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쿠시마 4주년을 맞아, ‘한국 천주교주교회의 정의평화위원회’(정평위)는 핵발전과 관련한 성명서를 발표했다. 성명서의 전반적인 기조와 내용은 안전, 신뢰, 전문가라는 세 핵심어로 요약된다. 첫째, 핵발전의 안전을 확보해야 한다. 둘째, 전문가들, ‘원자력안전위원회’(원안위), 정부는 국민의 신뢰를 회복해야 한다. 셋째, 핵발전과 관련된 문제들, 특히 수명연장의 사안은 전문가들에게 맡겨야 한다. 정평위 성명서는 아쉽게도 사안의 중대성에 비해 핵발전의 본질을 제대로 다루지 못하고 있다. 더구나 2013년 주교회의에서 발간한 “핵기술과 교회의 가르침: 핵발전에 대한 한국 천주교회의 성찰”의 핵심 내용과 상충되는 측면이 많다. 성명서의 세 핵심어를 중심으로 핵발전의 본질을 다시 살펴본다.

1. 핵발전과 안전
안전한 핵발전소는 없다. 핵발전소 사고가 재앙이라는 것은 체르노빌이나 후쿠시마에서 여실히 증명되었고, 이제는 어느 누구도 이를 부인할 수 없다. 하지만 여전히 핵발전 추진세력은 핵발전소의 안전을 주장한다. “사고 나지 않도록 안전하게 운영하겠다. 우리를 믿으라.” 과연 이런 주장이 가능한가? 백보를 양보해서, 사고가 나지 않으면 핵발전은 안전한가? 핵발전으로 바다에 쏟아져 들어가는 온배수, 희석 후 배출해 버리는 액체/기체 상태의 핵폐기물은 안전한가? 해마다 수백 톤씩 쏟아져 나오는 고준위핵폐기물인 ‘사용후핵연료’는 어떻게 감당할 것인가? 이를 처리할 기술과 영구적인 보관 장소는 세상 어디에도 없다. 핵발전소 안에 임시 저장소가 있을 뿐, 그것도 이르면 2016년에 포화상태가 된다. 사정이 이런 데도, 핵발전소의 안전을 주장할 수 있는가? 다시 강조하건대, 안전한 핵발전소는 세상에 없다.

핵발전 문제의 본질은 핵분열의 결과에 있다. 핵분열로 막대한 핵에너지와 함께 200여 가지 방사성 물질이 나온다. 모두 우리가 감당할 수 없는 치명적 물질들이다. 죽음의 재! 이 방사성 물질들의 반감기는 길게는 수만 년이다. 꺼지지 않는 불! 이들은 모두 자연에 없던 물질들이다. 핵분열은 그리스도인들에게 창조질서의 훼손을 뜻한다. 우리가 건드리지 말아야 할 선악과를 건드린 것이다. “그 열매를 따 먹는 날, 너는 죽는다.”(창세 2,17) 선악과 이야기는 우리 인간에게 근본적 한계가 있음을 말해 준다. 우리는 이 한계를 무시하고 넘어갈 수 있는 능력이 있다. 하지만, 그 결과는 감당할 수 없다. 핵분열은 우리 삶의 토대인 일상 세계의 기본 조건을 파괴하며, 결과는 죽음이다.

인간이 지켜야 할 한계를 다시 생각한다. 인간이 불완전하듯, 인간이 만든 모든 것도 불완전하다. 모든 기술과 설비는 고장과 실수를 비롯한 각종 사고를 전제해야 한다. 사고의 결과를 감당할 수 있는 기술과 설비만을 만들고 사용해야 한다. 안전하게 살려면 반드시 지켜야 할 한계다. 핵발전은 인간의 한계를 훌쩍 뛰어넘는다. 우리는 핵발전소 사고만이 아니라 일상적인 핵발전의 결과도 감당할 수 없다. 이렇게 본다면, 핵발전소에서 사고가 나는 것이 아니라, 핵발전 자체가 사고다. “핵기술과 교회의 가르침”이란 제목이 시사하듯, 교회는 핵발전소의 안전을 촉구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감당할 수 없는 핵기술 자체의 위험과 문제점을 지적하고 있다. 일단 가동되면, 핵발전소의 안전은 없다. 핵발전소의 안전을 확보하는 유일한 길, 핵발전소를 없애는 것이다. 안전한 핵발전소, 세상 어디에도 없다.

