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시수녀의 이콘응시]

 

그리스도를 팔에 안은 시메온, 16세기, 시나이, 성녀 카타리나 수도원
En Cristo

자! 이콘을 바라보자.
아기 예수님을 안고 있는 “성 시메온”이다.

숱 많은 그의 머리와 긴 수염, 무뚝뚝함과 엄격함이 묻어 있는 시선으로 아기 예수님을 바라보고 있다.
시메온의 왼손을 가리고 있는 망토 위에 안겨 있는 아기 예수님의 발은 천진하게 뛰어 놀듯 한쪽 발이 들려 있음과 동시에 강복의 손을 하고 있다.

전신을 그린 이 이콘을 가까이에서 바라 볼 때마다 알 수없는 장엄한 선포처럼 느껴지는 그 무엇이 있다.
한참 바라보다 시메온이 펼치고 있는 두루마리에 시선이 머물렀다.

“이 아기는 이스라엘에서 많은 사람을 쓰러지게도 하고 일어나게도 한다.”(루카2:34)

‘그가 설마?!’하는 사람들을 종종 만난다.
너무 유순해서? 아님 지나치게 소심했던 사람이라서? 다양한 사람들 안에 숨어 있는 선과 악이 어떻게 작용하냐에 따라 이 세상의 역사는 끊임없이 변화되고 만들어져 가는가 보다.

그 중 한사람이 바로 로메로 대주교다.
우연찮은 기회에 로메로 대주교가 저격 당한 아니 순교한 현장인 병원 내에 있는 라 디비나 쁘로비덴시아(LA DIVINA PROVIDENCIA) 성당을 방문하였다.
아! 그 감격스러운 순간을 어떻게 표현 할 수 있을까.

로메로 주교가 병원에 머물게 된 경위와 순교하기 까지의 사건들을 이야기 들으며 난 결국 눈물을 흘렸다.
죽음의 현장을 생생하게 사진에 담을 수 있었던 것은 그의 친구 기자가 자기 어머니의 연미사를 주교에게 청하였는데, 그 기자는 그것을 라디오에 방송하였고 그의 가족들과 병원 수녀들은 미사를 참례하였다.

기자가 그 미사를 기념할 사진을 찍기 위해 출입구에서 후래쉬를 터뜨리는 순간 방송을 듣고 달려온 군인들의 총에 맞아 그 자리에 쓰러지고 병원에 옮겼으나 숨졌다.

어디에서 무엇을 하든 숨은 일도 보시는 하느님은 증거를 남기게 하시는데 그 분의 죽음을 필름에 담을 수 있었던 것은 우연이 아닐 것이다. 정의를 위해 투쟁하다 죽은 사제 로메로 대주교.!

난 그가 쓰러졌다는 제대 바닥을 만져 보았다. 그때 함께 왔던 미국의 한 수녀가 하모니카로 “강물처럼 흐르는 사랑, 너와 나로부터 흐르고........”의 멜로디를 연주 하였다. 조용한 가운데 울리는 하모니카 소리는 거기에 모인 모든 수녀들과 평신도들 가슴에 흐르며 장엄한 침묵의 시간 속에서 로메로 주교와 우리 사이를 더욱 가깝게 연결해 주는 듯 하였다.

“죽어서도 나의 민족 속에 살아 있을 것이다”고 외친 그의 예언대로 그는 엘살바도르인들 뿐만 아니라 모든 아메리카인들, 그리고 정의을 구현하려는 이들 가슴 속에 살아 어떤 사람은 그로 인해 넘어지기도 하고 다시 일어나기도 하지 않을까.

엘살바도르엔 예수회에서 운영하는 YSUCA라는 라디오 방송이 있다. 매일 로메로 주교의 목소리를 짧게 자주 들려주어 사람들 마음속에 그분의 말씀이 늘 살아 정의를 꿈꾸게 한다.

안일함에 안주하는 우리들의 삶을 로메로 주교는 지금 모든 이들에게서 거듭나는 부활을 요구하는지도 모른다. 권위와 물질만능에 빠져 교회 내에서 군림하는 꼭이나 벌거벗은 임금처럼 살아가는 우리 모두는 어쩌면 이미 벌거벗고 있다는 것을 알기에 “당신은 벌거벗었군요”라고 말해줄까 두려워 귀와 눈을 막고 자신의 모습조차 보려하지 않는 것은 아닐까.

오늘 성 시메온이 들고 있는 두루마리에 마음과 눈을 열어 바라본다면 예언자를 통해 말씀하시는 분별의 덕을 가다듬게 하지 않을까. 다시 한번 두루마리의 글을 바라보자.

“이 아기는 이스라엘에서 많은 사람을 쓰러지게도 하고 일어나게도 한다.”(루카2:34)


임종숙/ 루시아 수녀, 한국순교복자수녀회 수원관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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