰 겁니다.

맹주형/서울대교구 우리농촌살리기운동본부 교육부장, 천주교 농부학교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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