2. 핵발전과 신뢰
핵발전소는 물리적으로 외부세계와 철저히 단절, 차폐돼야 한다. 핵분열로 생기는 방사성 물질이 우리에게 치명적이기 때문이다. 물리적 단절과 차폐는 핵발전소의 폐쇄적 운영으로 이어진다. 외부의 접근이 차단되는 탓에, 핵발전소는 고도의 중앙통제, 비밀주의/폐쇄주의의 비민주적 성격을 지닐 수밖에 없다.(“핵기술과 교회의 가르침” 88, 89, 92항) 신뢰를 위한 기본적 요구가 투명성과 접근성이라면, 핵발전소의 신뢰 확보는 원천적으로 불가능하다. 핵발전소 비리나 이른바 ‘핵마피아’도 핵발전소의 구조적 폐쇄성에서 비롯된다. 따라서 이를 근절하려면 핵발전소 자체를 없애는 수밖에 없다.

▲ 월성 핵발전소 1,2호기(왼쪽)와 신월성 핵발전소 1,2호기.ⓒ장영식

3. 핵발전과 전문가
핵발전에 대한 전문가들의 의견은 존중되어야 하나, 이들이 핵발전 문제의 논의를 독점해서는 안 된다. 지구 전체에 매우 오랜 기간 커다란 영향을 주는 핵발전 정책은 반드시 “시민의 책임 있는 공동 참여”로 결정돼야 한다. 보조성의 원리에 따르면, 시민 전체의 삶에 깊은 영향을 미치는 사안을 “전문가를 중심으로 한 정부 주도”로 결정하고 추진해서는 안 된다.(“핵기술과 교회의 가르침” 138항) 오히려, 정부와 전문가들은 시민사회의 논의와 판단을 돕기 위해 필요한 자료를 제공해야 한다. 지금까지, 핵발전에 관해 정부와 ‘한국수력원자력’ 그리고 ‘원자력문화재단’ 같은 관련 기관들은 막대한 예산을 들여 일방적인 홍보와 주장만을 일삼았지, 제대로 된 토론의 장을 마련해 본 적이 없다.(“핵기술과 교회의 가르침” 138항)

오늘날 연구 개발에는 자본과 정부의 지원이 필요한 경우가 많고, 따라서 이에 종사하는 전문가들은 자본과 권력의 영향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시민사회의 참여가 요구되는 또 하나의 중대한 이유가 여기 있다. 핵발전의 경우, 비민주주의적인 폐쇄적 구조로 인하여 시민사회의 적극적인 참여와 감시는 더욱 절실하다. 최근 월성 1호기 계속 운전(수명 연장)을 결정한 원안위의 행태는 핵발전 문제를 전문가들에게만 맡겨서는 안 되는 이유를 잘 보여 준다. 전 국민의 안전과 직결되는 월성 1호기 수명 연장 심의에 대한 정상적인 논의는 실종된 채, 원안위는 정부와 한수원의 의도에 따라 월성 1호기 수명 연장을 결정하였다. 우리나라 전체에 큰 영향을 미치는 안전 문제를 다수결로 결정한 것이다.

4. 핵발전과 윤리
정평위 성명서에서 언급되고 있지는 않지만, 핵발전으로 인한 윤리적 문제 또한 심각하다. 몇 가지 예만 들어본다. 첫째, 핵발전은 언제나 힘없는 해당 지역 주민의 희생을 요구한다. 핵발전으로 주변 생태계는 파괴되고 방사성 물질은 계속 유출된다. 지역 주민들은 자립적 생계 수단을 잃고 각종 보조금에 의존하게 되며, 암을 비롯한 각종 질병으로 시달린다. 둘째, 밀양과 청도에서 보았듯이, 핵발전소의 전기를 대도시로 보내기 위한 송전탑 건설로 해당 지역 주민들의 삶과 자연 생태계가 파괴된다. 셋째, 핵발전은 피폭을 감수하는 노동을 요구하고, 결국 이를 떠맡는 것은 사회적 약자들이다. 핵발전소의 전기는 누군가의 피폭의 대가로 생산된 것이다. 교회는 핵발전에 따르는 윤리적 문제들을 폭력으로, 핵발전을 “불의한 구조, 곧 죄의 구조”로 규정한다.(“핵기술과 교회의 가르침” 138항)

5. 탈핵만이 희망이다
탈핵은 가능하다. 첫째, 신규 핵발전소 건설(계획)을 전면 중지한다. 둘째, 노후 핵발전소 수명연장을 포기한다. 셋째, 재생가능 에너지를 확충한다. 이 제안의 타당성은 전문 지식이 아니라 합리적 이성만으로도 충분히 판단할 수 있다. 더구나 이는 탈핵을 선언한 독일 같은 나라에서 이미 시행하고 있는 지극히 ‘현실적’인 처방이다. 다시 강조한다. 안전한 핵발전소, 세상 어디에도 없다. 안전한 세상에서 살고 싶은가? 유일한 해답, 탈핵이다. 탈핵만이 희망이다.

 

 
 
조현철 신부 (프란치스코)
예수회, 서강대학 신학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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